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마저 비켜간 수상한 그곳 만리동 고개 ‘성우이용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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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마저 비켜간 수상한 그곳 만리동 고개 ‘성우이용원’ 가보니…
[탐방] 성우이용원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4.02.1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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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면도 거품과 사각사각 가위 소리,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 흰 가운을 입은 이발사…,
이발관은 오늘날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게 잊지 못할 추억과 향수의 장소 중 하나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져 가는 그때 그 풍경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성우이용원은 무려 87년 동안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를 오롯이 지켜오고 있다.


추억 속 이발관 모습 그대로 간직한 성우이용원 
 
지난 1월 9일 찾아간 성우이용원, 낡은 간판과 슬레이트 지붕, 살짝 기운 듯 보이는 단층 건물, 처음 마주한 그곳은 어찌 보면 우리나라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한 영화 세트장 같다. 성우이용원은 1927년 문을 연 이후 87년째 운영되고 있으며, 1959년 사라호 태풍 때문에 지붕이 내려앉아 보수 작업한 것을 제외하고는 처음 이발관을 시작했을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발관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물이 담긴 커다란 양철통, 파란색 타일의 세면대, 이발 후 머리를 감을 때 쓴다는 물 조리개와 오래된 선풍기까지 마치 시간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저 낯설기만 하다.  이발 역시 머리에 흰 가루를 바르고 손가위로 머리를 자르는 옛 방식 그대로다. 양철통에 솔을 흔들어 거품을 내고, 오랜 세월 함께 버텨온 면도칼도 가죽으로 길들여 사용한다. 
이발관의 주인이자 52년 경력의 이발사 이남열(66세) 씨는 외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같은 자리에서 가업을 이어 오고 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열다섯 나이에 이발관 일을 시작한 이남열 씨, 당시만 해도 앳됐을 그의 손은 어느새 50여 년의 세월을 머금은 채 국내 최고라 일컫는 이발 기술을 시연하는 장인의 손이 되어 있다. 차분히 손님의 머리를 잘라 나가는 그의 손놀림은 그리 현란하지 않다.
 오히려 허례허식을 모두 버린 듯 단순할 뿐이다. “좋은 이발이란 시간이 지나도 이발한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내가 지향하는 이발 기술이지” 이렇게 단순하고 명쾌한 정의가 지난 세월 수십만 명의 손님을 맞이했을 그의 이발 기술의 정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의 기술이 좋아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디를 가도 여기만 한 곳이 없으니까 자꾸 오는 거죠” 이발관을 찾는 단골들이 한결같이 입 모아 하는 얘기다. 
 

50년을 이어 온 이발사의 비결은 ‘끊임없는 기술 연마’ 
 
자그만 체구의 老이발사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그의 내공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내 맘에 쏙 드는 완벽한 이발, 그런 건 절대 있을 수 없어. 어디에도 이발사가 원하는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손님은 없거든, 그래서 나는 이발을 잘하는 방법을 안다는 사람들을 별로 믿지 않아” 또, “이발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반복하며 기술을 연마해 나가는 거야. 그거 말고는 답도 없고 지름길도 없어.” 그가 사용하는 이발기구 중엔 비싼 것이 없다. 사용하는 가위의 가격을 묻자, “이거 2만 5천 원짜리 가위야. 비싼 가위 보다 중요한 건 기술이야 기술!, 기술자가 연장 탓하나? 자기가 쓰는 도구를 직접 손질할 줄 알아야 진짜 기술자야.” 
대화 중 그가 가장 힘주어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기술이다. 그만큼 오랜 세월 몸에 익힌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술자들을 너무 천시해. 그것만큼은 앞으로 꼭 바뀌었으면 좋겠어” 기술자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유교적 관습이 그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미용실에 뺏긴 과거의 영광 되찾길 기대 
 
1901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이발관인 ‘동흥이발소’가 개업한 이후 1970~80년대에 이발관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그러나 70년대 등장한 퇴폐 이발소로 인한 이미지 실추, 이발의 개념이 헤어 스타일링으로 변하면서 이발관은 미용실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이발관은 그 곳만의 매력과 강점이 있다. 거기에 새로운 감각을 더한다면 얼마든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어설프게 흉내만 내는 것이라 이남열 씨가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하려는 장인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발관이 더 이상 추억의 장소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의 문화공간이자 휴식처로 새롭게 면모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게 되길 기대해 본다.
 
강민수 기자 wonderwork91@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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