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주인 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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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주인 되시면
2005. 1. 9 주일설교 요약 - 3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5.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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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에 사무친 부인

어떤 부인이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온 남편의 친구 부부와 같이 지내게 되면서 그 친구의 아내를 너무 미워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 부부가 자기 집에 몇 달 머무르는 동안 그 부인은 공주병이 들어서 손 하나 꼼짝하지 않았답니다. 집에 두 여자가 있는데 주인은 설거지 하고 청소 하는데 친구의 아내는 손톱만 다듬고 앉아 있었답니다. 그걸 보면서 너무 미워 남편이 퇴근만 하면 늘 남편과 싸웠답니다. “저 사람들 내 보내요.” “왜 그래? 우리 집에 좀 같이 있으면 안 돼?” “여자가 설거지도 안 하고….” “당신, 지금까지 설거지 다 해 왔는데 그 부인이 좀 안 하면 어때?” 남편은 쉽게 이야기하지만 똑같은 여자로서 자기는 일을 하는데 옆에 있는 여자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꼭 시녀 같아서 자존심이 상하고 미워서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이 부인은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기 때문에 주일마다 교회에 안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할 때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데 남편 친구의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마음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러웠답니다. 이 부인이 어느 날 저의 저서인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읽고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었습니다.

두려움을 없애지 못하면

세상을 살다 보면 감기도 걸리고 몸살도 나고 소화도 안 되고 폐결핵이나 암 등 여러 가지 병에 걸립니다. 사람들의 몸에만 병이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도 병이 있습니다. 미움이 내게 왔을 때 내가 그 미움을 이기지 못하면 미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내 속에 음란한 마음이 들어왔을 때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음란한 마음이 집을 짓고 살면서 내 마음을 음란한 쪽으로 계속 끌어가기 때문에 결국 부끄러움을 당하고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두려운 일이 생기면 ‘뭐가 두려워.’ 하면서 그걸 이겨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두려움에 빠지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손자 항주와 같이 샤워를 할 때가 많습니다. 요즘은 추워서 온수 보일러를 켜서 더운 물로 샤워를 하는데 샤워가 끝난 후 항주에게 “빨리 가서 옷 입고 머리 말리기 전에 온수 보일러 끄고 오너라.”고 하는데 보일러를 끄기 위해서는 거실로 나가야 합니다. 샤워장이 있는 안방에서 거실로 나가려면 조그마한 중간 방을 지나야 합니다. 그런데 손자가 그 방 통과하기를 굉장히 무서워 하는 겁니다.
자기 방에서 혼자 자는 것은 괜찮은데 우리 방에서 먼저 재우고 제가 뭘 하려고 밖으로 나오면 어느 순간 밖으로 따라와 소파에서 자고 있는 거예요. “항주야, 너 왜 방에서 안 자고 여기 왔어?” 다시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재운 후 제가 또 나오면 항주도 밖에 나와서 자고 있는 겁니다. 방에 혼자 있는 것이 겁이 난답니다. 그래서 “항주야, 이 산에 호랑이가 있어도 할아버지가 무서워서 우리 집 근처에는 얼씬도 못해. 귀신이 있어도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종인 목사라서 여기엔 얼씬도 못해. 우리 집은 안전해. 아무것도 무서운게 없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자기 마음에서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면 불안해 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두려운 마음이 한 번 생기면 그 마음이 자유를 상당히 많이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을 없애려고 애쓰고 그것과 씨름하다가 자기 인생을 허비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쫓는 사울과 쫓기는 다윗

성경에서 사무엘상을 읽어 보면, 어느 날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해서 다윗이 도망을 가는데 사울이 군사를 모아 뒤따라 오고 있었습니다. 밤중에 “다윗이 헷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가로되 누가 나로 더불어 진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아비새가 가로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삼상 26:6) 그래서 다윗과 아비새가 사울의 진에 가 봤어요. 보통 군대 같으면 보초를 한 명 세워야 하는데, 그날 밤에는 사울왕, 군대장관 아브넬, 사울의 병기 맡은 소년 등 온 군사가 다 잠이 들었어요. 구름이 많이 껴서 어두컴컴한 가운데 달빛이 조금 비치니까 사울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어요.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삼상 26:8) 하면서 창을 빼서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사울이 나를 죽이려고 해서 도망쳐 나와 있는 동안 집에도 못 가고 왕궁에 있을 때엔 사울이 두 번이나 창을 던졌어. 사울이 살아있다면 내가 죽을는지 몰라. 그래,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기회야. 사울을 찔러 죽이자. 내가 왕이 되면 이 세상에 평안이 와. 블레셋 군인이 쳐들어 와도 내가 왕이 되면 이길 수 있어.’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삼상 26:9)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말라고 해서 그날 사울을 죽이지 않고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진을 떠나 왔습니다.
멀리 산꼭대기에 가서 다윗이 고함을 질렀어요. “아브넬아 너는 대답지 아니하느냐 아브넬이 대답하여 가로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다윗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중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중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 네 행한 이 일이 선치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삼상 26:14~16) 사울이 잘 때 분명히 머리 곁에 둔 물병과 창이 없어진 거예요. 누군가가 진에 들어왔다는 이야기죠. 사울을 죽이려면 죽일 수 있었다는 거지요. 사울은 깜짝 놀랐습니다.

다윗의 어떤 다른 마음

저는 다윗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난 왜 이렇게 옹졸하고 작고 못난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반면에 대범한 다윗의 성품을 보고 ‘정말 다윗은 남자 같다. 나는 왜 다윗처럼 넓고 담대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늘 좁쌀영감처럼 사는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다윗은 부하들이나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넓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품었습니다. 또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이나 자기를 대적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다윗은 늘 그때마다 그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서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런 다윗의 삶을 생각해 보니 다윗의 마음 안에 있는 어떤 다른 마음의 힘이 미움이 일어날 때 그 미움을 이기고, 두려움이 올 때 그것을 이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시편을 45편부터 읽어 내려가 보면 그 시 속에는 다윗이 두려워서 떨고 있다가 그 두려움을 자기 마음에서 내쫓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분명히 두려운 형편이 닥쳤기 때문에 다윗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두려움을 이겨 내더라는 겁니다. 다윗이 그 두려움을 이겨 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을 볼 때 ‘아, 다윗이 이런 마음의 세계를 가졌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움, 두려움 그리고 의심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운 사람이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가도 미운 사람이 생기면 그 속에 빠져 들어가 버립니다. 처음에는 조금 미워하다가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더 미워하다가 나중에는 미운 사람을 보면 견디지 못해서 벌벌 떨다가 결국에는 잠도 안 오고 가슴이 뛸 정도로 병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미움, 두려움, 결벽증, 그리고 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아내가 마켓에 갔다 조금 늦게 오니까 ‘이 여자가 마켓에 갔다가 왜 이제 왔을까? 우리 집 앞에 바로 마켓이 있는데 전에는 20분이면 갔다 왔는데 벌써 한 시간이 넘었네. 그동안 누구를 만났을까? 그 남자 만났을 거야.’ 하고 상상을 합니다. 그런 경우에 “여보, 오늘 당신 어디 가서 누구 만났어?” 하는 식으로 분명하게 얘기하면 괜찮은데 혼자 의심하면서 “당신 뭐 샀는데? 그거 사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데? 그리고, 뭐 했는데?” 그러면 고달픈 거예요.
결벽증이나 두려움이나 미움이나 음란이나 의심과 같은 마음이 일어나도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고 살아가지만 그런 마음이 한번 자리를 잡으면 가정이 서서히 깨뜨려져 갑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위험 속에 빠져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가정이 깨지고 문제가 되는데 그것은 느닷없이 닥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온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얼마든지 그런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절망 속에서 긍휼을 구하고

여러분, 이 성경 속에는 그런 문제를 치료할 분명한 약이 있습니다. 다윗도 사람입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에 대해 왜 미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한 나라의 왕이 정치는 하지 않고, 다른 일은 다 제쳐두고 자기를 죽이려고 몇 번 창을 던졌고 군인들을 삼천 명이나 데리고 쫓아다니는데 당장 죽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겠죠. 다윗이 그런 미운 마음에만 사로잡혀 있었다면 틀림없이 사울을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도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믹담시, 영장으로 요낫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시 56)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자, 여기 1,2절을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 아기스 왕에게 잡혔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에 있다가 사울에게 쫓겨서 블레셋으로 갔습니다. 다윗은 아기스왕과 같이 지내려고 거처로 들어갔는데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왕이여, 저 다윗은 우리 가드 장군 골리앗을 죽인 자가 아닙니까?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 그 다윗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아기스왕이 처음에는 다윗을 자기 부하로 삼아 같이 지내려고 했는데 신하들과 장군들이 이렇게 말하니까 아기스왕의 마음이 변해 버린 겁니다. ‘그렇지. 다윗은 우리 가드의 장군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지.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 그 다윗이지.’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갑자기 왕궁 분위기가 싸늘하게 바뀌자 다윗이 거기에서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있는 형편이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죽었구나. 내가 어떻게 해야 여기서 빠져 나갈 수 있지?’라고 궁리했지만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거예요. 다윗에게 점점 두려운 마음이 엄습해 오는 겁니다. 그때 다윗이 노래를 불렀어요.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라고.

빛과 어두움이 싸우면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시 56:3) ‘내게는 방법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봐야지.’라며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 쪽으로 향하더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에 두려움이 왔어요. 그때 다윗 스스로가 그 두려움을 내쫓을 수 있다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는 그 두려움을 스스로 내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에게 잡혀 있기 때문에 언제 죽을는지 모르는 두려운 형편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분이 내켜 죽이고자 하면 죽는 겁니다. 꼼짝없이 죽어야 하기 때문에 초조하고 두려운 마음이 다윗에게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도망가지? 어떻게 피하지?’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럴 때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면 되겠다. 하나님을 의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조금 전까지 다윗의 마음에 두려움만 꽉차서 그 마음에 왕노릇을 했는데 이제 하나님의 마음이 조금 들어와서 ‘내가 하나님을 의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빛과 어둠이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빛이 이깁니다. 그건 절대적인 거예요. 고양이와 쥐가 싸우면 고양이가 이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윗의 마음에 두려움이 꽉 차 있는데 하나님의 마음이 조금 들어갔어요. 두려움과 하나님이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하나님이 이깁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4) 분명히 두려움이 하나님에게 패배해서 힘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두려움이 다윗의 마음 안에 머물지 않는다는 이야기이지요. ‘하나님을 의지하면 내가 두려워 할 이유가 뭐가 있냐? 이제 난 두렵지 않다. 하나님의 사람을 어찌하랴?’ 다윗은 두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후 하나님이 다윗을 가드왕 아기스에게서 건져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한 사울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었습니까? ‘내가 사울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와 같이 있지도 못하고 이렇게 쫓겨 다니는구나. 사울 때문에 언제 죽을는지 모르겠구나. 사울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구나. 내가 왕이 될 수 있는데 사울 때문에 어렵구나.’ 여러분, 다윗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면 사울을 향해 미운 마음이 솟아오를 때 당장 때려 죽이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분한 마음에서 아비새가 “내가 사울을 창으로 찔러 죽일까요? 하나님이 붙이신 기회입니다. 두번 찌를 게 없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당장 찔러 죽이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다윗이 ‘그래 사울을 죽이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그렇게 괴롭혔지만 그에게는 사울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랑하는 여러분, 보편적인 사람은 미움이 있을 때 미워합니다. 고통스런 일이 있을 때 고통스러워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슬퍼합니다. 괴로운 일이 있을 때 괴로워합니다. 사단은 이런 저런 형편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미움과 괴로움, 두려움과 의심을 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기름을 부어서 왕을 삼는다고 하셨으니까 내가 사울을 죽이지 않아도 난 언젠가 왕이 돼. 때가 되면 하나님이 전쟁을 통해 사울을 죽게 하실 텐데 내가 구태여 손을 들어 사울을 죽일 필요는 없어. 사울이 참 불쌍하다. 하나님 앞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오히려 사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치 건강한 사람은 폐결핵 균이 들어와도 몸이 결핵균을 이기고, 감기가 와도 감기를 이기고, 장티푸스나 말라리아균이 들어와도 그것을 이기는 것처럼 다윗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미움을 이겼습니다.

하나님으로 임한 승리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일이 생기면 두려움에 빠져 버리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으면 고통 속에 빠져 버려요. 괴로운 일이 있으면 괴로움에 빠져 버리고 미움이 생기면 그냥 미워합니다. 의심이 생기면 그냥 의심하고 음란한 마음이 들면 음란한 것에 자기 마음을 모두 뺏겨 버려요.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사는 것 같아도 마음은 병든 채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다윗으로 하여금 사울을 미워하도록 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미움과 두려움을 이기고, 유혹과 슬픔을 이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가드왕 아기스에게 잡혔을 때 두려움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질 때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이 두려운 마음을 다 내쫓아 버리니까 두려운 마음이 없어진 거예요. 너무나 신기한 사실입니다.

말씀이 능력이 되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이 말씀에는 분명히 내가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셨네. 그리스도가 내 죄를 구속하셨구나.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이 헛된 죽음이 아니었구나. 그 십자가의 피 흘려 죽으심이 내 모든 죄를 사하셨구나.’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내 죄를 다 이기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전에는 내 마음에 죄가 가득 차서 기도할 때마다 주님 앞에 부끄러워 고개 숙이고 죄인이라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내가 그 죄를 물리치려고 하고 내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고통하고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죄를 다 씻어주시고 물리쳐 주시고 의롭다 하시는 겁니다.
이제 죄와 말씀이 내 마음 안에서 싸우는 거지요. 내가 말씀과 하나가 돼서 ‘아! 내가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이 의롭다 하셨네. 그러면 내 죄가 없어졌네. 내 죄가 씻어졌네.’그렇게 말씀으로 한 마음이 되면 내 마음에 죄가 없어져 버려요. 반대로 ‘그래도 내가 죄인이지.’라면서 하나님이 의롭다 해도 내 마음이 죄와 하나가 되어 버리면 의롭다 하신 말씀이 내 마음 안에서 살아서 일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두려움이나 미움이 생길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서 두려움이나 미움을 내쫓아주고, 음란한 마음이 들어왔을 때 음란한 마음이 점점 내 마음을 장악해 나를 음란한 인간으로 만들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 말씀이 들어와서 음란한 마음을 내쫓아줄 때 음란에 매이지 아니하고 밝게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내 마음에 들어왔을 때 내가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면 두려움을 내쫓아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면

우리는 다 죄를 범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마음에 누가 왕 노릇했습니까? 죄가 왕노릇 했습니다. 죄가 왕노릇 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왕노릇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죄가 왕노릇 하는 내 마음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모셔 들였습니다. 이제는 내 마음 안에 죄가 왕 노릇 하지 않고, 예수님이 왕노릇하시니까 예수님이 내 마음에 있는 모든 죄를 다 씻으시고 깨끗케 하셨습니다. 다윗은 미워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울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미움을 쫓아주었기 때문에 다윗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는데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의 두려움을 쫓아줬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 감옥에서 고통할 수밖에 없었는데 고통하지 않고 찬송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에 고통을 쫓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앞으로 우리가 30년이나 50년을 더 살 수도 있고, 8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왜 우리가 슬퍼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일이 없겠습니까? 왜 우리가 고통하거나 괴로워해야 할 일이 없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괴로움에 빠져야 합니까?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면 하나님이 두려움이나 슬픔이나 고통이나 의심이나 미움을 쫓아주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의 주인이 되면 여러분은 그것 때문에 고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죄에서, 두려움에서, 슬픔에서 건져주시고 참되고 복된 삶을 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 2005. 1. 9 주일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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