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마틴 루터 (Luther Martin, 독일 1483~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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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마틴 루터 (Luther Martin, 독일 1483~1546)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4.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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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과 개혁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이면에는 보편적인 종교의 흐름과 타협하지 않고 순수한 복음으로 돌아가 개혁의 흐름을 주도한 믿음의 선진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본지에서는 그 대표적인 인물 중 마틴 루터, 요한 웨슬레, D.L 무디가 걸었던 복음의 발자취를 살펴봄으로써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성장 과정

루터는 1483년 11월 12일 한스 루터와 마가렛 루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당시 관습을 따라 출생 다음날 세례를 받고, ‘마틴’이란 세례명을 얻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엄격하고 종교적인 가정 속에서 신앙심을 길렀다. 그러던 중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강한 벼락을 경험하면서 수도승의 길을 결심한다. 그리고 고행을 강조하는 ‘어거스틴파’의 한 수도원에 들어가 수련을 쌓기 시작했다.

수도원 신앙의 한계

수도원에서는 고행과 함께 날마다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고해성사를 강조했다. 루터는 나름대로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고자 했기에 그 가르침을 따라 철저히 고해성사와 고행을 하면서 열심히 수련했다. 하지만 그의 신앙은 얼마 후 벽에 부딪혔다. 그는 후에 이렇게 회고했다.

“만일 누군가 수도원을 통해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진정 그 사람은 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매일의 고해성사에서 내 양심은 용서보다는 오히려 더욱 더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을 느낄 뿐이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그 후 루터는 1512년에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교수로서 신학강의를 했지만 신앙의 갈등은 여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의 한 구절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18)

고행과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해결하지 못한 채 끊임없는 정죄의식에 시달렸던 루터는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던 중,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복음을 깨달으며 결국 거듭남을 체험한다. 후에 루터는 그의 라틴어 저작 서문에서 그때의 감격을 이렇게 밝혔다.

“나는 바울의 그 말씀에 끈덕지게 매달렸고 아주 열렬히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자 했다. 마침내 하나님의 자비로 밤낮으로 묵상하는 가운데 그 단어들의 문맥에 주의를 기울였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거기서 나는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 의란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내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선물로 거저 주시는 것을 발견했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새로 거듭나서 열린 문들을 통하여 낙원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부터 ‘하나님의 의’는 낙원으로 인도하는 가장 달콤한 단어로 찬양할 수 있었다.”

역사 속의 종교 개혁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비텐베르크 성당에 한 수도사의 반박문이 걸렸다. 당시 카톨릭의 부패를 정면으로 지적한 95개 조의 논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보잘 것 없는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여파는 가히 충격적이였다. 곧 95개 조의 논제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힘입어 대량으로 인쇄되었고, 순식간에 독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전 유럽을 뒤흔들었다. 그가 바로 역사적인 종교개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마틴 루터였다.

(정리 / 고갑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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