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은 영(靈)의 世界에 눈을 뜬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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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은 영(靈)의 世界에 눈을 뜬 사람
2006.10.15 주일 낮 설교 요약 -124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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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카자흐스탄에서 전도집회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선교하는 정재근 목사가 파송된 지 얼마 안 돼서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도 집회 장소를 빌렸는데, 모슬렘(이슬람교도)들이 가장 잘 모이는 공회당을 빌렸습니다. 공공 시설이니까 행사를 한다고 빌려줬는데 제가 와서 집회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지요.
그 후 성경세미나를 한다는 광고 방송을 보고 모슬렘들이 깜짝 놀랐답니다. “세상에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서 바이블 세미나를 해. 절대 안 돼!” 하면서 우리 집회를 강하게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전부 경찰에 보고가 되어 본의 아니게 소란스럽게 되었는데,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타의 경찰서장이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한 뒤 “우리가 이슬람교를 믿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있다. 기쁜소식선교회는 좋은 선교회이고 여기서 하는 집회는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만일 우리가 방해하면 법에 걸린다”고 하면서 모슬렘들의 반대를 잠재워 주었습니다.
덕분에 이번 집회에 모슬렘들이 많이 와서 구원을 받게 됐어요. 그걸 알고는 모슬렘들이 우리 선교회 홈페이지를 다 뒤엎었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선교부에서 일하는 형제가 그것을 복구하느라 애를 먹었답니다.

주님이 구원해 주셔야

저는 우리 가족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형님과 누님 두 분, 그리고 동생이 구원을 받았을 때 그 과정이 정확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구에게 전도를 해야지’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일하신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입니다.
이번 추석과 같은 명절에 형제 자매들이 고향에 가면 모처럼 가족을 만나니까 틈만 나면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다가 믿지 않는 가족들과 싸우고 부딪히기 일쑤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족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틀림없다면 주님께서 우리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보지 않고 내 계획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다가 안 되니까 ‘에이, 우리 남편은 안 돼’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믿는 마음보다 ‘내가 복음을 전해야지’ 하는 마음이 더 강하게 서 있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 보면 내가 아닌 예수님께서 우리 가족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마음에 느껴집니다. 그러면 주님이 일하시는 게 보입니다. 마음에 쉼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가면 주님이 너무 쉽게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딸에게 닥친 사고

제 딸이 중학교에 다닐 때 한번은 학교에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왔어요. “너, 왜 그렇게 되었냐?”라고 물으니까 과학실에서 약품이 묻었대요. 우리 부부는 치료를 했으니까 괜찮은 줄 알고 그냥 지냈어요.
한번은 의정부교도소에 성경 공부를 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오성균 목사님이 “목사님, 우리 교회 성도가 한양대학교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잠깐 가서 기도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셔서 그리로 가게 되었습니다. 차를 몰고 병원에 들어서는데 제 아들이 “아버지!” 하면서 뛰어오는 거예요. 제가 깜짝 놀라서 “네가 여기 왜 와 있니?” 했더니 “누나가 지금 수술해요” 하더군요.
제 아내가 한 달 뒤에 딸아이의 머리를 보았더니 상처가 낫고 있는 게 아니라 그 부위가 썩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급히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머리에 염산이 묻었을 때 학교에서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서 그 부위를 파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구원을 받게 하시려고

수술을 한 후 딸아이가 열흘 동안 학교를 못 가고 있다가 붕대를 감고 등교해야 하는데, 아침에 통학버스가 너무 복잡해서 제가 차로 한 달쯤 태워다 줬어요.
한번은 교장 선생님이 저를 불렀어요. 학교 측에서 잘못했으니까 치료비를 다 대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많은 학생 가운데 하필이면 내 딸일까?’ 그리고 ‘염산이 얼굴에 떨어졌으면 얼마나 흉측했을까? 그런데 머리에 떨어진 걸 보면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 저는 목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일을 허락하셨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뜻은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이 일을 보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치료비를 거절했습니다.
제가 목사지만 제 아들이나 딸과 신앙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많지 않은데, 학교까지 제 딸과 차를 타고 가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제 딸이 목사 딸이라서 성경도 많이 듣고 복음도 많이 들었지만, 그 마음을 살펴보니 예수님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날부터 차근차근 어떻게 죄 사함을 받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제 딸을 차로 등교 시키다가 구원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제 딸이 구원을 받고 난 뒤부터 예수님이 삶 속에서 그 마음을 이끌어 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제 딸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제 딸에게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고, 세상적인 면으로는 아무 소망 없는 삶을 살지만 예수님 안에서 기쁨과 보람을 가지고 주를 섬기며 복음을 전하고 사는 걸 보면 너무 놀랍습니다.
여러분, 저는 목사로서 수백 명, 수천 명을 만나서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없이 구원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르게 말한다면 우리의 눈이 어둡고 귀가 둔해서 그렇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 놀랍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 감사합니다.

소경의 눈을 밝히시고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9장을 읽었습니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1~3)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을 하시지만 하나님의 하신 일들이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돈과 권세의 힘 등 육신적인 힘의 세계는 알지만 하나님의 힘의 세계에 대해서는 눈이 가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걸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니까 그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분명하게 살아서 일을 하시거든요.
그리고 주님께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4~5)고 하시면서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에 바르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 9:7)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다니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았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시고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걸 보았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미련한 제자들의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의 특징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첫 부분에 유대 왕의 족보가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 왕은 말로 일을 합니다. 직접 농사를 짓거나 작업을 하지 않고 말로 지시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산상보훈 등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어느 성경보다 예수님이 설교하시는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종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일하시는 내용이 많이 나오고,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로 표현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런 성경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간을 만나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기 때문에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사람과 개인적으로 만나서 그 사람의 마음에 일하시는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니고데모를, 4장에서는 사마리아 여자를, 5장에서는 38년 된 병자를 만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6장에서는 배가 고파 헤매는 사람들에게 떡을 먹이시는 내용, 7장에서는 예수님의 동생들의 마음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8장에서는 간음한 여자, 9장에서는 소경과 대화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다 10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 11)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양이 된 것입니다.

신앙의 단계

요한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앙이 전진하는 단계를 차례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는 외형적인 면으로는 굉장히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유대인의 관원이고 똑똑한 사람이지만 마음은 예수님과 너무 먼 사람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과 대화를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은 거듭나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니고데모는 자꾸 인간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났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헤어지는 것으로 3장이 끝납니다.
4장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변화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5장에서는 38년 된 병자가 사마리아 여자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장에서는 간음한 여자가 죄 사함을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죄 사함을 받은 다음의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간음한 여자처럼 죄 사함을 받고 기쁘고 감사해 하지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우리의 신앙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로 이끄시고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위해 일하셔서 그가 눈을 떴습니다. 그는 거지였는데 그 후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고 하자 그는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라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도저히 당하지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일하셔서 우리를 믿음의 세계 안으로 이끄시는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시는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믿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믿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아직 믿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부분을 읽든지 성경을 정확히 알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길이 보입니다.

복음만이 소망

저는 지난 여름에 전도자 모임을 갖고 난 뒤 아프리카 전도여행에서 은혜를 입었고, 또 태국에서 있었던 글로벌캠프 자원봉사자 워크숍이나 그 후 사역자 금식기도회 때에도 성령이 일하는 걸 볼 수 있었고, 강남교회 장년 부인 워크숍도 하나님이 은혜를 입히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북한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마음이 착잡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는 핵우산 밑에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이 핵을 만들었다고 핵이 터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터뜨리셔야 터지지요.
저는 성경에서 구약시대 이스라엘 왕들이 하나님과 멀어졌을 때 다른 나라가 그 나라에 쳐들어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종으로 끌려가면서 비참해지는 것을 봤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을 때는 강대한 나라가 쳐들어와도 그 나라를 이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타락하면 하나님이 어렵게 하시겠구나! 우리나라의 소망은 복음밖에 없다. 이 나라가 사느냐 죽느냐는 구원받은 형제 자매들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소망은

지난주에 집회를 한 카자흐스탄의 종교는 이슬람교입니다. 그 나라에선 대통령이 독재를 하는데도 국민들이 그 대통령을 너무 좋아한답니다. 대통령이 한국을 목표로 잘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을 데려다가 경제 자문으로 세우고 한국에서 만든 자동차를 수입하고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는 등 한류 열풍이 대단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계속 길을 여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전도자나 형제 자매들 가운데 이 큰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고도, 육신 속에 빠져 타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말라리아나 장티푸스균이 들어왔을 때 우리 몸이 균을 이기면 병에 안 걸리지만 지면 병자가 되는 것처럼, 구원을 받고도 사단이 우리 마음속에 많은 일을 해서 세상의 욕망이나 정욕, 쾌락을 향해 가도록 생각을 넣어 줄 때 그 생각에 져서 타락하게 되면 하나님이 이 나라를 버리실 거라는 마음이 듭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듭난 형제 자매에게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압니다. 우리가 복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우리나라,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위한 일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

우리나라 사람이 똑똑하고 지혜롭고 부지런하더라도 하나님이 없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이 계셔서 지난 44년 동안 제 삶 속에서 일하시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여러분, 운전면허증 따는 정성만 가져도 믿음의 세계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음의 세계를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배운다는 것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행복한 것이고 또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11월에 체조경기장에서 집회를 하는데, 집회에 돈을 많이 들입니다. 그 이유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한 생명을 1억 주고 산다고 해도 그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전부 육신과 세상에 돈을 쓰면서 타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하나님이 이 나라를 버리실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오늘날 한국의 많은 사람이 신앙을 하나의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합니다. 교회에 나가면 좋고 수양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을 위해 희생하거나 핍박 받는 어려움을 겪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기성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예배드리게 하지 그들의 마음을 꺾어서 하나님 앞에 굴복하도록 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계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믿음 위에 서십시오.
믿음은 ‘열심히 믿어야지’ 하며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고 주변을 보면 예수님이 일하시는 것이 보입니다. 죄 사함도 “내 죄가 사함 받을 줄 믿습니다!” 하면서 고함을 질러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십자가의 피가 내 죄를 사하신 것이 분명히 보이면 내 죄가 사해졌다는 믿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은혜가 나를 지키시는 것을 분명히 보면 주를 믿는 믿음이 생깁니다.

영적인 세계를 보는 눈

소경에게 예수님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그곳에 가서 씻을 때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런데 “귀찮게 남의 눈에 누가 자꾸 진흙을 발라?” 하고 돌아가면 어떻게 눈을 뜰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소경이 뭔데 관심을 쏟으시고 은혜를 입히십니까? 당신의 말씀을 따라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겠습니다’ 하는 마음이라야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밝습니다. 저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옆에 앉은 형제에게 한쪽 눈은 세상을 보는 눈, 한쪽 눈은 예수님을 보는 눈이 있다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세상에, 오늘 예수님이 이렇게 일을 하셨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마음을 쓰시는구나!’ 그걸 보면 영적으로 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눈을 빼고 대신 예수님의 눈을 넣어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 세계를 보는 눈을 뜬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면

저는 제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작년에 인도 오리사에서 집회를 한 것이나 이번에 카자흐스탄에서 집회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번에 통역을 했던 우종기 선교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 목사, 환갑이 넘으면 너무 편해.”  “목사님, 정말 그렇습니까?” “응, 자넨 몰라서 그렇지 환갑만 넘어봐. 삶이 너무 편해.” “왜 그렇습니까?” “자넨 아직 이해 못해. 환갑이 넘어봐야 알아.” “왜 그런데요?” 하고 자꾸 묻길래 제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환갑이 넘으면 살 만큼 살아서 굳이 살려고 발버둥 안 쳐도 되니까 삶이 편한 거야.” 그 말을 듣더니 막 웃더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나같은 인간을 지나치지 않고 불쌍히 여기시는구나’라는 것이 보이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게 되기를 바랍니다. 물질적인 세계만 보지 말고 신비한 하나님의 성령께서 일하시는 세계를 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이 놀라운 사실을 여러분이 맛보면 주를 믿는 믿음이 저절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눈이 밝아지고 건강해져서 복되고 은혜로운 삶을 살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 2006.10.15 주일 낮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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