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하우 강제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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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우 강제수용소
Global 생생 Report 독일 - 독일 최초 나치 수용소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8.12.1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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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개국 출신 약 2백만 명의 수감자 수용

히틀러가 스스로를 독일제국 수상으로 명명한 1933년에 남부 독일의 뮌헨에서 북서쪽으로 약 16㎞ 떨어진 다하우라는 마을 근처에 다하우(Dachau) 강제수용소가 만들어졌다. 이 수용소는 6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설계된 독일 최초의 강제수용소로 이후 지어진 다른 수용소들의 모델이 되었다. 당시 사령관이었던 테오도르 아이케(Theodor Eicke)는 SS(나치 친위대) 단원들에게 이 수용소를 ‘폭력의 학교’라고 칭했다.
다하우 수용소는 처음에는 정치적 이유로 잡힌 포로들을 수용하던 곳이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뉘른베르그법(1935)이 통과되면서 여호와의증인, 동성애자, 이민자를 수용하였고 이후에는 전쟁 포로들과 유태인까지 잡혀들어 왔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에게 잡혀 이곳에 수용된 사람들의 숫자는 약 2백만 명에 달하며 그들의 국적은 34개나 될 정도로 다양했다.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의 포로수용소로 사용되던 다하우는 실제 이 수용소 포로였던 사람들의 노력으로 1965년에 박물관이 되었고 내부에는 기념관이 세워졌다. 

강제 수용소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

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Arbeit macht frei)’와 같은 나치들이 새겨놓은 문구가 그대로 남아있다. 처음에 이곳이 수용소인지 모르고 돈을 벌기 위해 온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약 20만 명의 사람들이 다하우에 수감되었는데 이곳에서 약 3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수용소 입구 옆의 전시관에는 강제 수용소와 관련된 사진과 영상물, 수용소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뒤편에는 샤워실로 위장한 가스실과 시체를 태우던 곳도 볼 수 있어 관람객들에게 그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한편 다하우 수용소에서는 매일 12시마다 총 8가지 언어로 설명해주는 가이드 투어가 진행되고 있다.
독일 본 한수영 통신원
정리 조경준 기자 sua1227@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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