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은혜 안에 머물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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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은혜 안에 머물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한 사람
[예레미야 30장 1절 ~ 16절] 2021. 12. 12. 주일 오전예배 설교 - 89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12.1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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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면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한 주 동안 크리스마스 칸타타 영화 『FOR UNTO US 』를 보면서 음악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노래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저 목사님은 너무 신령해. 저 장로님은 너무 사랑이 많아. 저 집사님은 정말 열심히 하나님을 섬겨.” 그러나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제게 ‘박 목사님은 내게 잘했다는 말 한 번도 안 하시네’라고 생각하며 섭섭해 하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확히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죄를 범한 인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죄만 범하는 게 아니라 선(善)한 일도 좀 하니까 잘못하거나 실수한 일이 있어도 자신이 잘한 일을 부각시키면서 그 잘못을 상쇄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냉정하게 우리 자신에 대해 따져보면 죄를 범치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으로는 모든 사람이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럼 어떤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하늘나라를 가지? 도대체 천국 가는 사람은 누구야? 그래도 좀 더 착한 사람이 천국을 가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기독교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과 다른 인간의 생각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죽음 앞에 섰을 때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늘 교회에 와서 울며 죄를 사해달라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이 죽음 앞에 섰을 때를 상상해보십시오. 아프리카 가나 존 아타밀스 前 대통령이 임종하시기 며칠 전에 저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나 국민들은 저를 가나에서 가장 믿음 좋은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죄를 지었고 아직 죄 사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죽으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니 너무 두렵습니다. 앞으로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의사는 많이 살면 닷새라고 하는데 당장 오늘이나 내일이라도 제가 죽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충성했는데 가나 전 대통령처럼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채 죽음 앞에 선다면 얼마나 두렵고 답답하겠습니까? 

임종 전 유명한 목사님은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의 유명한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분이 임종 전에 남긴 마지막 간증을 신문 기사로 읽었습니다. “내가 꿈을 꿨는데 지옥에 가 있어서 너무나 괴로웠다. 그래서 회개했더니 점점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다.” 여러분, 이 목사님의 말은 성경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 말은 현재 교회를 다녀도 죄 사함을 못 받은 사람들에게 “너무 걱정하지 마. 죽어서라도 회개하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간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렇게 훌륭한 목사님도 죄가 있다고 그랬는데 그럼 죄가 있는 나도 천국 가겠네’라고 속게 되는 것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

누가복음을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스럽게 있었고 거지 나사로는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그때 부자가 소리칩니다. “저 나사로를 내게로 보내서 손가락 끝에 물 좀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십시오.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스럽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앞에서 얘기한 목사님의 간증처럼 만일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면 기차비가 없을 때 돈을 꾸어서라도 기차 타고 갈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죄에 대한 기준은 하나님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회개한다고 해서 지옥에 있다가 천국을 갈 것 같으면, 지옥 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가운데 제일 악(惡)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당신은 평생 악한 일만 행했나요?”라고 물어봅시다. 아마 그도 선한 일을 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가운데 제일 선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당신은 선한 일만 행했나요?”라고 물어봅시다. 그도 역시 악을 행했다고 할 것입니다. 인간이 볼 때는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인간을 보실 때는 차이가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선(善)의 기준이 달라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악행은 숨기고 자신의 선한 행위를 나타내려 합니다. 그리고 막연히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인간이 얼마나 선을 행했는지가 기준이 아니라 죄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인간이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친구들과 남의 집 과수원에서 사과나 참외도 따 먹고, 밀도 꺾어서 구워 먹은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은 참외밭에 들어가면 입으로 한번 베어본 후 버리고 참외 순을 막 밟고 다녔지만 저는 익은 것 하나만 딱 따서 먹었습니다. 똑같이 도둑질해도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좀 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이런 이상한 기준을 가지면서 자신을 선하다고 생각하고 좀 더 선을 행하면 하늘나라 갈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선(善)의 기준이 하나님과 우리는 정말 다릅니다. 하나님은 “왜 도둑질했느냐? 왜 간음을 했느냐?”라는 행위보다도 “너는 탐심이 있으니 이미 도둑질했다. 네게 음욕이 있으니 이미 간음했다” 하며 인간의 마음에 있는 죄를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선을 행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선을 행하면 천국을 갑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로인해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 선을 행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는지 생각하는데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하며 인간은 다 멸망과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트남의 한 기독교 지도자

제가 베트남에 갔을 때 기독교 지도자로 14년 동안 교도소에 갇혀 있었던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베트남에서 굉장히 존경을 받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당신은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자신 있게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위해 14년 동안 교도소에 있었는데 하늘나라에 못 가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성경에는 행위로 하늘나라에 못 간다고 되어 있다고 하자 그분이 화를 냈습니다. “내가 교도소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십니까? 아내와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과일 껍질을 주워서 먹으며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하늘나라에 못갑니까?” 그분은 성경을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도 행위로 자기를 깨끗케 하거나 거룩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예수님 없이 자신이 행한 선으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노부부의 기도

여러분, 철의 장막의 바울이라 불렸던 리차드 범브란트가 무신론자였다가 복음을 듣게 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루마니아에 사는 한 노부부가 어느 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지금까지 한평생 주님을 섬겼는데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면 상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도 받고 싶은 상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전도해서 유대인 한 사람이 구원받는 상을 받고 싶습니다. 하나님, 우리 마을에는 유대인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늙었기 때문에 유대인을 찾아 나설 수 없습니다. 유대인 한 명을 우리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그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어느 날 리차드 범브란트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루마니아에서 그 노부부가 사는 마을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노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로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부부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갑자기 얼굴을 감싸고 밖으로 나갔다가 얼마 후에 돌아왔는데 두 눈이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노부부가 리차드 범브란트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어

이처럼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전혀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도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자신을 선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기준과 맞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악할까?’라고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는 각 사람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없고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에 시내 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이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출 19:8)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실수였습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

이후 하나님은 그들에게 십계명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지키면 복을 받지만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 법입니다. 우리 인간 가운데 율법을 완벽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저희는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라고 대답했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동안에도 죄를 범해 십계명이 내려오자마자 삼천 명이 죽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죄를 범해 큰 어려움을 겪거나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율법을 잘 지켜서 복을 받도록 하심이 아니라, 우리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깨우쳐주시기 위함입니다.
예레미야 30장 5~6절까지 범죄한 이스라엘이 계속 저주를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그 얼굴 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그런데 7절에 가면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냄을 얻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의 약속대로 죄를 범해 환난을 당하고 멸망을 받아야 하는데 “그가 이에서 구하여냄을 얻으리로다” 하며 하나님이 그곳에서 구하여 내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구하여 내시는 걸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켜 선을 행하고 율법을 잘 지켜서가 아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율법에 의하면 우리는 영원히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계획을 오래전부터 갖고 계셨습니다. 이 긍휼은 우리가 선을 행한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새 언약이란 무엇인가

10절을 보면, “내가 너를 원방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얻을 것이라 너를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하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를 내려서 그들이 깨닫도록 하신 후 다시 그들을 구원하는 은혜를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입고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고 계획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할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우리가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이켜 은혜를 입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예레미야 31장 31절부터 정확하게 풀어주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1) 여기에 ‘새 언약’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첫 번째 언약은 십계명 즉 율법입니다. 이것은 지키면 복을 받고 못 지키면 저주를 받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 언약이 아니라 다른 새 언약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새 언약은 무엇입니까?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3~34)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새 언약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더러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법을 바꾸신 것입니다.

보이스피싱 전화

요즘엔 보이스피싱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박옥수 씨 맞습니까?” “예, 누구십니까?” “박옥수 씨 이름으로 ○○백화점에서 175만 원이 결제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집에 있는데 누가 결제를 했습니까?” “혹시 사모님이 하지 않았을까요?” “아내는 저와 같이 있어요.” “아, 큰일이네. 경찰에 신고할까요?” “예.” 5분 정도 지나서 경찰이라며 제게 전화가 왔습니다. “혹시 주민등록증을 누구에게 맡긴 일이 있습니까?” “일을 부탁하면서 맡긴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선생님 주민등록증으로 통장을 만든 것 같습니다” 하더니 통장과 카드를 들고 가까운 은행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보이스피싱에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은행으로 가려고 신발을 신으면서 ‘난 나이가 많아서 판단력이 좀 흐린데’ 하며 불안해서 부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은행 업무를 하는 형제에게 알려 달라 했습니다.

더 지능적인 사람이 속이면

은행가는 길에 파출소가 있어서 들어갔습니다.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예. 할아버지, 물어보세요.” “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할아버지, 그거 사기입니다. 가면 안 됩니다.” “아, 그렇지요?” 그때 전화가 다시 왔습니다. 은행에 도착했느냐고 묻기에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경찰관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 누구요?” “당신은 누구요?” “나, 경찰관이오.” 그러자 그쪽에서 전화를 딱 끊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보이스피싱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그런 전화를 몇 번 받은 적이 있는데 우리보다 더 지능적인 사람이 속이면 우리는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언약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이 선한 일을 하면 천국 가는 줄 알고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첫 번째 언약은 죄를 안 짓고 선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것이 십계명이고 첫 언약입니다. 이 언약으로는 우리가 한 행위를 따라서 저주와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여전히 죄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4절에 보면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두 번째 언약에서 ‘내가’라는 것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죄를 우리 자신이 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사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것입니다. 내가 선을 행해서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율법을 잘 지켜서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 앞에 교만하고 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구원하시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선하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죄를 씻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를 완벽하게 끝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에 선한 분이 있습니까? 사단은 우리에게 선이 있는 것처럼 속이지만 사람에게는 선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그 은혜 안에 머물 때 우리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2021. 12. 12.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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