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을 지켜낸 다부동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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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을 지켜낸 다부동 전투
연재 전적지 탐방 시리즈 - ①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7.08.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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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7일은 정전협정을 맺은 지 64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에 편집부에서는 6·25전쟁 발발 후 정전협정을 맺기까지 3년 동안의 수많은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3곳의 전적지를 탐방·취재하였다. 

Contents
 ▶  1.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을 지켜낸 다부동 전투
     2. 6·25전쟁의 판세를 바꾼 지평리 전투
     3. 12차례의 쟁탈전을 반복한 격전지, 백마고지

6·25전쟁 발발 2개월 만에 거의 함락 위기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지금 내 곁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 다부동 전적기념관 비문의 글 (이우근 학도병의 일기 中) - 
6·25전쟁 당시 펜 대신 총칼을 들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학도병의 이야기는 몇 해 전 영화〈포화 속으로〉의 소재가 되어 많은 국민들에게 전쟁의 아픔과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지난 7월 27일은 정전협정 64주년을 맞은 날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한반도에서는 피아(彼我)간 무려 400만 명의 사상자를 내며 세계사적으로도 참혹했던 6·25전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3년 1개월간의 전쟁 후 이루어진 정전협정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했을 뿐만 아니라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북한군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당시, 우리군은 전차는 물론 자주포와 전투기 한 대 없었다.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2개월 만에 경상도 일부를 제외한 남한의 전 지역을 차지하고 낙동강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다. 

북한군 격퇴, 북진의 계기 마련한 다부동 전투 

다부동 전투(1950.8.1~9.24)는 6·25전쟁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 인천상륙작전(1950.9.15)과 북진의 계기를 마련한 구국의 격전이었다. 연합군은 북한의 낙동강 도하를 막기 위해 왜관철교를 폭파하고 대구로 향하는 길목인 다부동에서 북한군과 55일간의 사투를 벌였다. 아군 1만여 명, 적군 1만 7천 5백여 명의 사상자로 인해 다부동은 그야말로 시산혈해(屍山血海)의 현장이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의 여환숙(67) 문화관광해설사는 “적군이 공격해 오면 시체로 진지를 구축해 싸웠고 수류탄을 주고받는 혈투 속에서 동료의 시체에서 나오는 창자와 핏물을 뒤집어쓰고 구더기를 떨어내며 동네 아낙들이 만든 주먹밥을 먹었다”고 말했다.
다부동 전투는 망명정부 수립이 논의 될 정도로 위급한 상황에서 국군과 유엔 참전용사들의 투혼으로 공산세력과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였다. 또한 포화 속에서 탄약, 식량을 지게로 져 나른 주민들, 사격과 수류탄 투척을 배울 틈도 없이 전쟁에 참전한 500여 명의 학도병, 전국 1500여 명의 경찰 등 국민 모두가 함께 이룬 승리였다. 

55일간의 전투 기록한 다부동 전적기념관

다부동 전적기념관(경북 칠곡군 가산면)은 다부동 전투의 실상을 보여주고 전몰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1981년 11월 세워졌다. 전시관을 둘러보는 동안 어릴 적 의미도 모른 채 흥얼거리던 노래가 피비린내 나는 전장(戰場)의 처절한 모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 진중가요 ‘전우야 잘자라’ -
북쪽을 향한 전차 모양의 기념관 위에서 대검을 들고 돌격하는 군인 동상과 힘차게 휘날리는 6·25전쟁 참전국들의 국기는 ‘자유 대한민국은 국군과 유엔군의 피와 뼈로 이루어졌음을 기억하라’고 외치는 듯 했다.
2015년 안전행정부의 여론조사 결과 우리나라 청소년 절반이 6·25전쟁 발발년도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세대들이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윈스턴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번영이 수많은 국민들과 유엔군의 희생, 피흘림의 댓가로 얻은 자유라는 사실을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겨주고 있다.                         
송미아 기자 miasong@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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