대한민국을 수호한 6.25 참전용사들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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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수호한 6.25 참전용사들을 기리며…
Goodnews DAEJEON 867 - 호국영웅 시리즈 - ②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6.1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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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유공자회 지현규 청주지회장

70여년이 지나도 생생한 6.25전쟁의 참상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공산군이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기습 침공했다. 약 3년 간의 전쟁 끝에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었지만 국군과 유엔군 약 17만 5천명이 전사하고 100만여명의 민간 피해와 전쟁고아, 이산가족이 발생하는 아픔을 겪었다. 올해 6.25전쟁 발발 71주년을 맞아 기자는 6.25 참전유공자회 지현규(91) 청주지회장을 만나보았다. 1950년에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전쟁이 발발하고 피난을 가다가 자원입대하였다. 
그 후 계성고등학교에 가서 훈련을 받고 UN군(3사단 65연대)에 속해 일본에 가서 48일간 보병훈련을 받았다. 북한 원산의 상륙 전투에 참전한 지현규 지회장은 “북쪽으로 진군해 올라가는데 시체들이 눈에 파묻혀 곳곳에 있었다. 밤에 적군과 대항해 싸우고 낮에는 부대로 복귀하며 전투를 했다” 그는 이어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군수보급이 안 돼 일주일씩 굶고 잠도 못 자고 정말 힘들었다. 자다가 총에 맞아 죽은 국군들도 있었다”며 치열했던 전쟁을 회상했다.

한 초등학교에서 ‘6.25알리기 캠페인’ 교육하는 모습

‘6.25전쟁 알리기 캠페인’으로 후세대에 전달
 
지현규 지회장은 전쟁 중 한국군 20사단으로 편입해 1953년 6월 10일에 강원도 양구 어은산 인근 고지에서 벌인 M-1고지전투(Battle of Hill M1)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13일간 뺏고 빼앗는 치열한 격전이 계속되며 총과 칼을 들고 끊임없이 몰려오는 중공군과 맞서 싸웠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죽은 신병들도 많았다”며 고지는 탈환했지만 많은 사상자가 나온 정말 참혹했던 전쟁이라 전했다. 휴전 후 제대명령이 떨어져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 26살이었다. 
그는 “이처럼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를 지켰기에 후손들이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6.25 참전유공자회에서는 초·중·고 및 대학교에 ‘6.25알리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학교에 가서 이야기하다보면 할아버지가 참전용사인 아이들도 있고, 학생들이 교육을 잘 듣고 감사하다고 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어 “후손들이 6.25전쟁 참전유공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심을 배우고 마음에 새기며 후대에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전/ 김경미 기자 daejeon@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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