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호국영웅 ‘월남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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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호국영웅 ‘월남참전용사’
Goodnews DAEJEON 866 - 호국영웅 시리즈 - ①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6.1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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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도약의 밑거름이 된 월남전쟁 참전

1964~1973년 한국은 근대역사상 최초로 맹호, 청룡부대 등 총 32만명의 병력을 월남전쟁에 파병했다. 그 과정에서 1만 6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우리나라는 월남전 파병을 통해 획득한 달러를 밑거름 삼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기자는 월남전쟁에 두 번이나 참전한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정병무(75) 대전지부장을 만나보았다. 1969년 해병대 청룡부대 부사관이었던 정 지부장은 23세의 나이에 월남전에 참전했다. 당시 월남(베트남)에 살아 돌아오기 힘들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에 그는 부모님 몰래 부산항에서 베트남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고 한다. 그는 “덥고 습한 베트남에서 체구가 작은 베트콩들이 드나드는 동굴 속을 기어 다녔고, 베리아반도 상륙작전에도 참전해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두 번째 월남파병 때는 부비트랩(위장폭탄)에 걸려 다리 한쪽을 거의 잃었다. 현재 지체장애 3급이지만 살아 돌아 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지부장처럼 월남전쟁에 파병된 우리 군인은 약 32만명이다. 그들이 미국으로부터 받은 참전 수당이 한국 근대화의 초석이 된 셈이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정병무 대전지부장

월남참전의 정신으로 사회공헌활동 지속

정 지부장은 “참전 당시 부대를 이끌던 분이 채명신 장군이었는데, 그분께서는 평소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분의 영향으로 베트남 양민들의 논을 잘못 밟게 되면 용서를 빌고 우리 쌀을 대신 주었다”고 말했다.
정 지부장은 베트남 쌀은 바람이 불면 날아갈 정도로 푸석하고 찰기가 없어 오히려 우리나라 쌀이 베트남인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그리고 전쟁터에 나간 남편대신 혼자 농사지으며 자식을 키우는 베트남 여인들이 불쌍해서 초콜릿과 라면 등의 물품을 지원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에서 배운 타인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정신이 현재까지 이어져 불우전우돕기, 대전 3대 하천 환경정화, 청소년선도 등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정 지부장은 “세계평화와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몸 바쳐 희생했지만 현재 폐지를 주우며 연명하는 전우들도 있다. 참전용사에 대한 국가의 처우가 선진국 수준에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다”며 “국격에 맞는 처우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전/ 윤나영 기자 daejeon@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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