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의지행위가 아닌 말씀을 믿는 믿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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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지행위가 아닌 말씀을 믿는 믿음의 삶
[사사기 16장 15절 ~ 22절] 2019. 11. 24. 주일 오전 예배 설교 789 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9.11.2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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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과 시련이 찾아올 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몇 달 전 미국에서 목회자 모임이 있었는데 한 목사님이 시험이 들어 그 모임에 오시지도 않고 혼자 어려워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그분을 만났습니다. 사역을 하다 보면 어려움과 시련을 겪기 마련입니다. 그 목사님은 사역을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족하고 바르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무엘상 2장을 읽다가 더 큰 실망에 빠졌습니다. 그 성경에 엘리 제사장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회막에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엘리 제사장이 권면했지만 그들이 듣지 않았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삼상 2:25)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기 때문에 들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목사님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사역을 잘 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됐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기로 정하셨기 때문이구나. 그럼 난 해도 안 되는 사람이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성경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참된 인도자가 필요해

제가 그 목사님께 예레미야 18장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렘 18:7~8) 그 목사님은 하나님이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도 돌이키면 된다는 말씀을 읽더니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아, 나에게도 소망이 있구나!’ 하시며 그때부터 마음을 다해 복음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 사함 받고 거듭났을 때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습니까? 그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한평생 신앙생활 잘할 수 있는데 사단이 우리 마음에 있는 빈틈을 뚫고 생각을 집어 넣습니다. 그래서 구원받고 기쁘게 간증하던 형제자매들이 어느 날 얼굴이 시커멓게 되어 찾아와 “목사님, 전 안됩니다. 저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마음의 방향이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축복이 있어도 전혀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상태 속에 있을 때 인도자가 중요합니다. 참된 인도자는 신앙교제와 말씀을 통해 우리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습니다. 만일 자신의 신앙을 인도해 줄 인도자가 없다면 사단이 주는 굴레에 빠져 고통하고 방황하다가 어둠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세 번 부인한 베드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자 사단이 베드로에게 ‘네가 무슨 예수님의 사도야, 어부가 뭘 한다고… 넌 안 돼’ 하는 생각을 계속 넣었습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은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생각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더라. 다 때려치우고 난 다시 고기 잡으러 갈 거야’ 하며 갈릴리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무슨 사도야, 난 안 돼’ 하는 사단이 준 생각에 빠져있는 베드로에게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죄 사함을 받고 너무나 감사하여 한평생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리고자 했던 예전의 마음으로 옮겨 놓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잘못이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난 그런 사람이었어. 예수님이 그런 나를 아시고 구원해 주셨는데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잊고 사단이 주는 생각에 이끌렸구나….’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마다 감정의 차이는 있지만 죄 속에서 고통하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죄 사함 받았을 때 우리가 얼마나 눈물겹도록 감사하고 행복했습니까? 하지만 사단은 우리를 그 감사와 사랑에서 떠나 다시 세상 속에 빠지게 만들고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여기도록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단지 베드로가 사단에게 속아 잠시 예수님을 떠났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데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옮겨주셨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더 이상 예전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전 미문 앞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는 능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혹에 빠진 삼손

오늘 읽은 사사기 16장에는 삼손이 들릴라에게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합니다. “삼손, 당신의 그 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이는 블레셋이 삼손을 죽이려고 들릴라에게 은 일천 일백을 주고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려 한 것입니다. 삼손도 블레셋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것을 알았지만 들릴라에게 빠져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들릴라가 날마다 “당신, 나를 정말 사랑하는 거예요? 정말 사랑한다면 말해 주세요”라고 끈질기게 물어보니 삼손은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저 같으면 ‘이 여자가 비밀을 알아내어 나를 죽이려고 그러는 거구나’ 하며 여자에게 “내 힘의 근원을 왜 물어보는 거야. 블레셋이 시켰지?”라면서 당장 내쳤을 것 같은데 삼손은 들릴라에게 빠져서 결국 힘의 근원이 자기 머리카락에 있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그 머리털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기 때문에 자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결국 삼손의 머리카락이 잘리면서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선지자가 있었다면

여러분, 이때 삼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다윗의 경우에는 신앙을 인도하는 선지자가 늘 곁에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사무엘이 있었고,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는 나단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나이 들어서는 갓이라는 선지자가 다윗을 책망해 주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귀한 종이었지만 일생에 두 가지 큰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는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고 우리아마저 죽인 것입니다. 그때 다윗에게 하나님의 종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습니다. 다윗이 그 죄의 가책을 받아 기도도 못하고 괴로워할 때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신랄하게 책망해 돌이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난 후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삼하 12:13)라며 하나님이 죄를 사하신 사실을 깨닫게 해서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는 것을 봅니다. 다른 하나는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는 범죄가 있었습니다. 이때도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 하나님의 인도를 받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따른 결과

평소에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 사단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우리 생각이 하나님과 다른 쪽으로 빠지게 됩니다. 교회를 불신하고, 나는 안 된다는 생각에 빠지고, 신앙이 필요 없고 세상의 방법대로 살아도 될 것 같은 생각에 이끌려 갑니다.
사사기 16장 22절 읽어 보겠습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삼손이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머리가 자라기 시작했네. 수건으로 감싸 숨겼다가 더 자라면 원수를 갚아야지’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항상 소망이 있는데 삼손은 ‘이제 나는 끝이야. 블레셋 사람들과 같이 죽자’라는 쪽으로 생각이 흘러가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비참하게 삶을 마감해

저는 삼손이 이렇게 비참하게 무너져버리는 것을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만일 삼손에게도 다윗처럼 인도자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들릴라에게 꼬임을 받을 때 하나님의 종이 있어서 삼손에게 “삼손, 정신 차려. 그 여자가 널 사랑한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너의 힘의 근원을 알고 너를 죽이려는 거야!”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혔을 때도 머리털이 자라면 얼마든지 다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발휘하면서 삶을 아름답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삼손에게는 그럴만한 지혜가 없었습니다. 삼손에게도 다윗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다면 삼손을 그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삼손에게는 인도자가 없었습니다.

믿음의 삶을 살아야

누구나 세상으로 마음이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인도자의 신앙교제와 사랑이 우리를 올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귀한 피로 죄 사함을 받는 이 귀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모든 죄에서 벗어나게 했고 그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절)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뒤에 우리 몸은 껍데기이고 우리 마음의 주인을 예수 그리스도로 바꿔놓으셨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사실을 압니다. 그런데 사단이 우리 생각 속에 자꾸 육신의 욕망을, 정욕을 넣어줘서 우리가 그 생각으로 흘러가게 합니다. 그때 우리가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 속에 예수님이 나타나는 삶을 살게 되어 사단의 생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

전도자들이 종종 사단이 주는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런 생각을 합니다. ‘박 목사님이니까 가능하지. 난 안 돼.’ 그 생각은 성경 말씀과 다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계시고 예수님이 일하시면 안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하시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를 ‘난 구원을 받았지만 전도도 제대로 못 해. 난 믿음이 없고 세상을 너무 좋아해. 그래서 난 안 돼!’라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 뭐라고 말합니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제가 거듭나고 난 뒤에 저의 더러웠던 것, 악했던 것, 추했던 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저만 아니고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던 것, 시험 들었던 것 다 놔두고 예전에 주님을 사랑했던 때의 베드로로 이끌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베드로는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내가 예수님을 사랑했었는데, 내 죄를 사해주셔서 내 생명까지 드리고 싶었는데 어쩌다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됐지? 그건 정말 순간의 실수야. 내가 예수님을 사랑한 마음이 진짜구나. 내가 다시 이 마음으로 살면 되겠네.’ 베드로가 이렇게 그의 마음을 바꾸었을 것입니다. 

두 가지 음성

우리는 하나님과 사단의 음성 가운데 어느 한 쪽으로 기웁니다. 사단의 음성을 들으면 앞에서 말한 목회자처럼 됩니다. 그 목사님은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이 나를 멸망하기로 뜻했기 때문에 나는 안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의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라는 말씀을 통해 “아, 제가 돌이키면 되네요!” 하며 그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일 그 목사님이 우리와 교제를 안 하고 혼자 생각에 사로잡혀 ‘나는 안돼’ 하면서 살았다면 얼마나 불행했겠습니까.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면서 ‘나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어. 나는 저주받을 사람이야’라는 사단이 넣어준 생각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았을 것입니다.

어두운 생각을 향해 반격을

오늘날 우리 마음속에도 사단이 끊임없이 일을 합니다. ‘나는 믿음이 없어. 나는 육신적이야. 세상을 좋아해.’ 그때 그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반격하십시오. ‘사단아, 내가 육으로만 흘러가냐? 아니야. 나는 구원을 받았어. 이 구원이 얼마나 큰 건지 알아.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셔. 예수님이 일하시면 난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그렇게 사단과 싸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죄를 범해도, 어떤 잘못을 해도 돌이키면 은혜를 베푸십니다. 예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그때부터 모든 걸 회복해 주십니다. 아멘! 
삼손의 머리카락이 잘렸지만 다시 자라나면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회복 되면서 수많은 복음의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육으로 흘러갔을지라도 그리고 오늘까지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일들을 했을지라도 주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시키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는 절대 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단을 이기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이 말씀 한마디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너무나 놀랍고 감사한 것입니다.

범죄 할 줄 알면서 왜 창조했나

홍콩에서 집회할 때 한 여성 목회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할 것을 알면서 왜 만들었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 목회자에게 “혹시 목사님은 아기를 몇 명 낳으셨습니까?”라고 질문했더니 두 명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기가 태어나면 죄를 지을 줄 아시면서 왜 낳았습니까?”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을 만드시고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범죄한 우리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일하시면 우리가 죄를 범하였어도, 어리고 부족해도, 나이가 많아 연약해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바꾸셔서 영광스러운 그 나라에 서게 하십니다. 여러분, 어두움 속에 있지 말고, 교회 안에서 믿음과 신앙을 배워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남은 삶을 산다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여러분, 이제는 우리의 의지, 각오, 결심을 기대하지 말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삶을 삽시다.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허망한 육신의 욕망에 빠져서 삼손처럼 비참하게 인생을 마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도록 우리 모두 주님을 사랑합시다. 주를 위해 시간도 드리고, 마음도 드리고, 물질도 드리며 예수님을 위하는 삶을 삽시다. 우리가 자신의 몸을 위하는 것보다 예수님이 우리 몸을 위하는 게 훨씬 복됩니다. 이제 주님이 우리 몸을 위하시도록 맡기고,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산다면 그 삶이 너무나 놀랍고 복될 줄 믿습니다. 
제 위장이 안 좋을 때, 심장이 안 좋을 때 주님이 깨끗하게 고쳐 주셨습니다. 제 삶의 모든 면을 섬세하게 이끄시고 도우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의 남은 생애는 늙었든지 젊었든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 삶, 예수님을 섬기는 삶을 삽시다. 그 삶이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뒤로 물러나 구경만 하지 말고 남보다 한 발짝 앞서 주일예배도 일찍 오셔서 말씀을 경청하시고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의 시간도 많이 가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러분 마음에 더 많이 자라서 여러분을 통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놀라운 구원이 전해지도록 함께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 2019. 11. 24.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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