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참전 한국인을 위한 아름다운 희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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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참전 한국인을 위한 아름다운 희생이었다”
특집  호국보훈의 달 특집-② 73년 전 낯선 한국 땅에서 피 흘려 싸운 푸에르토리코 용사들을 만나다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3.06.17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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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리베라씨에게 국기 배지를 달아드리는 한국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 | 해외봉사단원들이 푸에르토리코 바야몬시 국립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6.25전쟁 참전 용사 앙헬 구스만씨가 한국 청년들과 현지 국립묘지에서 함께한 모습 사진제공/ 윤선미 통신원

 

이름조차 생소한 카리브해에 위치한 푸에르토리코(미국령)라는 인구 320만여명의 작은 나라, 6.25전쟁 73주년을 맞아 본지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한국에서 젊음을 희생했던 참전 용사 2인을 만나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6만1천명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의 실상

“1951년, 우리는 긴긴 시간 배를 타고 멀고도 낯선 한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총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2주간 배에서 더 머물렀다. 그러다 우리는 상륙했고 어느 날 우리 위치가 적에게 발각되어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이틀간의 전투로 3천여명이던 아군이 1천여명만 남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적군들은 아군의 시체를 마치 정육점의 고기처럼 나무에 매달아 우릴 위협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데시데리오 데 레온, 102)
현지 시간 6월 13일 오전, 취재팀은 두 명의 노장을 만나기 위해 푸에르토리코 폰세市와 카구아스市를 찾았다. 먼저 폰세에서 우리가 만난 ‘데시데리오 데 레온’씨는 70여년 전 참혹했던 전쟁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올해 한국 나이로 102세인 그는 1951년부터 1952년까지 6.25전쟁에 참전했던 노장이다. 이어 카구아스에서 만난 라파엘 리베라(95)도 전쟁 당시 한국의 모습을 취재팀에게 들려줬다. “전쟁 당시 한국 아이들은 대부분 풀뿌리를 먹고 나무에 올라가 나뭇잎을 따 먹곤 했다. 우리 부대 앞엔 거의 매일 100여명의 아이들이 음식을 구하러 왔고 나는 내 식량을 아껴서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그 아이들은 내게 ‘아버지’ 또는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70여년 전 미군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들은 많은 희생을 치렀다. 6만1천여명이 참전해 750여명이 전사했고 2천300여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푸에르토리코의 이러한 희생은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푸에르토리코 6.25전쟁 참전용사 중 생존자는 작년 말 기준으로 약 900명이다.
 

한국에서 온 해외봉사단원들과 함께한 데시데리오(가운데)
데시데리오가 속했던 美 제65보병연대가 받은 美 의회 금메달

한국의 청년들이 ‘감사’ 표하며 찾아주어 감동

데시데리오씨는 6.25전쟁 당시 많은 살육의 현장을 겪었다. 그는 당시 자동기관총 사수였기에 자신의 참호 속에서 다른 군인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고백했다. 물론 전쟁 때문이었지만 그 죄책감으로 인해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5천의 병력으로 5만 병력 적군과 전투를 치른 것이다. 당시 대대장이 결국 후퇴할 것을 명령했고, 이를 비겁한 행위로 간주한 미군은 64년 간 그들에게 제대로 된 예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데시데리오씨의 말이다. 
세월이 흘러 푸에르토리코 군인들이 참전한 전투에 대해 조사하던 미국은 비로소 이들의 공적을 인정했고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용사들’이라는 타이틀로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들을 격려했다. 결국 전쟁 64년이 지난 어느 날, 美 오바마 대통령이 생존한 푸에르토리코 용사들을 워싱턴 D.C.로 초청해 ‘퍼플 하트’ 메달을 수여했다고 데시데리오씨는 말했다. 
최근에는 해외봉사활동 위해 푸에르토리코에 온 한국 청년들이 매년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찾아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한국 청년들과 만남을 통해 이들은 트라우마를 잊고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데시데리오씨는 “미국과 푸에르토리코 사람들도 대부분 참전용사인 나를 잊고 있지만 3년 전부터 한국 청년들이 찾아와 감사를 표했다”며 이들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한국 국민, 파병 용사의 희생 기억해야

라파엘(1950~1951 참전)씨는 “6.25전쟁 당시 스페인어를 하는 문씨 성을 가진 한국인이 있었다. 그 친구를 통해 한국인들과 많은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전쟁은 내가 사랑하는 한국인들을 위한 희생이라 생각했고, 전쟁에서의 아픈 기억보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희생했던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고 밝혔다. 
1950년 당시 대한민국의 모습은 ‘폐허’라고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었다. 라파엘씨의 말대로 전쟁 당시 정상적인 건물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변모했다. “자유를 위한 고귀한 희생을 잊은 한국인들이 있다면 반드시 그 희생을 가르쳐야 한다. 몇년전부터 꾸준히 우리를 찾아왔던 한국의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들은 그 희생을 역사교육을 통해 배웠기에 여기 우리와 함께 있다. 이처럼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다른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한다면 대한민국은 더 부강해질 것이다”라는 라파엘씨의 말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래의 분명한 비전을 제시해 주었다.
푸에르토리코=윤선미 통신원
정리/ 고정연 차장대우 jyko@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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