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고국으로 돌아오길... 국군포로 가족의 한 맺힌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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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고국으로 돌아오길... 국군포로 가족의 한 맺힌 눈물
특집  호국보훈의 달 특집- ① 국군포로들의 권리와 송환을 위해 진력하는 (사)6.25국군포로가족회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3.06.0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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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6.25국군포로가족회 손명화 대표

올해는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6.25전쟁 정전협정이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70년이 지나면서 기억 속에 점차 잊혀져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서 나라를 지키다 북한에 억류돼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의 삶을 조명해 보았다.

국군포로와 가족들,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 요구 

얼마 전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붙잡혀 수십년간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탈북한 국군포로와 유족이 북한 당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이 탈북 국군포로에 대한 북한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건 2020년 7월 이후 두 번째다. 북한으로부터 실제 배상을 받아내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에 억류된 수많은 국군포로의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우리 사법부가 인정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탈북 국군포로 김성태(91)씨는 “오늘같이 기쁘고 뜻깊은 날을 위해 조국에 돌아왔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 만나보지 못했다”며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다 죽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당시 국군포로 및 실종자 수를 8만 2천여명으로 추산했으나, 정전협정 체결 뒤 최종 송환된 국군포로는 8343명에 그쳤다. 오랫동안 국군포로 문제는 외면당해왔다. 하지만 1994년 故조창호 중위가 최초 귀환하면서 국군포로의 존재가 알려졌고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정전협정 후 지금까지 스스로 북한을 탈출, 한국으로 돌아온 국군포로는 80명이며 그들의 자녀 수백명도 탈북하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참전용사들을 예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재 한국에 생존한 국군포로는 13명으로 대다수 90세가 넘는 고령에 거동도 편치 않지만 북한에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는 분명했다. 또한 국군포로 자녀이자 (사)6.25국군포로가족회를 이끌고 있는 손명화(61) 대표는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국군포로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힘쓰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국군포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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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진/ MBC뉴스 캡처 
(하)작년 7월에 열린 국군포로 송환촉구 국제포럼에서 손명화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 국군포로가족회

대부분 노예로 살다 비참한 죽음 맞이해

지난주 기자는 손명화 대표를 만나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 손동식씨는 정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5월 26일 북한에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폐암으로 1984년에 사망했다. 손 대표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군포로들은 전후 복구사업을 위한 공사 현장과 광산 등에서 일하며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 항상 감시를 당했고 탈출을 시도하거나 남한으로 간다고 하면 다른 포로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군포로는 북한 내에서 감시와 통제에 시달렸고 이들 자녀도 부모의 출신을 이유로 대학진학이 제한되는 등 심각한 차별을 당했다. 그는 “북한에서 학교다닐 때 같은 학급의 아이들에게 ‘야, 괴뢰군 새끼’ 하며 괴롭힘을 당했다. 국군포로의 자녀들은 북한에서 꿈도 행복도 가질 수 없었다”며 토로했다. 이어 “아버지가 평소 고향에 계신 부모와 형제들을 딱 한 번이라도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임종하실 때 통일이 되면 묘를 파서 고향에묻어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북한에 있는 모든 국군포로들의 소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후 손 대표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목숨을 걸고 탈북했고 2013년 북한에 묻힌 아버지 유해를 대한민국으로 모셔왔다. 
국군포로 유해 송환에 관심 가져주길 기대

손 대표는 유해 송환 후 DNA 검사를 통해 부녀지간인 것을 밝혔지만 정작 국군포로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국군포로로 인정을 받고 명예를 회복하기까지 혼자서 오랫동안 고군분투하였다. 그는 “북한에서 버림받고 한국에 왔는데 아무도 국군포로에 대해 관심이 없어 도와달라 소리치며 한 맺힌 세월을 보냈다”며 눈물을 흘렸다.  
손명화 대표는 아버지의 유해를 송환하면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국군포로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했고 이에 국군포로가족회를 설립해 국군포로 유해송환 및 명예회복 등에 관련한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 대부분 90세가 넘으셨기 때문에 살아계신 분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탈북해 온 자식들은 아버지의 묘가 어디 있는지 알기 때문에 100구 정도의 유해는 송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손 대표는 국군포로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버려진 영웅들 43호’를 제작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국군포로의 삶이 알려지길 바라며 “아버지 같은 분들이 후세대에게 행복한 국가를 물려주고 싶어 피흘려 지킨 대한민국이다. 이 나라가 존재했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국군포로의 아픔과 그들이 겪은 삶을 통해 희생 없는 평화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젊은 세대가 알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인나 기자 innakim@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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