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활의 민족… 그러나 전통화살 명맥 끊어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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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활의 민족… 그러나 전통화살 명맥 끊어질 위기
줌인 사명감으로 40년 넘게 전통화살 만든 김병욱 궁시장을 만나다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2.08.0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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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무형문화재 제44호 김병욱 궁시장 사진/ 천영환 객원기자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우리 사회에 가득하다. 하지만 남다른 마인드로 전통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40년 넘게 전통화살을 만드는 김병욱 궁시장도 그중 한 명이다.

우리 민족 몸속에 내재된 활의 DNA

1232년 몽골군은 고려의 강화도 천도를 빌미로 고려를 침략했다. 몽골군 장수 살리타이가 군대를 이끌고 처인성(경기도 용인)을 공격하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디선가 날아온 한발의 화살이 살리타이를 관통했다. 지휘관을 잃고 기세가 꺾인 몽골군은 결국 퇴각했다. 또 고려 말 강원도 강릉에 왜구가 출몰하자 관노비였던 이옥이 귀신같은 활 솜씨로 왜구를 물리쳤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처럼 활과 우리 민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무기다. 과거부터 ‘중국은 창, 일본은 도, 조선은 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민족의 활 솜씨는 유명했고, 지금도 대한민국은 양궁 종목에서 부동의 세계 1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경북 포항에 전통화살을 만들며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지켜오는 이가 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44호 김병욱(61) 궁시장(弓矢匠)은 1979년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전통방식 그대로 화살을 만들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김병욱 궁시장처럼 전통화살을 만드는 이들이 7~8명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다. 궁시장이란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뜻하는 말이다. 본래 활을 만드는 사람을 궁장(弓匠), 화살을 만드는 사람을 시장(矢匠)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합쳐서 궁시장이라 부른다. 김병욱 궁시장이 만드는 것은 전통화살인 죽시(竹矢)다. 죽시는 대나무·싸리나무·복숭아나무 껍질·부레 풀·소의 힘줄·꿩 깃털 등의 천연재료를 사용해 만든다. 

취재진에게 전통화살 제작과정을 시연해주고 있다 | 김병욱 궁시장이 직접 제작한 신기전

전통화살 만들려면 1000번의 손길 거쳐야 

지난 달 경북 포항에 있는 김병욱 궁시장의 작업장을 찾아가 그를 만났다. 그는 기자에게 전통화살의 제조공정을 하나씩 설명하며 삶과 화살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놓았다. 흔히 전문가들은 전통화살 한 개를 만들려면 ‘100가지 공정과 1000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손이 많이 가고 어려운 작업이라는 뜻이다. 김병욱 궁시장은 여러 공정 중에서도 화살대로 사용하는 대나무를 곧게 펴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직접 대나무를 불에 구워 곧게 펴는 작업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대가 곧아야 명중률이 높아져 궁사가 의도한 대로 화살이 날아간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처음 화살과 인연을 맺은 때는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열아홉 살 때 죽 세공 단지에 취업했다. 당시 대나무를 다루는 손재주가 있는 것을 본 김종국 궁시장(81,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의 권유로 화살을 배우게 되었다”고 화살을 만들게 된 계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작업장 한쪽에는 화살들이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화살을 보여주며 “요즘 국궁을 즐기는 분들이 주로 사용하는 화살인데, 조선 후기 유엽전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만든 화살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온다. 그런데 전통방식으로 화살을 만들면 종일 작업해도 하루에 6~7개 정도 밖에 못 만든다. 그래서 주문을 받고 1년을 기다리는 분들도 계셔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사라져 가는 우리의 활 전통, 이어졌으면”

김병욱 궁시장은 작업장이 아닌 다른 방으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따라가보니 방안 가득 다양한 종류의 화살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 전통화살은 물론 일본 등 다른 국가의 화살을 복원한 작품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자신이 만든 화살로 전시회를 하고 싶어 준비하다 보니 작은 방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오랜 시간 전통화살 제작을 고집해온 동력를 묻자 “실력을 인정해 주는 분들이 한 명씩 생길 때마다 자부심이 커졌다. 또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을 누군가는 이어가야 한다는 사명감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일생 동안 연마한 기술이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기술을 전수해 주고 싶어도 그게 쉽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화살 만드는 법을 배우려면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요즘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활쏘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국가에서도 지원을 해줄 수 있을 텐데 아직은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김병욱 궁시장은 “지금도 화살을 만들기 위해 불을 피울 때면 감사하고 기뻐서 몸에 전율이 올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난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라고 말하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4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했으면서도 화살을 향한 그의 사랑이 여전히 뜨거웠다.
강민수 차장대우 mskang@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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