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디 엘 무디 (D.L. Moody, 미국 1837~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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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디 엘 무디 (D.L. Moody, 미국 1837~1899)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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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엘. 무디(D.L. Moody)는, 1837년 미국 메사추세츠주(州)의 노스필드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무디가 4세 되던 해에 아내와 일곱 남매, 그리고 빚을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떠났다. 자연히 무디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생계를 돕기 위해 농사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17세 때, 돈을 벌기위해 집을 나와 매사추세츠의 클린턴에서 신문 배달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실수로 인해 해고 당했다. 그 후, 무디는 보스턴에 있는 삼촌의 구두 가게에서 네 가지 조건아래 구두 수선 일을 하였다. 그 조건들 중에 교회의 주일학교에 출석하는 것도 있었지만 무디의 꿈은 빨리 돈을 벌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었기에 신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1855년 4월 21일, 무디가 보스턴에 있는 교회에 나간 지 1년이 지난 때였다. 그의 주일학교 교사였던 에드워드 킴볼이 그를 찾아왔다.  무디의 영혼을 걱정하던 그는, 몇 번이나 미루다가 그날 마음을 정하고 찾아온 것이었다. “무디,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체험이 있는가?”  “글쎄요. 저는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지금도 교회에 다니며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내 말은 ‘자네가 개인적으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난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네. 나는 자네의 영혼을 두고 기도를 많이 했네. 오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킴볼 선생과의 대화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젖어 있던 무디의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날 무디는 죄악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여 자신의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 훗날 그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사함 받은날 아침, 밖으로 나가 만물을 보았습니다. 태양이 그토록 사랑스럽게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지저귀는 새 소리도 내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는 구원을 받자마자 너무 기쁜 나머지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어머니, 기뻐해 주세요. 1837년 2월 5일은 제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생일이지요?  18년이 지난 오늘 4월 21일은 성령으로 제 영혼이 거듭난 생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무디를 쓰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거듭난 후에도 그에게는 10만 달러를 벌겠다는 변하기 힘든 포부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멸망하는 영혼들을 보았을 때 어린 시절부터의 끊임없던 꿈은 아낌없이 버려지게 되었다. 그 어떤 꿈도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서는 큰 의미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마음에 자리 잡은 하나님의 사랑이 불같은 정열로 나타나게 된다. ‘하루 동안 한명이상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잠을 자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그는 잠자리에서도 일어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정리 / 고갑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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