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광산에서 고립 9일 만에 생환할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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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광산에서 고립 9일 만에 생환할 수 있었던 이유
기획 [신년기획] 지하 190m 갱도에서 구조된 광부 박정하 씨, 그는 결코 희망을 놓지 않았다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2.12.3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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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YTN 뉴스 캡처 |  출처/ tvN 유퀴즈온더블럭 캡처 | 석탄산업전사 기념비 앞에 선 박정하 반장  사진/ 오병욱 기자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다사다난했던 2022년 임인년 끝자락에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봉화광산 광부들의 이야기는 온 국민에게 희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조업용 보관 자재들, 생명 연장에 활용 

지난 11월 4일,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갱도에 고립됐던 광부 두 명이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이들은 지하 190m에서 작업하던 박정하(62) 작업반장과 보조작업자 박모(56) 씨로 10월 26일 슬러지(광미)가 수직갱도 아래로 쏟아지며 고립되었다. 이후 믹스커피와 물로 연명하다 221시간 만에 구조된 이들의 소식은 10.29 이태원 압사 사고로 충격과 실의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기자는 지난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위치한 폐광근로자협의회 사무실에서 박정하 반장을 만났다. 구조된 지 두 달이 다 돼가는데도 트라우마와 피부발진 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을 지나 이렇게 새로운 빛 아래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 기쁘다”며 사고 당시를 되짚어주었다. 박 반장은 “다행히도 고립될 것을 예상한 것처럼 작업을 위해 미리 확보해 둔 자재들이 9일 동안 생명을 연명하는데 모두 쓰였다. 먼저 비닐로 천막을 두른 후, 1m 80㎝되는 긴 판장을 30㎝씩 잘랐다. 그리고 철재 지주시공을 위해 준비한 산소와 LPG를 사용해 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했다. 믹스커피 30봉지도 3~4일치 식사대용이 되었다. 암반에 스며 떨어진 물을 받아 마셨는데 중금속 오염이 된 물이었는지 온 몸에 붉은 반점과 두드러기로 지금도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인원 및 첨단 장비를 총 동원해 구조에 매진

광부 경력 27년의 박 반장은 고립 당시 공포로 주저앉아 울고 있는 동료를 향해 “이런 일은 빈번해. 괜찮아”라고 위로할 정도로 의연했다고 한다. 침착하게 탈출을 위해 괭이 2자루를 들고 땅을 파기도 하고 화약 20여개를 터트려 보았다. 그러나 아무 진전 없이 5일이 지나자 서서히 공포가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구조되기 3일 전부터는 철벅철벅 갱도 물길을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와 두 사람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환청이었다. 헤드랜턴이 깜빡깜빡하고 장작이 겨우 6개피 남았을 때는 죽음 문턱에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동료 광부들이 자신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박정하 반장은 “아직도 안 죽고 살아 있잖아. 불빛만 보이면 우리는 사는 거야”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2~3시간쯤 흘렀을까? ‘발파’ 소리와 함께 어둠을 뚫고 빛이 들어왔다. 붕락된 1수직갱도가 아닌 2수직갱도로 진입한 동료들이 24시간 쉼없이 320m를 굴진해 들어온 것이다. 특히 그를 잘 따르던 31세 탈북자는 구조를 위해 하루 12시간씩 죽을 힘을 다해 땅을 팠다고 한다. 
두 광부를 구하기 위해 동원된 인적·물적 자원은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방부 시추장비 현지 파견 등 다각적인 노력을 부처에 지시했고 소방과 경찰, 도청, 군에서 대거 인원이 투입되었다. 생존자 탐색을 위한 음파ㆍ내시경, 천공기 등 첨단장비 동원에 소요된 4억 2000만원의 비용은 지자체에서 일괄 지급하기로 했다. 

“끝까지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돼”

박정하 반장은 요즘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는 “어둠이 오면 불안해 견딜 수가 없어 이곳저곳에 자꾸 전화를 한다. 처방약을 먹고 잠을 청하는데 새벽 3시엔 어김없이 잠을 깨 온 집안에 불을 켜고 다닌다”며 “무엇보다 3년 전부터 공황장애 치료를 받는 아내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아직 정신적·육체적 회복이 더디지만 언론매체와는 꼭 만난다는 박 반장은 “현시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지금 이 시간에도 위험에 노출되어 작업하는 광부들이 나와 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법이 없다. 40년 전과 변함없는 채굴방식과 작업환경의 실상을 지속적으로 알리면 안전조치에 관심을 갖고 광부들의 처우 개선에 나서주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기자와의 인터뷰가 있기 전날에도 병원 치료를 끝내고 산업통상자원부를 방문했다는 그는 “광산에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사고가 나지 않은 2수직갱도 광부 100여명이 6개월 가량 일을 못하니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지 염려된다”며 “국회라도 찾아가 조업 재개를 부탁하고 싶다”고 간절한 심경을 드러냈다.
앞으로 동료 광부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싶다는 박정하 반장.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와 보니 죽는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말아야한다는 마음이 든다. 많은 시민들이 우리에게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데 오히려 ‘살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국가와 국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송미아 차장대우 miasong@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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