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羊)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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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羊)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 10장 1절 ~ 15절] - 이 시대 우리를 향한 사랑의 메시지 - 2019. 5. 5. 주일오전 예배 설교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9.05.1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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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국 성경세미나를 마치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2주 동안 미국 LA와 뉴욕, 독일, 러시아에서 집회를 하고 오늘 아침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2주 동안 미국과 유럽 지역에 복음이 힘 있게 증거될 수 있어 무척 감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느껴지는 것은 여러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있어도 예수님의 양이 되어 주님 안에 있는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은 여실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며칠동안 러시아 모스크바와 페름, 그리고 보로네시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어제 보로네시에 도착했는데 작년에 기독교지도자모임(CLF)에 참석하셨던 보로네시 침례회 회장이신 알렉 목사님이 주변 목회자 100여명을 모아놓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에게 말씀을 전한 후 알렉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에 가서 300여명의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러시아의 침례회장 목사님

그다음 일정으로 보로네시의 가장 큰 공연장에서 그라시아스 시민 음악회를 하고 말씀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공연 시작 시간이 다 되어 가도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시작할 때가 됐는데 왜 사람들을 들여보내지 않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이미 2500석이나 되는 객석이 꽉 차있어 더 이상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공연장 측에서 추가 입장이 절대 안된다고 하다가 다행히 500명 정도 더 들여보내주어 그분들과 참 행복하고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음악회 후에 제가 말씀을 전하면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참석하신 분들이 설교를 잘 들어주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저는 보로네시에서 일정을 마치고 다음날 새벽 모스크바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갔는데 알렉 목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한국에 한 번 더 가고 싶다고 하시면서 정부에서 700평의 땅을 주어 신학교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알렉 목사님은 다른 목사님과 정말 달랐습니다. 당신도 큰 교회 목사이고 침례회 회장이신데 이분은 겸비한 마음으로 성경을 계속 배우고 싶어하시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자기 주장대로 살 수 없어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나옵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다 어느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진흙을 이겨 그 소경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 소경은 예수님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저 같으면 눈에 누가 진흙을 바를 때 “왜 이러세요? 하지 마세요”라고 할 것 같은데 그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 씻으라는 말을 듣고 소경이라 길이 어딘지도 정확히 모르지만 말씀대로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소경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소경은 자기 삶에서 어느 길이 좋은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결정이나 자기 주장을 따라 살 수 없었습니다. 실로암 못으로 가는 길을 물어볼 때 어떤 나쁜 사람이 일부러 잘못된 길을 가르쳐줄 수 있지만 가르쳐준 그 길을 따라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경의 마음

아마 그 소경은 남에게 수없이 속기도 하고 모욕을 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나쁜 사람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한번씩 예수님 같은 분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일하십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왜 실로암 못에 가야 하는데요? 씻는다고 눈이 밝아져요? 저 지금 바빠요. 눈뜨는 것보다 당장 돈 벌어 밥이나 배부르게 먹고 싶어요” 하는 식으로 자기 주관을 내세워 말씀을 순수하게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복음전도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복음 때문에 핍박받는 일이나 가난 또는 전도가 잘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전도자들이 자신을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기고 사람들이 변하는 것을 보면 서서히 자기가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전도자에게 가장 어려운 시련입니다. ‘야, 나도 좀 되는구나’라는 마음이 들면 그때부터 복음전도자는 타락하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선을 넘으면 이제 자신이 주님보다 높은 사람이 되고, 주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따라가게 됩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이 소경은 자신의 주관으로 길을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소경이 연못 근처에 간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따라 실로암 못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는데 정말 눈이 밝아졌습니다. 실로암 못에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있었고 소경의 마음에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예수님의 모습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귀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소경은 자신에게 분별할 능력이 없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지 않고 주님의 음성을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요한복음 9장 41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인도는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우리가 참 목자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주님의 말씀이 믿어지면 마음의 고통이 없어지고 새로운 힘이 생기고 소망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따라가느라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각 교파가 생긴 이유

이번 미국, 독일, 러시아를 순방하면서 여러 CLF 모임을 통해 많은 목사님들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요즘 성경을 읽지 않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이 두꺼운 성경 속에 얼마나 깊은 진리가 담겨 있는데 어떻게 한두 번 읽고 알겠습니까? 저도 처음에는 성경을 잘 몰랐습니다. 약 30번 정도 읽은 후부터 성경의 흐름을 알게 됐습니다.” 장로교, 감리교, 순복음, 오순절 등 각 교파가 왜 생겨진 줄 아십니까.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어느 한쪽에만 초점을 맞춰 그것만 주장하다 보니 교파가 나눠진 것입니다. 장로교가 주장하는 예정설을 보면 하나님은 영원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자와 멸할 자로 예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 또한 성경의 한쪽면만 봐서 그렇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택한 사람일지라도 불순종하면 버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도 예수님이 택한 사람이었는데 저주받았고, 사울 왕도 하나님이 택했지만 아말렉을 모두 진멸하라는 말씀을 무시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성경을 보면 한눈에 예정설이 틀린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많은 목사님들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는 성경 한 곳만 보고 의인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어 보면 의인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바로“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였습니다. 의인이 아닌 사람은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의인이 확실히 됐을 때 믿음으로 사는 삶이 됩니다.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된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흘린 그 피로 우리 죄를 다 씻어놓고 의롭다고 한 말씀을 못 믿는 사람이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천국에 간다고 말합니다.
성경 호세아서를 보면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호 14:9)는 말씀이 있고, 창세기에는 “노아는 의인이요”(창 6:9)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의인이라는 단어가 수없이 나옵니다. 로마서 전체를 읽어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는 말씀의 참 뜻은 인간의 행위로는 의롭게 된 사람이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가장 쓸모없는 사람

요한복음 1장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1~5)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고,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영적 생명을 살아나게 합니다. 말씀이 오기 전에는 육신의 소욕이 우리를 이끌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온 후에는 이전에 우리를 이끌던 배고프다, 피곤하다, 즐기자 등 육신의 소욕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육신의 욕구와 싸우게 되고 어려운 일, 부담스러운 일을 하면서 예전에 우리 마음에 없던 하나님의 신비한 세계로 우리를 끌고 갑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복음의 일을 하다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우리 삶을 복되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실하거나 잘나거나 똑똑하다고 해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볼 때 제일 잘난 사람은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볼 때 제일 쓸모없는 사람은 말씀 앞에서 자신이 잘났다고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양의 참된 목자

오늘 읽은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1~9)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는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의견, 주장이 아닌 문 되신 예수님을 통과하면 예수님의 뜻,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몰랐지만 주님의 말씀 그대로 실로암으로 가 복을 받게 됩니다. 소경은 눈을 뜨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예수님의 지혜가 오고 예수님의 은혜, 축복, 사랑이 가득 차 그를 가장 복된 자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하신 예수님. 우리를 의롭게 하신 것을 알고 그분의 인도함을 따라 살 때 그분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받아 전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역사와 같은 역사를 작게나마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지혜가, 그 마음이, 그 사랑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말씀을 업신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을 받고 난 뒤에 우리 육신은 여전히 좋은 음식을 먹고 싶고, 좋은 곳에서 지내고 싶어합니다. 우리 육신은 예수님과 반대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밥을 굶을 수 없잖아요? 잠을 안 잘 수 없잖아요? 옷을 안 입을 수 없잖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밥을 먹지만 예수님을 위해서 먹고, 옷을 입지만 예수님 위해서 옷을 입고, 잠을 자지만 예수님을 위해서 자고 그렇게 살면서 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여러분, 저는 주님의 말씀 하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말씀 한마디가 제 안에 들어와 저를 죄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말씀 한마디가 제 안에 들어와 제 삶을 밝고 복되게 해주었습니다. 말씀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꾸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저는 자주 많은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목사가 되십시오. 정말 좋습니다.” “무엇이 좋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중에 가장 기쁘고 감사한 것은 목사가 되면 복음을 전해 어떤 때는 한 명이, 어떤 때는 수많은 사람과 목회자들이 구원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귀한 복음을 위해서 배 좀 고프면 어떻고, 멸시 좀 당하면 어떻고, 어려움 좀 당하면 어떻고, 잠 좀 적게 자면 어떻습니까?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고 우리는 주를 따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는데 사단이 우리를 속여서 주님을 위하기보다 육으로 흘러가도록 합니다. 사단은 매일매일 속삭입니다. ‘이렇게 하면 편해, 이렇게 하면 행복해, 이렇게 하면 좋아.’ 그렇지요? 그러나 그 음성을 따라간 순간 우리가 서 있는 길이 주님의 길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뉴욕의 소망없는 그들에게

저희는 미국 스프링필드에 있는 신학교를 인수해 해외의 구원받은 목회자들을 교육하는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십만명이 넘는 기성교회 목회자들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스프링필드에 와서 성경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기뻐합니다. 목사님들이 제게 “목사님, 제 아내와 아들도 목사입니다. 그들도 여기 와서 성경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이곳에 오지 못한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오셔서 집회를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성경을 가르쳐 주십시오”라며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이번 뉴욕성경세미나 전에 뉴욕교회는 시내곳곳에 “기도해드립니다”라는 문구의 광고판을 붙였다고 합니다. 의외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와 기도를 부탁해 무척 놀랐습니다. “제 아들이 병에 걸렸습니다.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썼는데 안됩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기도해 주세요.”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양보하고 대화를 나눠보려고 해도 안됩니다. 너무나 답답합니다.” “남편이 알코올 중독에서 이제는 마약중독자가 됐습니다. 이 사람을 여기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과 함께 그들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같이 눈물을 흘리며 소망 없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할렘이 달라졌어요

미국 뉴욕에는 할렘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그곳은 거칠고 험악한 곳으로 마약소굴이라고도 불려 한때는 ‘할렘 아파트가 1달러 한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곳에 미국 형제자매들이 예배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거리로 나가 전도를 하면서 집집마다 찾아갔습니다. 
할렘 시민들이 “여기가 어떤 곳인줄 알고 이렇게 찾아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할렘은 위험한 곳이지만 저희들은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할렘이 점점 달라졌습니다. 그곳 시민들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할렘을 바꾸고 있습니다. 구원받는 사람이 일어나면서 이곳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여기에 왔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집회와 칸타타 공연에 초청했습니다.

복음의 열매를 맺는 삶

요한복음 10장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박옥수 목사에게만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와 죄 사함을 받은 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양들입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여러분들은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의 육신을 위해서 살던 것을 버리고 밥을 먹어도 예수님을 위해 먹읍시다. 잠을 자도 옷을 입어도  주를 위해서 하십시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 예수님의 사랑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단은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은 것처럼, 우리 마음에도 끊임없이 악하고 더럽고 음란한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예수님의 힘이, 지혜가 그 모든 악을 이기고 우리를 통해서 귀한 복음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할 줄로 확실히 믿습니다. 
- 2019. 5. 5. 주일오전 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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