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요한 웨슬리 (John Wesley, 영국 1703~1791)
상태바
③ 요한 웨슬리 (John Wesley, 영국 1703~1791)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6.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종교는 하나의 무거운 멍에였다.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바라자니 불가불 질 수 밖에 없는 멍에였기 때문에 기쁨이나 평안 없이 그리고 죄 사함에 대한 확신 없이 성실하게 행할 뿐이였다.
대서양을 건너는 선상에서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도 그와 함께 있었다. 그들은 함께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자처하고 가는 길이었지만 다른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구원의 기쁨과 평강을 맛보게 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노력과 수고의 하나로써 대서양을 건너가는 것이었다.
웨슬리는 죽는 것이 무서웠다. 하마터면 배가 뒤집힐 것 같은 거센 풍랑 속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안절부절 못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고 있을 때 한결같이 평안해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모라비안 교도-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던 것이다.
처음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만난 그의 회고담을 인용해 보자.

시편 송가를 부를 때 풍랑 속의 배 위로 산더미 같은 파도가 덮쳤다. 배의 제일 큰 돛이 산산조각이 나서 떨어졌다. 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물바다가 되고 물은 갑판 위로 노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선실은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러나 모라비안 교도들은 조용히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무섭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죠.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인과 어린애들은 무서울 게 아니겠소?” “천만에요, 우리 아녀자라도 죽는 것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체험은 전혀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의 생활과 심령의 자세는 자기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행동은 겸손하고 온유하며 그리스도인다운 것이었다. 골을 내거나 분내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죽음의 공포가 없었다. 어떠한 경우와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평안이 그들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침착하고 고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 무서운 풍랑 속에서 파선의 위험에 직면해도 조금도 동요 없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음앞에서 느끼는 공포, 이것으로 자기 자신을 저울질 해보면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올바로 알 수 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목사도 될 수 있고 선교사도 될 수 있다. 박사학위를 받고 성직자의 가운을 몸에 걸쳤어도 그 영혼은 여전히 죄악 속을 헤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에게 간곡히 묻는다. 당신도 웨슬리처럼 이러한 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입장인가 아니면 모라비안 교도들처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주가 되셔서 그리스도를 생활 가운데서 간증하는가?

(정리 / 고갑연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