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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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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머구리 박명호의 인생스토리[포커스] 오늘도 사선을 넘는다. 내가 아버지고, 남편이니까!

다큐멘터리 영화 ‘올드 마린보이’(2017.11월 개봉)의 주인공 박명호 씨. 11년 전 가족과 함께 탈북한 후, 휴전선 인근 고성에서 머구리로 살아가고 있는 그를 만나 보았다.  

해저 40m에서 해산물을 잡는 머구리(海男)

탈북자 박명호(54) 씨는 해저 30~40m에서 물질하는 해남(海男) 머구리다. 10명 중 5명은 포기하고, 3명은 죽고 1명은 아프고, 단 1명만이 살아남는다는 극한직업 머구리는 현재 강원도 최북단 고성에 7명만 남았다. 머구리 박명호 씨는 청동투구에 쇠신발, 납덩이 등 60kg에 이르는 장비를 갖추고 서너 시간동안 잠수해, 150m의 공기 호스에 의지하여 해산물을 잡아 올린다. 
기자가 박명호 대표가 운영하는 청진호횟집을 찾아간 날, 필리핀 방문을 마치고 전날 늦게야 한국에 도착했다는 그의 가족은 하루쯤 쉴 만도 한데 아침부터 분주했다. 식당 한쪽 벽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박대표는 요즘 머구리의 고단한 삶을 다룬 진모영 감독(대표작: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휴먼다큐 ‘올드 마린보이’의 주인공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3년에 걸쳐 그의 수중과 일상의 모습을 담은 영화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버지의 사랑과 고뇌,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명(命)이 다할 때까지 머구리를 할 계획이라는 박대표는 “삶 자체가 매 순간 생과사의 경계선이다. 내가 대진항에 온 후 해마다 머구리가 죽었다. 죽음을 무릎 쓰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고 내가 남편이니까”라고 말했다.

북한 軍시절, KBS 라디오 방송 통해 귀순 결심

머구리 일은 박대표에게 북한에서부터 익숙하다. 2006년 5월 황해남도 옹진군에서 목선을 타고 인천 옹진군으로 가족탈북을 감행한 그는 1990년대 중반 100명의 군인을 통솔하는 공군 중대장이었다. 그 ‘고난의 행군’ 시기엔 이곳저곳에 놓인 시체를 치울 여력도 없을 만큼 극도로 어려웠다. 당에서 내려오는 배급이라곤 쌀이 고작이어서 중대원들의 식량조달이 중대장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유난히 영리하고 기지가 빛났던 박대표는 배를 만들어 해상부업을 하며 중대원들의 건강을 챙겼다.  
인맥과 실력이 탄탄했던 그에게 탈북을 감행한 이유를 묻자, “라디오는 비행조종사들에게 필수품이었다. 주파수를 맞추어 KBS 라디오 방송을 매일 들었기 때문에 한국의 실상을 잘 알고 있었다. 북한이 ‘감옥사회’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 삶을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줄 수는 없었다”고 답했다. 
10년 동안 가족들을 설득해 남한에 온 그는 1년간 軍안보강사로 활동하며 남한 전역을 돌아다녔다. 영국 채텀하우스(국제문제연구소)에서 북한 인권에 대해 증언을 하며 국군정훈장교로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고 싶었던 박대표는 군시절의 잠수 경험을 살려 머구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일을 찾기 위해 서해안부터 추자도, 제주도를 거쳐 동해를 뒤지며 올라오다 마침내 대한민국 최북단 고성에서 머구리 일을 하게 되었다. 

북한접경지에 탈북자 정착촌 건설 필요

박명호 대표가 대진항에서 선주가 되고, 횟집을 열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차가운 시선과 텃새로 인해 남한 정착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놓은 그는 탈북자 정착에 관한 의견도 내놓았다. 
“탈북자를 도시의 임대아파트에 두는 것은 이솝우화의 시골 쥐를 도시에 갖다놓는 것과 같다. 시골출신인 탈북자들에게 북한접경의 값싼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지으며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정착촌을 제공해야 한다. 이스라엘도 러시아나 시리아에서 온 유대인에게 따로 정착촌을 만들어 주어 함께 발전해 가도록 도와준다”고 말하는 박대표는 “1945년 분단된 독일에서 40년 동안 서독으로 넘어간 탈동독인이 연평균 10만 명이었다. 이들은 각각 최소 10여 명에 달하는 지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에 1990년 12월 독일 통일 전 1년간 탈동독인이 동독인구의 2.6%인 43만 명에 이르렀다. ‘체제가 어떠하든지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냐’는 탈북자들의 설득이 통일의 밑거름이 되는데 최근에는 그들이 해외로 떠나거나 심지어 ‘웬만하면 북한에서 그대로 살라’고 전화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식물만이 씨앗 떨어진 그 자리에서 자란다. 동물인 인간은 마땅찮으면 태어난 곳을 떠나 사는 것이다”는 생각으로 북에서 남으로, 도시에서 어촌으로 떠나 온 박명호 대표. 그는 앞으로 탈북민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정착촌 건설’이라는 큰 꿈을 꾸고 있다.
송미아 기자 miasong@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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