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입었지만 자기 생각을 따라간 사람의 최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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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입었지만 자기 생각을 따라간 사람의 최후는?
[마태복음 22장 1절 ~ 14절]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9.06.2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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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혼인잔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읽은 마태복음 22장의 임금님의 혼인잔치 이야기는 21장에 기록된 포도원 농부에 관한 이야기와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는데 그 마음을 무시하고 거절해 결국 저주를 받는 이야기입니다. 22장을 보면 임금님께서 은혜를 베풀려고 아들의 혼인잔치에 백성들을 초청했는데 그들이 임금님의 성의를 무시했습니다. 심지어는 초청하러 온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21장에서는 어떤 주인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포도를 심고 잘 가꾼 귀한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었습니다. 이 농부들은 아주 가난하고 어렵게 살다 포도를 팔게 되면서 삶이 너무나 좋아지고 행복해졌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도 우리 동네에서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소작농이었습니다. 소작농들은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땅을 빌려줄 때 농사가 잘되는 땅은 본인이 농사를 짓고 소작농에게는 주로 척박한 곳을 줍니다. 그런 땅을 받아 소작농이 1년 동안 정성을 다해 농사를 지으면 추수한 것의 반을 땅주인이 가져갑니다. 소작농이 반을 가져간다 해도 비료값, 농약값 특히 모내기할 때나 추수할 때 품꾼을 써야 하는데 그 삯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떼고 나면 소작농은 남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정말 죽지 못해 소작농을 하는 것입니다. 그나마도 소출이 적으면 땅주인이 다른 소작농에게 땅을 옮겨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보릿고개 시절

1951년 어느 날 아침, 어머니가 몸이 안 좋다며 화장실에 다녀오시더니 그대로 자리에 누우셨는데 그렇게 3일을 누워계시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 형편이 너무나 어려워 병원에 모시고 가지를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철없는 아이라서 잘 몰랐지만 종종 ‘어머니를 병원에 한번 모시고 갔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저희 집뿐 아니라 밥을 굶는 집들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부인들이 영양실조로 야맹증에 많이 걸렸습니다.
부인들은 남편이 밖에 나가 일을 해야 하니까 밥을 꼭 먹여야 하고, 아이들도 커야 하니까 밥을 먹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주로 자신들이 굶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을에 수확한 쌀이 바닥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4~5월을 보릿고개라고 합니다. 농촌에서는 부인들이 ‘보릿고개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할 정도로 그 시기가 가장 배고픈 때입니다.

은혜를 입은 포도원 농부

자기 논이나 밭이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어렵게 살았습니다. 아마 마태복음 21장의 농부들도 이런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는 농부들에게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세(貰) 준 것입니다. “내가 먼 나라에 가면서 다 정리하지만 이 포도원만큼은 계속 유지하고 싶네. 자네에게 이 포도원을 맡길 테니 소출의 반만 내게 주게나. 잘 가꾸어진 포도원이라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고 좋은 포도가 열려 내다 팔면 자네도 잘 살 수 있을 걸세.”
농부들은 포도가 익자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에 가니 품질이 아주 좋다고 서로 그 농부들의 포도를 사려고 했습니다. 농부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신발 하나 사는 것도 몇 해씩 미룰 수밖에 없었는데 형편이 좋아지니 필요한 것을 쉽게 살 수 있었습니다. 아팠던 아이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 낫게 되었고 가족들과 외식도 하면서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잘 모를 거야. 우리는 옛날에 참 많이 굶고 어려웠었어. 그런데 주인님이 이 포도원을 우리에게 맡기신 후로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게 되었단다. 이건 다 포도원 주인의 은혜야. 지금 주인이 안 계시지만 혹시 오시면 너희들 인사 잘하고 고맙다고 말씀드리렴.” 농부들이 자녀들에게 이야기하자 “예, 아빠 그럴게요”라고 자녀들이 대답했습니다. 농부들은 포도원 주인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주인의 종들이 찾아오자

그러던 어느 날 포도원에 왠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당신들, 누구요?” “예, 저희는 이 포도원 주인의 종들입니다. 주인님께서 세를 받아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농부들이 반갑게 그들을 맞았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들어오십시오. 주인님은 평안하십니까? 저희가 어렵게 살았는데 주인님께서 이 포도원을 맡겨주셔서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주인님께 늘 감사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평소에 농부들은 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세를 받으러 온 종들을 보자 이상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주인 없이 몇 년을 지내면서 포도원이 자신들의 것처럼 느껴졌는데 세를 받으러 온 사람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농부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종들에게 “야, 이놈들아! 세를 받으러 왔으면 왔지 왜 이렇게 거만해?” 하며 시비를 걸었습니다. “아이고, 저희가 뭘 했다고 그러십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이것들 말대꾸하는 거 봐 안 되겠어. 한 대 맞아야겠네.” “화내지 마십시오. 저희는 그냥 세 받으러 왔습니다.” “말끝마다 대꾸야. 이 자식,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안 되겠네.”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성경에 이런 이야기는 없지만 제가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평소 농부들은 주인에게 잘하고 싶었는데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왜 변했을까?

여러분,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포도원의 농부들이나 왕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거부한 백성들의 이야기를 하실까요? 그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저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인간이 어디 있어. 주인의 은혜도 모르고 주인의 종들을 죽이고 그 아들까지 죽이다니 말도 안 돼.’
그런데 구원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일보다 복음과 교회를 먼저 생각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거만해지면서 말씀을 무시하고 교회를 비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전에 죄 사함을 받고 너무나 감사해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보면서 ‘아, 이 성경이 맞구나. 사람이 정말 그렇구나’ 하며 가슴 아팠던 적이 많습니다. 

평소 생각지도 않은 말을

한 농부가 저녁에 집에 돌아와 아내한테 이야기합니다. “여보, 나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주인이 보낸 사람들을 죽였어. 어떡하지?” “당신, 도대체 왜 그랬어요? 주인한테 늘 고맙다며 아이들에게도 주인을 만나면 잘하라고 했던 당신인데…. 아까 주인의 종들을 대하던 당신은 미친 사람 같았어요.” “여보, 내가 그때는… 당신 말이 맞아, 미친 게 맞아. 난 미쳤었어! 다음에 주인의 아들이 오면 어떡하지? 여보, 그땐 무릎을 꿇고 ‘내가 죽을 죄를 지었고, 주인님의 은혜를 망각했다’고 간절하게 용서를 빌 거야. 주인의 아들이 나를 죽이면 죽고, 내쫓으면 내쫓길 수밖에 없어. 그렇게 할 거야.” “그래요. 여보.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어요. 주인이 우리에게 베푼 은혜가 너무나 큰데 당신 정말 잘못했어요” 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상상해봅니다.
여러분, 우리는 평소에 우리 자신이 생각지도 않은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포도원 농부들이 주인을 향하여 악을 행한 것처럼, 임금님의 혼인잔치에 초청받은 백성들이 가기를 거부했던 것처럼 사단이 우리에게도 생각을 넣어 주면 우리도 은혜를 베푸시려는 하나님을 향하여 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단은 우리보다 훨씬 지혜롭기 때문에 우리를 조금씩 세상으로 흘러가게 해서 쾌락도 좀 즐기게 하고 어떨 때는 교회가 부담스럽고 귀찮다는 생각도 들게 하면서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합니다.

농부의 두 가지 생각

여러분,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임금님이 베푼 혼인잔치에 오기를 거부하고, 주인의 종들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내가 주를 위해 잘해야지. 내 삶을 다 바쳐야지’라고 생각할지라도 믿음으로 마음이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사단이 넣어주는 생각에 이끌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교회와 말씀에서 멀어지면 자기가 옳아 보이고 교회와 말씀이 틀리게 보입니다. 여러분, 포도원의 농부들은 자기들이 주인을 대적해서 주인이 보낸 종들을 죽이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이 포도원으로 찾아왔을 때 포도원의 농부들은 두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도련님, 이 미련한 인간에게 주인님께서 포도원을 주셨는데 제가 순간 교만해져서 종들을 함부로 대하고 때려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저 같은 놈은 죽어 마땅합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야, 그런다고 종을 죽이기까지 한 너를 용서해 줄 것 같아? 어차피 너는 끝장이야. 그런 것 아무 소용없어…. 주인은 나이가 많아서 앞으로 몇 년 안에 죽을 거야. 이때 저 아들만 죽이면 포도원은 우리 것이 될 거야’ 하며 악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들을 보낸 포도원 주인

주인의 아들이 찾아와 농부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자네들, 지난번에 왜 그랬는가? 아버지가 섭섭하게 여기셔. 아버지 앞에 마음을 돌이키고 순종하게.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은 자네들에게 앞으로도 포도원을 맡겨주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야.” 그런데 포도원의 농부들은 이런 주인의 마음을 무시합니다. “허허, 도련님의 마음이 되게 넓으시네요. 그렇게 말한다고 제가 속아 넘어갈 것 같아요? 어차피 저희들을 처벌하실 거잖아요. 이참에 포도원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아니, 자네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자네들을 처벌하려면 군대를 보내지 나를 보냈겠어? 나를 보낸 건 자네들이 마음을 돌이키라고 하시는 거야.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지금 바로 돌이키면 돼.” 아들이 계속 아버지의 마음을 전달해도 농부들은 여전히 마음을 돌이키지 않습니다. “도련님, 천사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천사가 아닙니다. 도련님이 없어져야 우리가 포도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도련님이 제 발로 걸어오셨으니까 우리에게 기회가 온 겁니다. 죽어 주셔야겠습니다.”

‘정말 잘하려고 했는데’

여러분, 이 농부들이 특별히 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바로 우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이와 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모릅니다. ‘나는 그러지 않을 거야.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주인의 아들을 죽이겠어? 내가 조금 부족한 면이 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포도원 농부들이 종들을 죽이고 아들까지 죽이자 포도원의 주인은 군대를 보냈습니다. 군인들이 포도원을 에워싸고 말합니다. “포도원의 농부들은 들어라! 항복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겠다.” 포도원 농부의 아내가 말합니다. “여보, 나가서 항복해요.” “어차피 죽을 건데 뭘 나가? 불에 타죽지.” “여보, 그래도 나가서 항복해.” 농부의 아들도 말합니다. “아빠, 왜 주인의 아들을 죽였어요? 아빠가 우리에게 포도원 주인한테 잘 하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했어요. 이제 우리 죽는 거예요?” 그때 포도원 농부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난 죽어도 마땅한 놈이지만 나 때문에 너희들까지 죽게 되겠구나. 정말 미안하구나. 이제 와서 아무 소용없는 말이지만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다. 나는 진짜 주인에게 잘하려고 했는데.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정말 모르겠다.’

결국 육신과 욕망으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기뻐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까? ‘주님, 나같이 더러운 인간을 위하여 주님께서 피 흘리며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죽을 순 없지만 복음을 위해,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생각만 있는 게 아니라 육신적인 생각도 있습니다. 설교를 듣거나 말씀을 읽는 것보다 세상적인 이야기가 더 좋아서 조금씩 조금씩 주님에게서 멀어지면 우리는 결국 육신과 욕망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럴 때 사단은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믿음도 좋지만 일단 살고 봐야 하는 것 아냐?’ 하며 우리의 행동을 타당하게 여기도록 만듭니다. 주님을 믿기보다 자기 생각을 옳게 여기고 따라가는 사람은 사단에게 공격받기 아주 쉬운 대상이 됩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지난주에 미국 스프링필드를 다녀오면서 뉴욕에 사는 손주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성경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 우리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들이 어디를 가든지 성경을 하루에 20장씩 읽어라. 누나나 형이 있으면 같이 읽어라. 그러면 말씀이 네 마음에 살아서 사단의 굴레에서, 욕망에서 너희를 건져줄 거야. 할아버지는 너희들이 복음전도자가 되길 원해. 복음전도자는 성경을 많이 읽어야 돼.”
오늘 아침에는 손주들이 모여서 성경을 한 시간 동안 한 절씩 돌아가며 읽어서 창세기 20장까지 읽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좋아하는 것이나 맛있는 것을 사줄 때 자녀가 기뻐하는 것을 보고 만족해하지 말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사단이 우리 마음을 흔들었을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 내 의견보다, 내 생각보다, 내 지혜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박 장로님의 간증

한번은 우리 교회 박 장로님이 간증하면서 “교회의 결정은 최소한 내 결정보다 낫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래서 저분이 장로가 됐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쉽게 교회를 비판하고, 나쁘게 말해 결국은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자매들까지 멸망으로 끌고 갑니다. 그것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이 악한 일인데 어리석게도 사단이 넣어주는 생각에 속아 복음을 대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는데 그럴 수 있겠습니까. 사단이 아니면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 이 자리에 앉은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단을 이길 수 있는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말씀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단이 주는 생각에 속아 우리도 모르게 사단의 종이 되어 교회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종을 시들하게 여기게 되면서 결국 자기 생각을 따라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CLF 모임을 통해

현재 기독교지도자연합(CLF) 모임을 통해 전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이 기쁜소식선교회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스프링필드에서 열린 CLF에도 많은 목회자들이 참가해 말씀을 듣고 우리 선교회와 교류하고 싶어했습니다.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 선교회의 수많은 형제자매님들은 지금까지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치고 마음을 함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삶을 귀히 여기셔서 정말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복음으로 돌아와 구원받고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복음을 위해 한다면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 앞에 마음을 정하지 않고 살면 주님과 마음이 멀어지고 사단에게 이끌리게 됩니다. 시편 11편을 보면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면 잘못될지도 몰라. 산으로 도망가자. 거긴 안전해’라며 여호와의 품에서 떠나는 순간 사단은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활을 겨누며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22장의 왕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백성들이 왕의 초대를 거부하여 비극을 맞이한 것처럼 어리석게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마음이 멀어져서 교회를 무시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생각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우리 가운데 누구든지 이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각을 믿게 됩니다. 그러면 금방 사단의 밥이 되어서 포도원 농부들처럼, 왕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거부한 백성들처럼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우리 자신을 믿지 않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예수님과 하나가 됩시다. 형제자매와 하나가 되고 교회와 하나가 되어 주님이 오시는 날 기쁨으로 주 앞에 서게 되길 바랍니다. 포도원의 농부들처럼 왕의 잔치에 초대를 받은 백성들처럼 은혜를 입고도 자기 생각을 따라가 저주를 받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 모두 새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길 바랍니다.
- 2019. 6. 1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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