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례의 쟁탈전을 반복한 격전지 백마고지 [白馬高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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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례의 쟁탈전을 반복한 격전지 백마고지 [白馬高地]
연재 전적지 탐방 시리즈 - ③ 정전 앞두고 최대 공방전을 펼친 백마고지를 찾아가다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7.08.2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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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7월 정전회담이 시작된 이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까지 약 2년 간 남북은 서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전적지 탐방 시리즈 마지막으로 백마고지 전투가 전개되었던 철원을 찾아가 보았다.

Contents
     1.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을 지켜낸 다부동 전투
     2. 6·25전쟁의 판세를 바꾼 지평리 전투
 ▶  3. 12차례의 쟁탈전을 반복한 격전지, 백마고지

하루에도 수차례 주인이 바뀐 고지 전투

빗발치는 총탄과 쏟아지는 포탄, 생선을 잡아 그물에서 쏟아 놓은 것처럼 첩첩이 쌓인 시체들, 총검에 찔려 죽어가던 전우들의 초점 없는 눈동자….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한 한 노병이 회상한 당시의 참혹한 모습이다. 
1951년 7월 10일 유엔군과 공산군은 개성에서 정전을 위한 첫 회담을 시작했다. 정전회담은 2년여 동안 지속되었으며, 양측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해 유리한 지형을 얻기 위한 고지쟁탈전을 벌였다. 백마고지 전투도 6·25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이 기간에 치열하게 전개된 고지쟁탈전 중 하나이다.
1952년 10월 6일, 강원도 철원에서는 395고지(백마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전투가 시작됐다. 백마고지는 철원읍 서북방 12㎞ 지점에 위치한 해발 395m의 무명 고지였다. 당시 우리 군은 이 고지를 점령해서 철원 평야를 지키고 서울로 통하는 유엔군의 보급로를 확보해야 했기에 이곳은 전투의 매우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중공군은 정전협정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한국군 9사단(사단장 김종오 소장)이 점령하고 있던 백마고지 공격에 나섰다. 15일까지 10일간 진행된 전투에서 세계 전사(戰史)상 유례가 없을 만큼 처절한 포격전·수류탄전·백병전이 주야간 반복됐다. 서로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과정이 반복되었으며 총 12차례의 공방전 끝에 결국 우리 국군이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포격으로 산이 하얗게 벗겨져 백마고지라 불려 

지난 8월 중순, 기자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에 위치한 백마고지 전적지를 찾았다. 입구에서 태극기가 펄럭이는 자작나무 길을 지나니 조국을 위해 희생된 장병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백마고지 전적비와 위령비가 눈에 들어왔다. 기념관에는 당시 전투 상황을 설명하는 안내문과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김종오 장군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실제 전투에 사용했던 휘어진 기관총, 녹슨 철모, 단검 등은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짐작케 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은 1만여 명이 사망했고, 아군도 3천 4백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0일간 사용된 포탄 수만 해도 27만 발에 이를 정도로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였다. ‘백마고지’라는 이름은 전쟁 중 포격으로 수목이 다 쓰러져 버리고 산이 하얗게 벗겨져 마치 누워 있는 백마(白馬)처럼 보였기 때문에 붙여졌다. 
이 전투로 국군 제 9사단은 철원, 김화, 평강을 잇는 철의 삼각지대 한 부분인 철원 지역을 계속 장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정전회담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만약 백마고지를 지켜내지 못했다면 전선이 무너지면서 철원 평야가 적의 수중에 빼앗겼을 것이라며 백마고지 전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아픈 역사 올바로 알아야죠”

전적지에는 휴가를 맞아 방문한 몇몇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보였다. 아들과 함께 온 우상선(53, 청주) 씨는 “휴양지를 가는 것보다 이런 역사적인 곳을 찾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여행이라 생각되어 왔는데 아들도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기념관을 지나 전망대에 서자 드넓은 철원 평야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 뒤로 백마고지라 불리는 작은 산 하나가 보였다. 지금은 전쟁의 흔적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워 보이지만 당시 이곳은 장병들의 피로 물들인 격전의 현장이었다. (*철원 평야 건너 백마고지 사진은 군사보안으로 사진 게재를 금하고 있어 본지에 실을 수 없었다) 부인과 함께 이곳을 방문한 김정환(71, 군산) 씨는 “군인 출신이라 누구보다 안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이런 곳에 와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올바로 알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 6·25전쟁과 숱한 장병들이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조차 점차 잊혀가고 있다. 이번 전적지 탐방 시리즈(3회)를 통해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한 참전 용사들의 숭고한 뜻과 정신을 기리고 이들의 희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인나 기자 innakim@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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