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느헤미야가 되어 복음을 위해 기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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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느헤미야가 되어 복음을 위해 기도할 때
[느헤미야 1장 1절 ~ 2장 13절] 2022. 3. 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903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2.03.1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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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면 자신의 생각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에 이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저도 1962년 죄 사함을 받은 후 주님이 제 삶을 이끌어가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이 너무나 분명하게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예전에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베니스의 상인』,『죄와 벌』을 읽을 때는 그 책에 푹 빠졌습니다. 죄와 벌은 단숨에 두 번을 읽었는데 세 번째 읽을 때는 재미있는 대목만 골라 읽고 이상 더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성경은 읽을 때마다 늘 새롭다는 것입니다. 제가 요한복음을 한 300번 이상 읽은 것 같은데 또다시 읽어도 늘 새롭고 은혜로워 그 말씀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

오늘 읽은 느헤미야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면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느헤미야는 포로임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의 신임을 얻어 술 맡은 관원장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술 관원장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왕의 은혜를 입어 평안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안하고 풍족했지만, 하나님께 은혜를 입으며 살았던 예루살렘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렸는데, 언제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릴 수 있을까?’ 하나님과 함께하던 생활이 매일 그립고 사모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군인들이 탈영하는 원인이 뭔 줄 아십니까? 군인들이 군 복무를 하다 한 번씩 고향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모님이 보고 싶고 가족이 그립고, 그렇게 마음이 고향으로 자꾸 가면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몸도 고향 집에 가 앉아 있다고 합니다. 외국에 오래 나가 있는 분들을 만나보면 한국에서 지내던 시간이 그립고 많이 생각난다고 합니다. 

파괴된 예루살렘성

이처럼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그리워했습니다. ‘언제 예루살렘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할 수 있을까?’ 느헤미야는 빨리 고향인 예루살렘에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다에서 하나니라는 형제가 잡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습니다. “하나니, 몸은 건강하니?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어?” “포로로 잡혀 왔어요.”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소식이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곳에 남아있는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서로 모여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거라 생각하고 물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어떠니?” 하나니가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느 1:3) 하나니가 하는 말이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고 성은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배를 드릴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예루살렘 성전이 불탔다는 소식에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성문과 성벽의 의미

예루살렘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벽과 성문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중요한 것인데 그것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단순히 전쟁에서 패한 것만이 아니라 예루살렘성 안의 거룩한 백성과 성 밖의 거룩하지 않은 백성들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제 느헤미야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들이 다 섞여서 옛날에 그 예루살렘이 아닌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흐르고 거듭난 형제자매들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던 그 교회가 무너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타국에 포로로 잡혀있으면서도 매일같이 ‘내가 하루빨리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지’ 하며 예루살렘을 너무나 그리워했는데 그 꿈이 다 무너졌습니다. 

이혼을 한 부부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어려운 일을 만나면 가장 먼저 ‘이번 주 주일에 교회를 가면 예배 후에 구역장이나 형제자매님을 만나서 교제를 좀 해야겠다’, ‘목사님과 신앙상담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이 교회에 와서 문제와 근심을 내려놓고 행복해지는 것을 보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합니다.
십여 년 전에 한 젊은 부인이 우리 교회를 한 달 정도 다니며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은 후 저에게 신앙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 부인이 자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2년 전에 이혼했습니다.” “왜 이혼했습니까?” “성격이 너무 안 맞아서요.” “아니 성격이 안 맞으면 이혼합니까?” “목사님, 제 남편하고 한번 살아보세요. 이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요.” 제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집에 텔레비전이 있지요?” “예.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소리가 너무 크면 조절을 합니까? 떼다 버립니까?” “그거야 조절을 하지요.” “에어컨을 켰는데 너무 추우면 온도를 조절합니까? 떼다 버립니까?” “당연히 온도를 조절하지요.”

마음을 조절하는 장치

제가 자매님께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자매님,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텔레비전이나 에어컨보다 몇천, 몇만 배 더 정교하게 만드셨습니다. 텔레비전과 에어컨에도 조절 장치가 있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에게는 더 정교한 조절 장치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얼마든지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자매님께 설명한 후 제가 물었습니다. “남편은 재혼했습니까?” “아니요.” “자매님, 남편과 합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며칠 지나서 부부가 찾아와 상담하고 재결합하면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부부가 살다 보면 다투는 일이 많이 생기는데 당장은 ‘이 남자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아휴 이 여자랑 답답해서 어떻게 살지. 정말 미치겠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부부가 이런 생각들로 인해 이혼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부부들은 다릅니다. 부부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니까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서로 조율하고 화합하고 이해해 나갑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내 이혼율은 매우 낮습니다. 오히려 이혼한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다시 합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느헤미야의 간절한 기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에 슬퍼서 울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중략)…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느 1:5~11)
느헤미야가 왜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을까요? 여러분, 거룩한 예루살렘 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거룩한 것과 더러운 것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타락할 때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않은 사람, 죄 사함 받은 사람과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복음을 전해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마음에 죄가 있는 분이 있으십니까? 그런 분들은 미루지 마시고 목회자나 장로님, 구역장을 만나 신앙상담을 받으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를 벗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의 역할

며칠 전에는 영국 스펄전 신학대학의 총장님과 온라인으로 면담을 했고 페루의 영부인과도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조만간 그분들을 직접 만나 뵐 예정입니다. 부족한 제가 그런 분들을 만나 신앙상담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일하시는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을 받은 후에는 교회 안에서 구원받은 형제자매들과 서로 교류해야 합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 받고 병이 낫는 일 등 하나님을 경험한 간증을 듣고 영적으로 자라게 됩니다. 또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복음을 듣고 ‘그동안 입으로만 불렀던 찬송이 이젠 내 이야기가 되었구나. 정말 내 죄가 눈같이 희게 씻어졌네!’라며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냥 여기에 있을 때는 교회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데 몸이 아프거나 직장 일로 한동안 교회에 나오지 못하게 되면 교회가 너무나 그리워지게 됩니다.

성전 중건을 요청했을 때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에게 술을 드리기 위해 나아갔는데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색이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묻습니다.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느 2:2) 왕 주변에 수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술 맡은 관원장 하나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데 왕이 느헤미야를 유심히 주목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왕이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대답했습니다.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느 2:5) 그러자 놀랍게도 왕이 느헤미야의 요청을 들어주려고 다시 물었습니다. “네가 몇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 오겠느냐.” 느헤미야는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더욱이 왕이 느헤미야를 보낼 때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성을 중건할 수 있는 재목도 주게 하고 그를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해서 보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을 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죄 사함이 분명해야

오늘날 참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않은 사람, 죄 사함을 받은 사람과 죄 사함을 받지 않은 사람의 구분이 없는 교회가 많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세속으로 흘러갈 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 즉 죄 사함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에스라서를 보면 그들은 그 구분이 명확했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스 4:3)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도와주려 하자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방인들이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등 많은 문제가 일어났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성전 건축을 필역하게 됩니다. 이처럼 교회는 거듭남과 죄 사함 부분에 분명해야 하며 마음에 애매한 사람이 있다면 정확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줄 때는 분명한 죄 사함을 받아 거듭나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 교회에서는 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이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됩니다. 그렇게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나이가 들어 죽음 앞에 설 때 죄 사함을 못 받아서 고통받고 두려워하다가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1907년 대부흥 이후 평양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그 삶을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교회는 죄 사함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의 구분이 명확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을 죄 사함을 받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또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교제를 해야 합니다.
오래전 평양에 한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교회 집회에 참석했는데 설교를 듣던 중 성령이 그 장로님의 마음에 가책을 느끼게 했습니다. 집회 도중 장로님이 벌떡 일어나서 “내가 아간이오!”라며 소리쳤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장로님이 생활이 어려워 친구의 돈 얼마를 잠시 빌려 썼다가 돌려주지 못한 사실을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교회 성도들이 장로님의 이야기를 듣더니 “나도 아간이오!” “나도 아간이요!” 하면서 회개하고 모두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 일이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평양대부흥입니다. 그 일로 복음의 역사가 평양에서부터 시작해서 서울을 거쳐 전국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평양의 교회들이 타락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신앙 생활하기 어려운 도시가 되었습니다.

인도(引導)를 받는 삶

저는 죄 사함을 받고 문제가 있을 때 ‘예수님이면 이 일을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고 성경을 펴 보면 성령이 내 마음에 오셔서 길을 인도해 주시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죄 사함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세상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지 아니하면 육신의 욕구나 정욕을 따라 빠르게 흘러가 타락하게 되고 죄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구원받은 형제자매들에게 믿음의 말씀을 전해주면서 ‘믿음’과 ‘자신의 방법’, 이 둘에 대해 분명한 구분을 지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다의 총독이 되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돌아가는 게 소원이었는데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라는 소식을 듣고 슬픔을 견딜 수가 없어서 울며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며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아닥사스다왕을 통해서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왕이 느헤미야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유다의 총독으로 세우고 예루살렘에 가서 성과 성전을 중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어려운 문제가 참 많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님만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놀랍게 역사하시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여러분, 지난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선교회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해서 물질을 보내려고 합니다. 우리가 보낸 선교사님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수백 명의 거듭난 형제자매님들이 일어났고, 이제는 그들이 선교사님과 함께 복음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곳 선교사님에게 대피하라고 이야기했는데 아직 시간이 있는 것 같다며 바로 나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는 현지 성도들이 선교사님에게 어서 대피하시라고 했지만 계속 복음의 일을 하시다 전쟁 시작 직전에 대피했습니다. 대피하신 후에도 성도들과 계속 연락하고 있는데 젊은 형제들은 전쟁이 일어나는 지역으로 향하고 있고 노약자 형제자매님들은 러시아의 공격에 밀려 피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빨리 끝나도록, 그리고 현지 형제자매님들이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성 중건을 위해 온 마음을 쏟았던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을 사모하고 예루살렘을 사모했던 느헤미야처럼 우리도 온 마음으로 복음 전하는 삶을 삽시다. 우리를 통해 한국 전체에 참된 복음이 전해지고 이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일들에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이 시대의 느헤미야가 되어 교회를 사랑하고 힘있게 복음을 전하는 복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 2022. 3. 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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