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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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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느끼는 세계와 믿음의 세계는 매우 달라[요한복음 11장 17절 ~ 44절] 2019. 3. 31. 주일 오전예배 설교, 756 호

마음의 세계를 표현한 책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있습니다. 길을 걷다 사람들을 만나면 기쁘고 반갑게 웃을 때도 있지만, 어느 때는 별로 반갑지 않아서 얼굴을 찌푸릴 일도 있습니다. 또 어제까지 즐겁고 다정하게 지냈던 친구가 하룻밤 사이에 마음이 달라져 태도가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은 수없이 변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전부 우리 마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 보면 ‘세상에 이런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마음의 세계가 아주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우리 마음을 비추어 보면 그동안 ‘나도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다가도 ‘내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몰랐구나. 참 어리석었구나!’라는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오늘 아침에 읽은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곳에 있던 나사로의 가족인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가 죽었구나’ 하며 슬픔에 젖어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과 특히 나사로의 가족인 마르다와 마리아의 마음에는 ‘나사로가 죽어서 슬프다’라는 생각이 가득 차있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전했을 때 예수님이 금방 찾아오셔서 고쳐주시길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빨리 오시지 않고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오빠가 죽어갈 때 예수님이 계셨으면 얼마든지 살리실 수 있었을 텐데, 오시지 않아서 죽었어’라며 섭섭해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시는 걸 많이 보았기 때문에 나사로를 고치실 수 있다는 걸 의심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빨리 오셔서 고쳐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고만 말씀하시고 바로 오시지 않아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도 마리아는 나가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르다는 마리아보다 이성적이어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맞이하러 간 자리에서 예수님께 이야기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이 말에는 ‘예수님이 빨리 오시지 않아 오빠가 죽었어요’라는 뜻이 강하게 담겨 있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만 나사로가 살았다고 믿고 마르다와 마리아, 유대인들, 제자들은 모두 나사로가 죽었다고 믿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나사로가 살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나사로가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 나사로가 죽었지만 예수님의 마음속에서는 살아있었기 때문에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야. 네 오빠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시며 슬퍼하시거나 괴로워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귀로는 들었어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우리 오빠가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슬퍼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암에 걸린 한 부인에게

제가 오늘 새벽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데, 미국 LA에 사는 한 부인으로부터 암에 걸렸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나이 일흔이 넘어 암에 걸렸으니 이제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는 예수님이라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듯이 저는 목사이니까 “자매님, 그 암 걱정하지 마세요. 주님을 의지하세요. 예수님의 눈으로 자매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눈을 믿으십시오. 자매님이 볼 때 자매님은 암 환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볼 때는 아닙니다. 자매님이 볼 때는 무서운 암이지만 예수님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목사라면 그렇게 말해야겠죠? 목사는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뭐라고 하는지를 말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가 병이 안 나으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병이 안 나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한번은 어떤 자매님이 제게 찾아와서 “목사님, 저 이혼해야겠어요. 남편이 의도적으로 저를 경멸합니다. 그런 남자와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라며 자신의 사정을 한참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런 남편이라면 이혼해야지’라고 여기면서 “그럼 이혼해야겠네요”라고 말하려다가 다시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자매님을 사랑하셔서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는데, 이 자매님을 불행하게 하시겠나?…’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은 하나님의 딸인데, 하나님께서 자매님에게 왜 불행한 일을 주시겠습니까?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만 하나님이 남편을 좋게 하실 겁니다. 그러니까 이혼하지 말고 하나님이 자매님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봤으면 좋겠어요.” 그 자매님은 이혼을 결정했다가 제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제 말에 순종했습니다. 처음엔 무척 어려워하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자매님이 잘 견뎠고 3년이 지난 뒤 남편은 구원을 받아 그 자매님은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에스와티니 국립대학 졸업식

저는 오늘 예배를 마치고 저녁에 에스와티니(舊 스와질란드) 국왕을 만나러 출국합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선교회의 음악학교 학생들이 에스와티니로 해외봉사활동을 갔습니다. 어느날 그 나라 국립대학 졸업식에 두 명의 여학생이 졸업 축가를 부르러 갔습니다. 졸업식을 진행하는 분에게 “우리는 한국에서 온 음악학교 학생들입니다. 졸업 축가를 부르러 왔어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이 듣더니 “참 좋은 소식인데 아쉽다. 오늘 국왕께서 국립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시기로 되어 있다. 이미 국왕께 식순을 드려서 바꿀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졸업식에 참석만 할게요.” “그러나 아직 국왕께서 식장에 도착하지 않으셨으니 국왕이 오시기 전까지 너희들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겠다.” “좋아요!” “몇 곡 부를 수 있니?” “세 곡이요.” “그래.” 두 학생이 첫 번째 곡을 반쯤 불렀을 때 국왕께서 오셨습니다. 공연을 보며 국왕께서는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바로 좌석에 앉으셨습니다. 
졸업식을 마친 후 국왕께서 노래를 불렀던 학생들을 부르셔서 “너희들, 참 노래를 잘 부르네. 어떻게 우리나라 노래를 그렇게 잘하냐?”라며 여러가지 물어보셨습니다. “우리는 IYF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으로 에스와티니에서 활동 중입니다. IYF 설립자 박옥수 목사님이 열흘 후 이 나라에 오세요”라고 학생들이 얘기했습니다. 그런 후 제가 에스와티니 공항에 도착했을 때 국왕께서 장관을 보내 면담을 청하셨습니다. 

에스와티니 국왕과의 만남

그날 저는 기독교지도자연합(CLF)에 참가한 목회자들 300여 명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었는데 국왕께서 부르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부랴부랴 왕궁으로 가서 국왕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면담 시간이 40분인데 이미 10분이 흘러 남은 30분간 복음을 전했습니다. 면담이 끝났는데 국왕께서는 제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시더니 “목사님, 말씀을 좀 더 전해주세요”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1시간 30분 동안 말씀을 전해드리자 국왕께서 죄 사함을 받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목사님, 제가 땅을 드리겠습니다. IYF센터를 우리나라에 지어주세요. 예배당도 짓고 목사님 집도 짓고 늘 여기 와 계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왕궁을 나오면서 공주님을 만났는데 공주님의 요청으로 그분의 방으로 가서 고민을 듣고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에스와티니는 의술이 발달하지 않아 우리 선교회 의료진이 왕실을 방문해 진료했습니다.

서로 관점이 달라서

성경 속에는 예수님의 마음이 흐릅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는 죽어서 썩은 냄새가 나지만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나사로가 살아있었습니다. 우리 같은 영적인 소경들이 볼 때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눈은 예수님의 눈과 가깝습니까? 마르다의 눈과 가깝습니까?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우리는 눈으로 예수님을 볼 수 없고 인간적인 세계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신령한 영적 세계를 보는 눈을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의 관점과 예수님의 관점은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달라 신앙을 할 때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보시는 세계를 볼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도 우리처럼 보신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예수님은 높은 차원의 것을 보십니다. 예수님의 눈과 우리 눈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보신 것을 말씀으로 듣고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눈을 갖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분명히 나사로는 살았는데, 우리의 눈으로 보면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3~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우리의 눈으로 본 것을 더 믿으니까 나사로가 죽은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우리의 마음이 서로 달라지는 겁니다. 

「옥에 흙이 묻어」

우리나라 고시조 가운데「옥에 흙이 묻어」라는 시조가 있습니다.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다 흙이라 하는 고야. 두어라 알 이 있을지니 흙인듯이 있거라.” 이 시조는 옥의 가치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을 풍자한 것으로,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려졌으니까 사람들이 모두 흙으로만 보는 겁니다. 그러나 이 시를 쓴 작가만 옥으로 보는 겁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도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만 보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신비한 능력의 눈으로 보시고 말씀하시는 차이가 나타나 있습니다. 
요즘 CLF에서 자주 말씀을 전하는데,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죄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아주 선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의롭다’고 말하면 ‘거짓말! 죄 지어 놓고 죄 없다고 하네’ 하며 죄 없는 척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것은 성경과 너무나 다른 생각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죄인이 맞으니까 제가 틀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도 어려서 남의 밭에 들어가 서리도 하여 제 눈으로 볼 때 제가 죄인이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저를 보실 때는 의롭다고 하십니다. 그럼 제가 옳습니까? 예수님이 옳습니까? 마찬가지로 요한복음 11장에서 사람들이 볼 때 나사로는 죽었지만 예수님이 볼 때는 살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똑같은 사물도 보는 눈에 따라 이렇게 다릅니다.  

「베니스의 상인」을 읽어 보면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유명한 희곡이 있습니다. 베니스라는 도시에 수전노, 고리대금업자 유대인 샤일록과 선하고 교양 있는 안토니오가 있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로부터 여비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항해 중인 자신의 배를 담보로 샤일록에게서 돈을 빌립니다. 그리고 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할 경우에는 자기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근육 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증서를 써 줍니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자신의 배가 폭풍우로 모두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돈을 갚을 수 없자 절망했고, 샤일록의 소송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베니스 법정에서 재판관은 “안토니오, 당신의 증서대로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근육 1파운드를 주시오. 샤일록, 저울을 가져왔는가? 그대는 정확히 안토니오의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근육 1파운드만을 가져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라고 해서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베니스 법에는 베니스 시민의 생명을 노린 이방인의 재산을 몰수하게 되어 있다”라고 판결하여 샤일록은 재산을 몰수당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재판관은 참으로 지혜로워 보이지만 실제 작가인 셰익스피어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지혜가 부족해서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네 오라비가 산다”라고 말씀하시면 ‘산다’라고 따라하면 됩니다. 따라해 봅시다. ‘산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처럼 아주 쉽습니다. 다만 우리 지혜의 수준이 낮아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해서 ‘죽었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데도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눈과 다르게 보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어린 아들과의 대화

한번은 제가 대구교회에서 사역할 때 한 형제에게 돈을 세어 주었습니다. 그걸 지켜보던 어린 아들이 제게 “아빠, 이해가 안돼요”라고 했습니다. “뭐가 이해가 안돼?” “아빠는 돈이 그렇게 많은데 아이스크림 안 사먹어요?” “그게, 아빠와 너의 차이야.” 제 아들은 돈 있을 때 아이스크림만 사먹으면 좋아합니다. 저는 어린애가 아니니까 아이스크림도 좋지만 다른 데 돈을 지출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과 우리는 서로 생각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볼 때 분명히 나사로가 살았는데, 우리가 볼 때는 죽은 겁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도 슬퍼하고, 동네 사람들은 찾아와서 위로하며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는데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나?’ 하며 숱한 말이 오갔습니다. 

신앙의 원리는 단순해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살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이 나사로가 죽었다며 우니까 기가 막히고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 죄를 다 사했는데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묻힌 것과 썩어 냄새나는 걸 보며 아주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보는 눈과 다르게 영적인 세계를 보는 영적인 눈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하려면 우리 생각과 맞지 않아도 속히 우리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율법으로 죄인 된 것을 알게 하셨다가 ‘의롭다’ 하신 말씀을 믿으면 의인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틀린 사람인 걸 알면 우리 생각에는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의롭다 하신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 나사로가 죽었다 해도 예수님이 살았다고 말씀하시면 살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원리를 알면 신앙은 아주 단순합니다. 

믿음의 사람이란

여러분,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인데 마르다와 마리아는 다르게 생각하니까 이단(異端)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단이고, 그곳에 있었던 유대인들도 이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사로가 죽은 게 맞아! 죽어서 썩어 냄새가 나는데 뭘 살았다고 그래? 죽었어!”라며 큰소리칩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볼 때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에게 당신의 눈을 주길 원하셨고 당신의 세계를 주길 원하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었어!”라고 믿지만, 예수님은 “아니야. 네 오라비가 살았어! 네가 내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봐!” 하며 우리가 틀린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볼 때 나사로가 죽었지만 예수님이 살았다고 말씀하시면 산 거야. 내가 볼 때 더러운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의롭다 하시면 의로운 거야!’라고 믿는 게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고, 예수님 속에 있는 거룩함이 우리의 거룩함이 되고, 예수님의 의로움이 우리의 의로움이 되고, 예수님의 지혜가 우리의 지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이해하여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대로 믿습니다. 그렇게 저는 배가 아팠다가 나았고, 전신에 암환자였던 최수현도, 전갈에 물려 독이 퍼져 죽어가던 최요한도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살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생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면 의롭습니다’라고 받아들이면 참된 믿음의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듯이 여러분이 믿음으로 모든 병을 이기고, 몸이 다시 살아나서 예수님의 손을 잡고 예수님의 걸음을 걸어가는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
- 2019. 3. 3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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