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숨은 영웅 수어통역사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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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속 숨은 영웅 수어통역사의 세계
줌인 청각장애인의 귀와 입이 되어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10.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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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뉴스에 삽입될 영상을 촬영 중인 광주시수어통역센터 이지연 수어통역사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재난 상황에서 38만여명의 청각장애인들에게 정확하고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수어통역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이들을 향한 관심이 증가하며 수어와 농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다양한 수어영상 콘텐츠를 제작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리는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 관계자들만큼이나 익숙해진 얼굴들이 있다. 바로 청인(聽人)의 언어인 말소리를 농인(聾人)의 언어인 수어로 동시통역해 주는 수어통역사다. 한국농아인협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가공인 민간자격 수어통역사 1818명이 국내 농인37만 7천여명을 위해 활약하고 있다. 
지난주 기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활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수어통역사들이 다양한 영상 콘텐츠 제작에 매진하고 있는 광주시수어통역센터(경기도 광주시 행정타운로 6-5)를 찾아가 보았다. 이 센터는 지난 6월 3일, 24번째 농아인의 날 기념행사를 자체적으로 준비하여 SNS에 소개하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광주시수어통역센터의 최봉은(41) 과장은 “지난 5월부터 시 홈페이지의 시정뉴스와 간추린 뉴스에 수어통역 영상이 삽입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영상사업으로 시각을 돌리면서 활동영역을 확장시켜 수어교육영상과 고도원의 아침편지 등 인문학 관련 콘텐츠까지 기획·촬영·편집 과정을 거쳐 농인에게 적합한 영상을 송출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수어통역사들은 시에서 받은 정보도 수어로 재해석해 신속하게 영상으로 제작하여 농인들의 핸드폰에 보내고 있다. 영상에는 노인성 난청자와 수화가 어려운 사람을 고려해 음성, 문자, 수어 모두 삽입된다. 

출처/YTN뉴스캡쳐

자막이 있는데 굳이 수어가 필요한가

지난 9월부터 지상파 3사 저녁 메인뉴스에도 수어통역 서비스가 실시되는 등 수어통역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자막이 있는데 굳이 수어가 필요하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지난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수어사용 실태조사에 의하면 농인의 26.9%가 필담을 전혀 또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며 42.6%는 어느 정도만 이해한다고 답변함으로써 총 69.5%의 농인이 문자 언어 이해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어통역사들은 “청인도 문자보다는 직접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해가 빠르다. 사태의 심각성이 쉽게 와닿지 않은 문자보다 뉘앙스까지 전달되는 수어로 통역을 함으로써 농인에게도 정보 접근의 기회가 동일하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포용력을 보여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나고 자랐을지라도 농인의 모어(母語)는 수어다. 이들에게 한국어는 영어, 중국어처럼 외국어와 다름없다”며 통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병원 출장통역을 많이 한다는 김민지(23) 수어통역사는 “코로나19 이후 하루 10여건씩 수어교육에 대한 문의 전화가 온다. 특히 최근에는 병원을 찾는 농인과 소통하고자 수어를 배우려는 의료관계자들이 늘어났다”며 “목적의식이 있는 분들이 지속적으로 교육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의 동료인 이지연(24) 통역사는 고등학생 시절 농인을 가르쳤던 선교사의 영향으로 수어통역사의 길에 들어섰다며 최근 베트남 농인 신부와 한국 농인 신랑의 결혼식부터 출산까지 청인과의 소통을 도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농인과 화상전화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수어통역사

‘덕분에 챌린지’ 통해 수어 확산과 긍정 인식을 제고

수어통역사 13년차에 접어든 최봉은 과장은 “2009 타이베이 농아인올림픽(데프림픽, Deaflympics) 당시 유도 국가대표팀의 감독, 코치와 농인 선수들의 소통을 위해 60일간 합숙하며 통역을 했다. 당시 80여개국이 참가한 올림픽에서 한국이 종합 3위를 기록했는데 유도팀 선수들도 메달을 땄다. 게양대에 태극기가 올라갈 때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우리나라가 불가리아에서 열린 2013 소피아 농아인올림픽에서도 90개국 중 종합 3위를 달성했는데 국민적 관심이 미미했던 부분을 지적하며 농인 국가대표 선수들의 땀과 노력으로 얻어진 결실이 장애에 가려 외면 받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농인인 김명순(47) 센터장은 “음성언어 중심으로 전해지는 정보를 농인은 제때 습득하지 못해 원하는 기회를 놓치는 일이 다반사다. 더욱이 농인은 지적장애인이 아닌데도 일반학교에 비해 현저히 뒤처진 교육방식과 프로그램으로 손해를 입고 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장애로 판단받지 않고 능력과 재능으로 평가받는 차별 없는 공정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며 농인을 향한 지속적인 관심에 따른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브리핑을 계기로 촉발된 수어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의료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수어로 표현한 ‘덕분에 챌린지’로까지 이어졌다. 지금 이 시간에도 모든 국민들에게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수어통역사들의 소리 없는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송미아 기자 miasong@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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