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바꾼 청지기처럼 우리도 주님께로 마음을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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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바꾼 청지기처럼 우리도 주님께로 마음을 바꿔야
2006.10.29 주일 낮 설교 요약- 126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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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열심히 교회 다니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전도하고 연보한다고 신앙이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신앙의 세계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아 하늘나라도 가고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늦잠 자고 싶고 가족들과 시외로 나가 즐거운 시간도 갖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그것을 포기하고 신앙을 위해서 교회에 온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해서 신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는 교회에 나가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그 삶 속에 일을 하실 수 없습니다.

자신을 버리지 못한 베드로

베드로는 어느 날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결국 한 마리도 잡지 못해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와서 그의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신 뒤에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가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물을 내렸는데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혔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고기 잡던 배와 그물, 그리고 잡은 고기도 버렸습니다. 가정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간 그때부터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는 배와 그물, 가족은 버렸지만 버리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자신의 생각과 주장, 즉 자기 마음을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마음의 밑바닥까지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별별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거짓과 미움, 음란과 정욕,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일 윗부분에는 선한 것으로 살짝 덮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善)은 마치 초겨울 들판에 하얗게 내렸다가 햇볕이 나오면 녹아버리는 서리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겉만 보면 ‘나는 선하고 진실해. 나는 정직하고 믿음이 있어’ 하는 마음이 들지 몰라도 여러분의 마음 밑바닥까지 들어가 보면 자신도 모르던 악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의 가인의 이야기에는 그러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가인이 어느 날 하나님께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귀한 예물을 받으시옵소서” 하며 제사를 드리는 모습은 너무 거룩하고 신령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예물을 받지 않자 가인은 아우 아벨을 때려죽였습니다.
아벨을 죽이고자 하는 그 마음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가인의 마음 제일 밑바닥에 깔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마음 밑바닥에 있는 악을 보셨습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 아우를 죽일 수 있는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라는 말씀처럼 사람들은 보통 겉만 보고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마음 밑바닥을 들여다보십니다.

불의한 청지기

오늘 아침 누가복음 16장을 다 읽었습니다. 저는 이 누가복음 16장을 읽을 때마다 ‘이것은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이런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불의한 청지기에 관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부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면서 자신의 재산인 양 큰소리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청지기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자네가 내 재산을 허비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어떻게 된 거야? 내 재산을 전부 정리해. 이제 자네에게 청지기 업무는 안 맡길 거야.”
여러분, 주인이 그렇게 말한 그날까지도 청지기는 여전히 청지기였습니다. 그날 그 청지기가 길거리에서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청지기 나리, 안녕하십니까?” 자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며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직까지는 주인의 재산을 내가 관리하고 있으니까 저 사람들이 나에게 굽실거리는 거지. 그러나 주인이 내 직분을 뺏으면 나는 어떻게 되지? 저 사람들이 다 나를 경멸할 거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청지기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현재는 청지기이지만 조금만 있으면 그 직분을 빼앗긴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하지 않는 청지기라면 ‘그래, 직분 빼앗아라. 그래도 오늘까지 나는 청지기다. 그만둘 때까지 먹고 마시고 즐기자’는 마음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청지기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무얼 해서 먹고 살지? 어디에 취직을 할까?’ 그러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마음이 들면서 마지막으로 두 가지 길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땅을 파서 농사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땅을 팠으면 모르지만 이제는 늙어서 힘도 없는데 밭을 갈고 괭이질하려고 하니까 못 해 먹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땅도 팔 수 없다면 남에게 빌어먹어야 하는데 “한 푼 줍쇼. 적선하십쇼. 죄송합니다. 밥 한 숟갈 주세요” 하면서 구걸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청지기는 앞으로 닥칠 일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빌어먹을 수도 없는 자신을 알게 되니까 그 마음의 근본이 바뀌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앞으로 닥칠 일을 생각해 보세요. 젊은 사람은 늘 젊습니까? 건강한 사람은 늘 건강합니까? 지금은 병이 없다고 늘 병 없이 살 수 있습니까? 언젠가 여러분도 늙을 때가 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젊었을 때와는 달리 기억력도 없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을 잘하고 싶지요? 착하고 진실하게 살고 싶지요?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부터 새벽기도 해야지’라고 결심해도 며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오늘부터 성경 읽어야지. 아멘, 믿습니다!’라고 각오를 한다고 해서 성경이 마음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마음의 기초’가 있어야

축구를 할 때 축구 선수는 마음에서 공을 땅볼로 깔거나 공을 뜨게 하겠다고 정합니다. 땅볼로 깔려면 왼발을 공보다 약간 뒤에 두고 차야 됩니다. 공을 뜨게 하려면 왼발을 공보다 약간 앞으로 내서 차야 됩니다.
그러나 축구 선수가 이렇게 자유자재로 공을 차려면 그냥 생각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계속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공을 띄우고 싶으면 자기도 모르게 발이 공보다 앞으로 가고, 깔고 싶으면 발이 공보다 뒤로 갑니다.
또한 사업을 하는 사람이 공장을 운영하려 해도 공장 부지와 건물도 있어야 하고 자본과 기계도 있어야 하고 노동력도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세계도 그와 똑같습니다. 기도하려고 한다고 해서 기도가 되는 게 아닙니다. ‘성실해야지’ 해서 성실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해야지’ 해서 겸손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마음의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교만도 ‘내가 남보다 낫다’는 근본 마음이 있어야 교만해집니다. ‘저것밖에 못해? 그래가지고 장사해 먹겠나?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나?’ 하며 내가 남보다 잘하고 뛰어나다는 생각이 있어야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방종한 사람이나 불성실한 사람을 만나보면 그 사람에게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기초가 없는 집이 무너지듯이 마음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신앙의 기초 없이 “내가 죽어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그 말은 금방 무너져 버렸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려고, 기도를 하려고 각오하지만 며칠 못 가는 이유도 신앙의 기초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참한 청지기의 앞날

청지기가 자기의 앞날을 생각해 보니 너무 비참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았는데 주인이 내 직분을 뺏으면 도대체 뭘 해야 하지?’ 암담해서 잠이 안 오는 겁니다. ‘친구한테 부탁해서 수위라도 시켜달라고 할까? 그 친구네 수위가 있는데 어떻게 그를 내쫓고 내가 한다고 하지? 말도 안 돼. 만일 시켜준다고 해도 잘할 수 있겠나? 수위도 겸손해야 잘할 수 있는데….’
어제 러시아에서 와서 그라시아스 합창단을 지도하고 있는 성악교수 아나톨리와 점심식사를 같이하려고 도장로님 아파트에 갔습니다. 그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차량번호가 입력되어 있는 자동차는 통과되지만 차량번호가 입력되어 있지 않은 자동차는 방문지를 확인 받고 들어가야 합니다.
어제는 그곳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번호를 확인하는 기계가 고장이 났더군요. 그러자 경비원이 나와 확인을 하는데 그는 겸손한 정도가 아니라 눈치도 빠르고 행동도 재빠르고 매너도 있고 센스도 있었습니다. 그 경비원의 자세를 보고 ‘내가 경비를 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절대 못하겠다. 내가 이 아파트의 경비원만큼만 겸손하게 사역하면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다 좋아할 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

한번은 제 아내가 물건 좀 살 것이 있다고 해서 어느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가게 앞에서 사과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거기서 사과를 팔면 안 되나 봅니다. 어떤 아저씨가 와서 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차 안에 있어서 뭐라고 하는지 소리는 안 들렸지만, 그 아줌마가 연신 굽실거리면서 사죄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사과상자를 발로 차서 거기에 있는 사과가 다 굴러 떨어졌습니다. 저는 그 아주머니가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사과를 주워 올리면서 한편으로는 그 아저씨를 보며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자기 사과상자가 발로 차여서 사과가 다 길바닥에 굴러 떨어졌는데도 말입니다. “내가 사과 장사 안하면 되지, 왜 발로 차?” 그랬으면 그 아주머니는 거기서 사과 장사 못했을 거예요.
‘무엇이 저 여자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남편이 아파서 집에 누워 있는데 약값을 준비하려고 저러는 걸까? 자존심까지 다 버리면서…. 세상살이가 쉽지 않구나! 나는 목사라서 좋은 밥 먹고 좋은 차 타고 잘 사는데, 내가 저 사과장수라면 저렇게 못하겠다! 저 사과장수가 나보다 훨씬 깊은 경지에 들어갔구나! 저 사과장수는 자기 마음을 꺾을 줄 아는구나!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가라앉힐 줄 아는구나!’ 그때 보았던 그 일이 오래도록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의 생명

세상을 유심히 살펴보면,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되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구멍가게를 해도, 구두닦이를 해도, 신문팔이를 해도, 노점상을 해도, 음식점을 해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다 되는 줄 압니다. ‘성경 읽으면 되지, 기도하면 되지, 충성하면 되지, 죄 안 짓고 착하게 살면 되지, 믿음 가지면 되지’라고 믿지만 그것이 얼마나 교만한 마음인지 모릅니다. ‘내가 이번에 잘하면 되지 뭐, 사람이 하는데 왜 안 돼?’라는 생각은 신앙을 소홀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신앙은 금보다 더 소중한 우리의 생명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영원히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30년이 지나면 여기에 있는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을 겁니다. 50년이 지나면 여기에 있는 사람의 반은 없을 것입니다. 80년이 지나면 여러분 중에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100년이 지나면 여러분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을 것입니다.

마음을 돌이키고

이 청지기는 자기의 직분을 빼앗긴다는 생각에 자기 마음을 꺾었습니다. 청지기는 지금까지 주인에게 빚진 자를 향해 큰소리치고 거드름을 피웠는데, 이제는 그들에게 도움을 입고 은혜를 입어야 할 위치에 놓였습니다. 그들에게 도움을 입지 않으면 살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고 돌이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이 청지기가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찾아갔습니다. “아이고, 청지기 나리 오셨습니까?” “아니, 왜 그러시오?” “아이고 무슨 말씀을, 어서 들어오시지요.” “아, 이러지 말고….” “청지기 어르신, 빚 때문에 오셨지요? 곧 갚으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래서 온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당신에게 너무 무례하게 굴었던 것 같은데 뉘우치고 사과하러 왔습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에이, 그러지 말아요. 사실 나도 당신보다 잘난 것 하나도 없어요. 다 주인의 재산이고, 내 재산은 하나도 없는데, 내가 너무 거만하고 교만했어요. 용서하세요.”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자비를 베푸는 청지기

청지기는 증서도 다시 썼습니다. “그건 그렇고, 문서 좀 가져오세요.” “예, 여기 있습니다.” “음, 우리 주인한테 빚이 기름 100말이나 있네요?” “그렇습니다.” “이거 갚을 수 있으세요?” “아, 예, 갚아야지요. 갚겠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서류 줘 봐요. 이 정도 하면 괜찮겠소?” “얼마요? 50말? 아이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아니, 내가 이 자리에 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자리에 있을 때 봐주지 뭐. 50말 됐지요? 이건 나하고 우리 둘만 아는 사실이오. 당신은 우리 주인한테 기름 50말 빚진 거요, 50말! 자 100말짜리 증서는 이제 찢습니다. 오늘 이것으로 끝이요.”
“아이고, 청지기님,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 딸 시집을 보내야 해서 많이 어려운데, 이러면 한결 가볍겠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 “내가 그동안 너무 심하게 대했는데, 날 너무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동안 생각이 모자라서 그랬는데, 나도 이제 마음 바꿨어요.”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수가, 이거 믿어도 될지….” 청지기가 생전에 안 해본 짓을 하는 거예요.

우리의 참모습을 알고 나면

또 다른 사람을 불렀습니다. “김 선생, 내가 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요. 김 선생, 뒤에서 내 욕 많이 하셨지요?” “무슨 말씀을요. 제가 청지기님을 왜 욕합니까?” “에이, 다 알아요. 내가 욕 얻어먹을 짓을 했어요. 나도 사람인데 생각이 없겠습니까? 내가 아무것도 없는 인간인데, 주인 재산 좀 가지고 있다고 김 선생한테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아요.” “아닙니다.” “에이, 내가 진심으로 얘기하는데 그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예, 고맙습니다.”
“그 문서 좀 봅시다.” “이거 갚아야 하는데, 곧 갚도록 하겠습니다.” “밀 100석이라…. 그러면 10년은 아무것도 안 먹고 농사지은 것 다 내놓아도 갚기 어렵겠네요.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은 재산이 남아돌아서 떵떵거리고, 김 선생님 같은 분은 고생하고. 하지만 늘 이렇겠습니까? 잘 살 날이 있겠지요. 내가 김 선생님 잘 살도록 조금 돕고 싶은데, 70석? 에이, 70도 많다. 밀 100석이 아니라 50석.” “아이고 청지기 나리, 왜 이러십니까?” “내가 늘 청지기 하겠어요? 좀 많은데 너무 깎으면 주인이 알 것 같으니까 50석으로 증서를 다시 씁시다. 그리고 자, 여기에다 도장 찍으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런 변화는 ‘내가 변해야지’ 하고 결심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죽을 수 있고, 병들 수 있고, 가난해질 수 있는 진짜 허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면, 교만하거나 거만해질 수 없습니다.

앞날을 생각한다면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누가복음 16장에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청지기 이야기와 부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는 그냥 먹고 마시며,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청지기는 자기에게 닥칠 운명을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사단이 인간들을 예수님 앞에 나오지 못하게끔 생각 없이 살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세상이 너무 복잡해서 생각을 못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을 안 하고 삽니다. 그냥 죽으면 죽지, 앞일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이 시대는 신앙생활을 하기 가장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녀도 그냥 주일 예배 한 번 드리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주님 앞에 나가서 마음을 꺾거나, 자기를 부인하거나 회개하는 일이 전혀 없이 그냥 죄 용서받아서 천국 가려고만 하지, 마음의 기초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자기의 내일을 생각해본다면 하나님 없이 완벽한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 없이 안전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냥 인생을 즐기다가 멸망을 당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주를 믿을 때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교만하고 거만하고 악한 마음을 바꾼 청지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앞길을 생각해보니 도저히 그 마음 가지고는 안 되니까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여러분이 불의한 청지기와 같은 마음으로 살았을지라도, 여러분 생각을 믿고 의지하는 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으로 바꾸십시오.
전에는 주인에게 “야, 그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허비한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청지기가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푼 뒤에는 좋은 얘기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 랬더니 사람들이 “아이고, 우리 청지기님 오셨습니까?” 하고 환대합니다. “아이고, 웬 말씀을….” “참 겸손하시네요. 당신은 청지기 할 분이 아닌데, 청지기 그만두시면 우리 집에 와 계셔도 좋을 것 같은데….” 이제 청지기가 직분을 뺏겨도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그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겉으로 충성하려고, 봉사하려고, 겸손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면, 자신이 무익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마음의 기초 위에 나를 부인하고 주를 믿을 때, 하나님이 역사해서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버린 것처럼 육신의 욕망을 따라가지 않게 되고, 육신의 정욕에 이끌리지 않게 되고 주님을 섬기면서 은혜로운 복을 얻을 줄 믿습니다.

- 2006.10.29 주일 낮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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