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여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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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 [이사야 49장 7절 ~ 13절] 2024. 4. 1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100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4.04.2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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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과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서 대화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해 당신의 마음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말씀을 우리 마음에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살아서 그대로 역사하게 됩니다. 약속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일을 하십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결정한 대로 우리 몸이 움직이고 삶이 움직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약속을 받아들여 결정을 내리면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열심히 다닙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말씀을 듣지만 ‘근데 오늘 무슨 말씀을 전했더라. 이사야던가?’라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마음에 남는 것 없이 금방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경쟁이 심한 한국사회

요새 한국 사회가 경쟁이 심하고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주일에 예배 한번 다녀가는 것으로 신앙생활이 다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하나님께 조금만 마음을 더 기울여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살라고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대 옆에서 예배를 보조하는 젊은 형제들이 있는데 말씀을 전할 때도 휴대폰을 항상 손에 들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분들은 가족, 친구보다 휴대폰이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제가 그 형제들에게 예배 시간에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면 삶이 바뀌고 놀라운 사람이 되는데 이런 저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안타까워서 잔소리를 좀 했습니다.

사람의 키가 자라듯이

사람이 태어나서 하루아침에 키가 어른처럼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매일 쳐다봐도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1년 지나면 어느새 키가 자라있고 2년, 3년 지나면 또 자라있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갑니다. 마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한 번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는다고 말씀 그대로 우리 마음이 따라가긴 쉽지 않습니다. 신앙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마음의 방향만 돌려도 신앙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말씀이 마음에 조금씩 남아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나의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내가 이 말씀처럼 되기를 원하시는구나. 그렇다면 하나님이 약속대로 나에게 이렇게 일하시겠네!’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많은 약속들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사 49:7)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는 멸시받고 미움받는 사람인데 이제 우리 앞에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존경받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드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반드시 그렇게 일을 하십니다. 지금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하나님께 “하나님, 언제 이렇게 하십니까? 좀 빨리 해 주십시오” 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향한 약속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가면 이런 약속의 말씀들을 다 잊어버립니다. 성경 속에 있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약속을 하셨네. 내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세우시겠구나’ 하며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그 말씀 그대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성경과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예배시간에 “주여,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을 당연시 합니다. 우리는 ‘죄인’이라는 말이 성경적으로 맞는지 확인을 해봐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고 의롭게 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여, 죄인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소리입니다. 만일 이런 부분이 정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하나님, 제 죄를 씻으셨다고 하는데 제 죄를 어떻게 씻으셨습니까?”라고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 죄가 어떻게 씻어졌는지 정확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죄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인도 있고, 거룩한 종도 있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볼 만한 눈이 없어 성경을 읽어도 죄에 관한 부분만 봅니다. 그래서 교회를 수십 년 다녀도 “주여,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밖에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죄인이면 멸망이고 의인으로 서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기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의인인 것입니다.

성경은 거짓말 하지 않아

로마서 3장 23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지은 우리가 예수님의 구속으로 “의롭게 되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저도 어릴 때 거짓말하고, 남의 집 사과도 따 먹은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의롭다 하셨기 때문에 저는 “나는 의롭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 의로워. 너 죄 없어. 너 깨끗해. 네 죄 다 씻어졌어”라고 말씀하시면 “나는 의롭구나” 하고 믿으면 됩니다. 여러분의 아이가 다섯 살 정도 되었는데 더러운 게 묻어 있으면 엄마가 “이놈의 자식, 어디서 이런 거 묻히고 왔어” 하며 욕실에 데리고 가서 더러운 옷을 벗기고 깨끗하게 목욕시킬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더러운 죄인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씻겨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도록 의롭고 거룩하게 만들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학교 앞 문방구의 외상값

제가 어릴 적 아버지 친구 한 분이 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공책이 필요합니다. 돈 좀 주세요.” 아버지가 “지금은 돈이 없다. 그 문방구 하는 아빠 친구에게 가서 공책을 달라고 해라”라고 말씀하셔서 문방구에 가서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공책이 필요한데 아버지가 아저씨께 말씀드리고 공책 한 권 가져가면 된다고 했어요.” “그래, 가져가라.” 그렇게 하면 우리 아버지가 나중에 그 친구 분에게 외상값을 갚았습니다. 그 뒤로 또 아버지에게 공책 살 돈을 달라고 하니 “내가 지난번에 공책 값 갚으면서 만원을 주고 왔다. 문방구 아저씨에게 이야기하고 가져가면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저는 한 번도 노트 값이나 연필 값을 낸 적이 없지만 늘 공책과 연필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내야 될 값을 대신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우리 죄의 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우리는 늘 죄를 짓지만 예수님이 영원히 다 갚아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한 일이 없지만 예수님의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내 죄가 사해졌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원로 목사님의 방송 설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는 죄인이다’라고 너무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로마서 3장 24절처럼 성경에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는 말씀이 정말 많습니다. 성경이 의롭다고 하면 ‘저는 의롭습니다’라고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 죄인이라고 주장하다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대형 교단의 원로 목사님의 방송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이 “내가 꿈에서 죽었는데 지옥에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회개하니까 천국으로 올라가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들으면서 이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지옥에 간 사람은 절대로 다시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거지 나사로에 대한 말씀에도 지옥에 간 부자에게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이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옥에 간 사람이 회개해서 천국 갈 수 있다면 지옥에 그냥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거룩함을 입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저는 1944년에 태어났습니다. 이듬해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았지만 1950년에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몹시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열다섯 살 무렵부터는 배가 고프면 친구들과 남의 집 사과도 따 먹고 감도 따 먹곤 했습니다. 당시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만 가면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새벽기도회를 다니면서 죄를 고백하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까지 죄를 어떻게 사함 받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옛날에 소설책을 좋아했는데 특히,『죄와 벌』이라는 책이 너무 재미 있어서 단번에 두 번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는 더 읽고 싶지 않아서 재미있는 대목만 골라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달랐습니다. 열 번, 백 번을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말씀은 늘 제게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어느 날 레위기 4장의 속죄제사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속죄제사는 죄를 지은 사람 대신 염소나 양이 죽어 죄를 씻는 제사법입니다. 이 제사에는 염소나 양에게 안수를 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이 안수의 의미는 레위기 16장 21절에 나와 있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염소에게 안수하는 것은 죄가 염소에게 넘어가는 과정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

구약의 속죄 제사에 나오는 염소와 양은 바로 예수님을 나타내는 그림자입니다. 마태복음 3장을 보면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이튿날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은 세상 죄를 예수님께 넘기는 과정이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속죄 제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짊어진 양이 백성들을 대신해 죽은 것처럼 세상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세례 요한으로부터 넘겨받고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이 구원의 복음이 너무나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죄로 인해 울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해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말씀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우리는 그 말씀 하나하나를 우리와 연결시켜야 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여기 ‘세상 죄’에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 읽어보십시오. 그 세상 죄 속에 박옥수 목사의 죄, 이영자 자매님, 김철수 형제님의 죄가 들어가 있습니까? 아니면 빠져 있습니까? 예, 모든 사람의 죄가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지고 가셨기 때문에 우리 죄가 씻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내가 뉘우치고 회개해서 씻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의 삯인 사망의 값이 치러져야만 씻어지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벌을 받으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 했으면 의로운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너, 죄 안 지었어. 지었으면 죄인이지’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을 때 세상 죄에 대한 값이 치러졌고, 예수님은 당신의 피를 하늘나라 제단에 발라 우리 죄의 기록을 지우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을 때 그 죄에 대한 벌을 받으면 그 죄는 끝이 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죄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이 의롭다면 의로운 것이고 거룩하다면 거룩한 것입니다.  

피를 제단 뿔에 바르는 이유

레위기 4장 30절을 보면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이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염소를 번제소에서 죽입니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발랐습니다. 왜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를까요?
그 이유도 성경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렘 17:1) 성경은 죄의 기록이 제단 뿔에 새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죄의 기록을 지우기 위해 속죄제 희생인 염소나 양의 피를 단 뿔에 발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 제단 뿔에 있는 우리 죄의 기록을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영원히 도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의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죄의 기록이 전부 지워졌습니다.

우리 죄가 영원히 씻어져

오늘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예수님이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가 완벽하게 사해졌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을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속한 성전이 아니라 하늘나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피를 뿌리는 것과 이 땅 위에서 피를 뿌리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이 땅은 시간계여서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영원계여서 모든 것이 영원합니다. 이 땅인 시간계에서 드린 속죄 제사에서는 과거의 죄만 사해지는데 영원계인 하늘나라에서 드린 속죄 제사에서는 죄가 영원히 사해집니다. 
올해 부활절을 맞아 그라시아스합창단이 전국 소도시를 방문하여 부활절 칸타타 공연을 무료로 진행했습니다. 그라시아스합창단은 이탈리아 리바 델 가르다 국제합창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같은 해 스위스 몽트뢰 합창제 본선에서 1등상, 독일 마르크트오버도르프 국제합창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세계적인 합창단입니다. 많은 분들이 합창단의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고 특히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3일만에 부활하신 장면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이 마음 흰눈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주의 보혈 흐르는 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찬송가 213장, 새찬송 423장)라고 찬송을 부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그 때 우리 죄가 영원히 씻어졌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어 복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 2024. 4. 1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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