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죄가 눈처럼 깨끗하게 된 사실을 믿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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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죄가 눈처럼 깨끗하게 된 사실을 믿어야
[요한복음 5장 1절 ~ 13절] - 2019. 5. 19. 주일 오전예배 설교 -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9.05.2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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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경세미나를 마친 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반기 서울 성경세미나를 은혜롭게 마쳤습니다. 최근에 저는 기독교지도자연합(CLF)을 통해 전 세계 목회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성경세미나 기간에도 CLF 모임을 가졌는데 수많은 기성교회 목회자들이 죄 사함을 받고 기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인생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얻는 이 일을 위해 사는 동안 하나님이 길을 여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볼 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사실 성경을 읽어 보면 우리가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은 정말 쉽고 단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나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장로님이 “내가 장로지만 하나님을 만나기 너무 어렵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박옥수 목사를 만나고 싶을 때 강남교회로 오면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산에서 저를 찾으면 만나기 무척 어렵습니다. 누구를 만나고 싶을 때 그 사람이 있는 곳이나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 등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성경 말씀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따라 전혀 엉뚱한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신앙이 어려운 이유

무엇을 오랜 시간 배우면 선수 만큼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수십 년을 믿은 분들도 신앙은 어렵고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것은 신앙을 말씀이 아닌 자기 관점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로마서 3장 10절의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우리가 의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로마서를 조금만 읽어 봐도 그것이 아닌 걸 금방 알게 됩니다. 로마서 3장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는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 로마서 4장에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의롭게 되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신앙이 어렵습니다. 그렇게 신앙하면 수십 년을 해도 진정한 신앙을 할 수 없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천사

요한복음 5장을 보면 38년 된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이때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 낫게 된다고 하여 많은 병자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 보면 그 천사는 타락한 천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 그 천사의 방법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법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지만 한 번도 돈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베푸셨습니다. 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자, 남보다 더 노력하고, 더 잘하고, 더 뛰어난 사람에게 역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방법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어떤 대가와 노력으로 되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두 번째로 이 천사는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오셨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전부 연못가에 두게 하여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곳에 있었지만 아무 소망 없는 이 38년 된 병자 외에는 단 한 사람도 나음을 입지 못했습니다. 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이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물이 동할 때 자신이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연못을 쳐다보고 있느라 예수님이 오셔도 모릅니다. 반대로 가족도, 친척도 없고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돈 한푼 없이 지낸 軍 생활

제가 입대할 때 주위 어른들이 돈을 많이 주셨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면서 군대에 돈을 가져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입대하는 날 목도장을 새겼는데 100원을 주어 30원을 거슬러 주어 그 30원을 가지고 입대했습니다. 저희 내무반은 토요일마다 돈을 거두어 회식을 하였는데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집은 시골에서 농사짓는 가난한 집이라 집에서 돈을 가져다 쓸 수 없습니다. 저에게 보급되는 담배와 봉급 다 가져가고 저에겐 돈 내라고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렇게 저는 3년 동안 돈 한푼 없이 군 생활을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제게 반드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제가 제대하는 1968년도에 김신조 사건이 일어나 당시 전역자들의 제대 일자가 다 연기되었습니다. 제가 제대할 때는 53일 만에 제대 특명이 내려왔는데 저는 하루 차이로 특명 날짜에 포함되어 다른 사람들보다 두 달가량 먼저 제대하게 되었습니다.

제대하는 날 정문을 나서면서

저는 당시 교회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제대 준비를 하려고 내무반에 가보니 철모와 총만 놔두고 제 관물을 누군가 다 훔쳐갔습니다. 당시 관물을 관리하는 보급병이 저에게 “박 병장님, 관물 반납 안하면 전역 못해요. 반납하셔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제가 내무반에서 최고 고참이었기 때문에 내무반 사람들 모아 놓고 “야, 이놈들아. 고참 물건을 훔쳐가?” 하면 금방 제 관물을 채울 수 있었지만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주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주님, 주의 은혜로 3년 동안 돈 한푼 없이 너무나 은혜롭게 지냈습니다. 제가 이제 제대를 해야 하는데 관물을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제대를 한 달 남겨 놓았을 때 저희 부대에 처음으로 군목 한 분이 오셨는데 어느 날 그분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박 병장 관물 반납했어요?” “예, 목사님 잘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였는데 그분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더니 2500원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당시 병장 봉급이 360원이니까 2500원이면 상당히 큰돈이었습니다. “목사님, 괜찮습니다.” “받으세요.” “괜찮습니다.” “받으라니까요.” “예…, 목사님,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이 주신 돈으로 관물 반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대하는 날 제가 복무하던 통신훈련소 정문을 나오는데 ‘이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사하라 사막에서도 살겠고 남극에 가도 얼마든지 지내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이 저를 지키시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강도 만난 자가 한 일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눅 10:30~35)
여기에 강도 만난 자가 죽어가고 있을 때 선한 사마리인이 그를 살려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구원받는 과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강도 만난 자에게 누가 왔습니까? 사마리아인이 왔습니다. “불쌍히 여겨” 누가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까? 사마리아인입니다.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누가 그를 치료하고 돌보아 주었습니까?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은 주막 주인에게 그를 부탁하며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고 말합니다.
이 과정 속에서 강도 만난 자가 한 일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부 사마리아인이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무엇인가 한다면 그건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은혜로 값없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면 낼수록 구원에서 멀어집니다.

연못가의 두 부류 사람들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천사가 물을 동하게 할 때 스스로 연못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부류는 누군가가 자기를 물에 넣어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이 두 부류의 사람 중에 누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까? 바로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묻자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 5:7)라고 대답합니다. 다시 말해 이 사람은 천사가 물을 동하게 하는 것을 봐도 스스로 연못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곧 그 사람이 바로 은혜를 입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믿음’의 의미

오늘날 많은 교회가 ‘믿음’을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바꿔놓았습니다. 여기 38년 된 병자가 한 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자기의 형편을 보는 눈을 버리고 일어나니까 다리에 힘이 생기고 걷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거꾸로 교인들에게 충성하고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믿음의 삶이고 신앙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성화(聖化)’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점점 거룩해져 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거룩해지려고 합니다. 성경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4절에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러운 인간이 거룩해지려고 해서 거룩해지겠습니까? 안됩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영원히 거룩하게 해놓은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다면 우리가 스스로 거룩해 지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즉 성화되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우리가 거룩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이 거룩함은 영원하고 온전한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발을 내딛었을 때

우리가 볼 때 요한복음 5장의 38년 된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단순히 병 낫는 이야기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38년 된 병자는 자기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물이 동하는 걸 보고도 들어갈 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원은 바로 그런 사람을 건져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우리를 이미 온전하게 했고 거룩하게 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걸어가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38년 된 병자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라고 하시면 난 이미 걸어갈 수 있도록 온전해졌구나’라고 말씀을 믿으며 발을 내딛었을 때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명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영원히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일을 모두 마치셨습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는 일을 마치지 못하셨다면 앉아 계실 수 없으실 것입니다.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하시고’라는 말은 이미 끝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앉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맡긴 사명을 끝마쳤다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것은 지금이 아닙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이미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면 오늘 5월 19일이라는 날이 구원받은 날이 되지만 실제 우리의 모든 죄는 이미 2천년 전 십자가에서 끝났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할 때마다 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영원히 사하셨습니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시간계에 존재하지만 영원계는 과거나 미래가 없는 현재만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영원계에 계시기 때문에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사하실 때 영원히 사했기 때문에 앞으로 태어날 사람의 죄도 이미 십자가에서 다 끝났습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죄를 다 끝내셨습니다.

CLF에 참석하신 목사님들

하나님이 제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되돌아보니까 제가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절대 자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키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좀 섭섭하게 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섭섭하게 하지 마십시오. 이번에 CLF를 하면서 여러 번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참석하신 목사님들 전부 그 나라의 기독교 지도자들이고 아주 높으신 분들입니다. 제가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때론 목소리를 높여가며 말씀으로 싸웠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분들이 다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그분들의 간증을 들으면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앞으로 미국의 스프링필드에서 유럽, 아프리카, 미국의 수많은 구원받은 목회자들에게 이 복음을 체계적으로 교육할 것입니다. 이 죄 사함의 비밀이 하나님의 은혜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인도를 따라 그 일에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요한복음 8장을 보면 간음한 여자가 구원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요 8: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까? 그 말씀은 간음한 여자에게만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이 시대의 간음한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에 거짓말한 사람, 도둑질한 사람, 모든 죄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이 말씀을 믿을 때 예수님께 정죄를 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 선교회는 온 세상에 모든 힘을 다해서 이 복음을 전합니다. 해외 선교사님들뿐만 아니라 국내의 많은 목사님들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들이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현지 목회자들과 정부 인사들이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너무나 행복합니다. 죄인에서 벗어나 의인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옮겨지는 이 역사는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실 때 인간의 어떤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오직 예수님의 온전한 희생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노력이나 수고는 예수님에 의해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명확하고 확실하게 눈과 같이 깨끗하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에겐 그것을 믿는 일만 남았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지불한 것을 믿으십시오. 그 다음에는 노후, 자녀 문제 등 우리의 삶과 모든 장래 일에 대해서 우리가 하는 것보다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 나은 것을 믿고 주님께 맡기십시오. 순간순간 예수님의 귀한 손길이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은 절대로 변치 않으십니다. 절대로 말을 바꾸시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가 받을 이 모든 은혜에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수고나 노력은 예수님이 다 지불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죄가 사해졌다는 말씀만 확실히 믿으면 됩니다.
여러분, 지금 믿으십시오.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그 다음부터 여러분의 인생을 예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예수님만큼 온전하고 완벽한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온 50여년 동안 예수님은 한번도 저에 대한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시고 부족하고 연약한 저와 늘 함께하시면서 도우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제 남은 생을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을 위해 사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인생을 붙잡고 지키시고 도우신다면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없을 줄 믿습니다. 
- 2019. 5. 19.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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