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신 사실을 믿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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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신 사실을 믿어야
히브리서 10장 1절 ~ 18절 - 2019. 2. 17.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5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9.02.2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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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이 어려운 이유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19살 때까지는 지옥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긴 했지만 여전히 저에게 죄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지 못해서 ‘어떻게 죄 사함의 확신을 갖지? 죄가 없다는 게 말이 돼?’라는 생각을 무수히 했습니다. 오늘 읽은 히브리서 10장 1절부터 18절까지 말씀에서는 너무나 명백하게 우리 죄를 속하셨다는 말씀이 기록되었는데도 그 당시에 저는 성경을 읽어도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생각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매이고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 속에 자주 빠져 헤쳐 나오질 못합니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슬퍼해야 하며 또 앞으로 닥칠 문제를 염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고 전능하신 분이자 거룩하신 분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완전한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도 없고 우리의 개념으로 성경을 읽으면 전혀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세계기독교지도자연합(CLF)
 

저는 지난주에 남미를 방문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약 500명, 페루에서는 약 600명의 목회자들에게 각각 3일씩 그리고 파나마에서는 약 300명의 목회자들에게 2일 동안 세계기독교지도자연합(이하 CLF)을 통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제가 구원받기 전에는 죄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죄 사함 받은 후부터 성경을 읽을 때 말씀들이 하나하나 깨달아지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집회에 참가하신 목회자들도 그동안 죄 속에서 갈등하다가 매시간 들려진 말씀 속에서 죄 사함의 복음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들이 너무나 감격스러워했습니다. 일반 성도들에 비해 목회자 정도 되면 설교를 들으며 ‘이 말씀이 성경적이다. 아니다’ 구분할 수 있으니까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시간에 참 행복했습니다.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하신 책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과 반대로 이끌어서 성경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도록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믿어야 합니다. 오늘 읽은 히브리서 10장 1절에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는데 율법은 진짜가 아니라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1~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 우리가 다 지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는다고 하지만 반대로 율법의 계명을 하나라도 어기면 저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법을 다 지키겠습니다”라고 했음에도 모세에게 하늘나라 성전 모양을 보여주시고 그대로 이 땅에 짓고 속죄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법을 지키지 못하고 죄를 범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죄를 씻는 길을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에 대해 로마서 5장에서는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롬 5:1) 하며 죄를 더 짓도록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암에 걸렸다고 생각해 봅시다. 빨리 치료를 해야 한다면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그 사실을 모른다면 치료 받을 기회를 놓치거나 치료를 받지 못하여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죽을 수 있겠지요? 그것처럼 하나님은 율법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고 ‘내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구나. 내가 악하고 추하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려 죽어서 우리 죄를 사했어도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혔지?’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주님 앞에 죄 사함을 받으러 나오는 자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거나 노력해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율법

성경에는 율법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 율법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성경에는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시기 위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모세오경 중에서 출애굽기를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8~11) 하며 안식일을 지키라는 십계명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 율법은 네 번째 계명에 해당합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질 때까지인데 안식일에는 어떤 짐도 지지 말고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종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산골짜기를 오르면서 고통스러워하다가도 금요일 저녁 해가 넘어가면 지고 있던 짐을 다 벗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는 말씀처럼 안식일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입니다. 그렇다면 장차 오는 좋은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하시고 우리 죄의 짐을 다 벗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참된 의미

안식일에는 모든 짐을 벗는 것처럼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죄의 짐을 진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면 그 짐을 다 벗고 해방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안식일의 형식만 지키려는 것이지 참된 안식의 의미는 모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 4:10)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제 칠일에 쉬셨습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피곤해 못 견뎌 그런 것이 아니라 엿새 동안 일을 다 마쳤기 때문에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서 쉬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쉬신 것처럼 우리도 그의 안식에 들어오면 쉰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우리가 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쉼을 얻는 것입니다. 

해마다 드리는 제사의 한계

이제 히브리서 10장 1절부터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 10:1) 여기서 율법이란 말은 십계명이 아니라 ‘제사법’을 의미합니다. 또한 안식일에 우리가 지고 있던 모든 짐을 벗듯이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우리의 모든 죄 짐을 내려놔도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양이나 염소를 잡아 제사를 드려 죄를 씻었는데 그 속죄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사하는 것이 실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상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이 바뀌고, 일 년 365일 시간이 흘러가서 시간계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아무리 세월을 붙잡아 매려고 해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경주 국립박물관에도 가보면 금도 은도 녹슬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간계에서는 모든 것이 변합니다. 반대로 하늘나라에서는 무엇이든지 영원한데 우리 몸도 그와 같이 늙지 않고 변치 않는 곳을 영원한 세계라고 합니다. 

우리가 시간계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 현대자동차 회사가 한국에서 자동차를 만들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라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만들면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라고 합니다. 그럼 현대자동차를 한국 사람이 미국 가서 만들어도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라고 합니다. ‘Made in’이란 어디서 만들었냐는 것을 말합니다. 지구는 시간계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양을 잡아 드리는 속죄제사를 통해서도 죄가 사해지지만 시간계에서 했기 때문에 영원히 죄가 사해지지 않고 그 순간의 죄만 사해집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의 말씀에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 나오는 자들은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은 제사를 지내도 그 순간의 죄만 씻지 영원하게 씻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사함 받았지만 또 죄를 지으면 죄인이 되므로 다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제사를 드려 죄가 사해졌지요? 그러면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예, 의인입니다. 그러나 다시 죄를 짓기 전까지만 의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드린 속죄제사로는 우리 죄가 영원히 사해질 수 없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여러분,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라는 히브리서 10장 2절에서 ‘그렇지 아니하면’이란 말은 ‘만일 죄가 영원히 씻어졌다면 제사를 다시 드릴 필요가 없을 텐데’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 10:3~4) 하며 구약의 속죄제사는 근본적으로 죄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지은 죄만 사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죄를 사한다는 예표에 불과한데 만일 이 제사로 다시 속죄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면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회개하면 죄가 씻어지나?

히브리서 10장의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5)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번 제사를 드리고 또 죄를 지으면 죄인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번 드리심으로 영원히 죄를 사하는 속죄제사를 위해 예수님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히 10:7~9)라는 말씀은 구약시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려 죄가 사해지는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죄를 사하는 것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그 첫째 것을 보여주시고 폐하신 뒤에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란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우리 죄를 사하신다는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뜻을 쫓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 죄를 사하셔서 우리가 거룩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단번에 드리셨다는 것은 두 번째가 없는 단 한 번에 드린 제사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씻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속죄제사를 드렸던 제단은 진짜가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는 모형을 따라서 만든 겁니다. 하늘나라는 영원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제사를 드리면 죄도 영원히 사해집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피를 이 땅에 있는 제단 뿔이 아닌 하늘나라에 있는 제단 뿔에 바르셨기 때문에 그 제사는 단 한 번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모든 죄가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흘리신 피로써만 죄가 씻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회개함으로써 거룩하게 되었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회개는 해야 하지만 회개 자체가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 형벌을 받으시고 이미 죄를 영원히 씻어놓았는데 믿지 못하는 사람은 다시 죄를 씻을 길이 없습니다. 

식사비가 지불된 티켓

지난번에 미국에서 테리 선교사님이 한국에 왔다가 체류기간이 다 되었는데도 업무를 마치지 못해 비자 연장을 위해 잠시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그는 부산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타고 일본 항에 도착하여 내렸는데 마침 형제님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선교사님, 어서 오십시오.” “예.”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요.” “왜요?” “돈이 없어서요.” 배 안에서 테리 선교사님은 가진 돈이 없어 음식을 사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어만 할 수 있는 선교사님은 티켓 정보를 몰라서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형제님이 테리 선교사님이 타고 온 배의 승선 티켓을 확인한 후 “이 티켓 가격에는 식사비가 포함되어 있음”이라며 한국어와 일본어로 적힌 문구를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믿든지 믿지 않든지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의 값을 예수님이 모두 지불했습니다. 배의 승선 티켓을 구입했을 때 이미 음식값이 지불되었지만 테리 목사님은 그 사실을 몰라서 음식을 먹지 못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 죄를 영원히 다 사해놨는데 그 사실을 몰라서 믿지 못하는 사람은 불쌍합니다. 더 불쌍한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못 믿는 사람이고, 교회를 다니며 충성하고 헌금하고 다 하면서도 여전히 죄인인 사람이야말로 이 우주에서 제일 불쌍합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뜨겁든지 냉랭하든지 전혀 상관없이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했습니다. 

이미 죄가 사해진 것을 믿어야

2017년 3월부터 기쁜소식선교회는 미국에서 CLF를 통해 전 세계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은 구원받은 후 우리와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있는 제단에 제사를 드리지 않고 하늘나라에 있는 제단에 제사를 드려서 우리가 영원히 거룩하고 온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사해달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 죄가 사해진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난주 페루 CLF에서 한 목사님이 우리 죄가 영원히 사해졌다는 말씀을 듣고 “그럼, 죄를 막 지어도 됩니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죄를 막 짓지 않아도 죄인이라면, 당연히 지옥을 가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유혹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으면 우리 마음속에 성령을 모시게 되고 성령이 죄의 유혹으로부터 이길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는데

여러분,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히 10:12~13)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원수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해놨는데도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씻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하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 박힌 죽음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단에게 속으면 이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방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여러분, 히브리서 10장 17절과 18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7~18) 이렇게 우리의 모든 죄가 완벽하게 씻어졌는데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죄 가운데 고통받는 사람은 너무 불쌍합니다. 최근에 전 세계 많은 목회자들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죄 사함 받고 거듭나서 하나님께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이 부족한 사람을 통해 만방에 이런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귀한 복음을 위해 쓰임 받으시고 이 복음을 전하는 데 함께 마음을 쓰신다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될 줄로 확실하게 믿습니다.
- 2019. 2. 17.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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