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계산을 가진 빌립과 예수님을 의지한 안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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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계산을 가진 빌립과 예수님을 의지한 안드레
2006.10.1 주일 낮 설교 요약 - 12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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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받고 난 뒤 제 마음속에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마음이 들어와서 거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육신에서 나오는 마음은 여전히 교만하고 태만하고 욕망으로 끌려가는데, 또 다른 마음이 내 마음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 안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처음에는 내 생각을 따라 살면 안전하고 좋은 것처럼 여겨지고,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따르면 불안하고 잘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 뒤돌아보니까, 내 생각으로 살았던 삶은 전부 실패로 끝났지만 주님이 주신 마음으로 살았던 삶은 다 은혜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제 신앙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제 생각이 저를 끌고갈 때 ‘이러면 실패하는데’라는 마음이 드니까 제 생각을 버립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따를 때 주님이 제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저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형제님, 복음을 위해 믿음으로 한번 살아보십시오. 형제님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님들은 나름대로 ‘내가 이렇게 사업을 해야지’라는 생각에 빠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저건 사단에게 속는 건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독창회를 시작하고

그라시아스 합창단을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한번은 ‘그라시아스 합창단 단원들이 독창회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음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단장님에게 “독창회를 한번 하십시오”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단장님이 아직까지는 독창회를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단장님, 단장님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좀 낮은 수준의 독창회를 하면 안 되겠습니까? 우리 형제 자매들이 모인 가운데 하는 건데 한 번 합시다” 하면서 단장님을 밀어붙였습니다.
처음에 소프라노 전원희 자매가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독창회를 했습니다. 규모가 1,600석이었는데 표가 매진되었습니다. 공연 당일 오후 1시쯤 창원으로 내려갔는데, 합창단 분위기가 초상집 같았습니다.
보통 독창회를 하려면 목소리를 아끼느라고 1년 동안 말도 안 한답니다. 그런데 전원희 자매는 독창회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공연 당일까지 연습을 많이 하느라 목이 다 쉬어 버린 거예요. 다른 사람보다 제가 더 암담하더라고요.

계속되는 은혜로운 독창회

목사는 믿음이 없어도 하나님을 쳐다보라고 해야 하잖아요. 합창단원을 전부 불러놓고 기도회를 했습니다. 전원희 자매의 목이 쉬었는데 피아노를 의지하겠습니까, 플루트를 의지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원희 자매, 우리 같이 기도해요” 하면서 기도를 했지만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가더라고요. 공연 시간이 되어 오직 하나님께 맡기고 자매가 무대 위에 섰는데, 그날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모두가 “저건 전원희가 아니라 예수님의 목소리야. 이건 하나님이 하셨어”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단장님도, 전원희 자매도, 우리 모두 신이 났어요. 그래서 단장님께 말했습니다. “단장님, 우리 독창회 또 합시다.”
그 후,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테너 우태직 형제가 독창회를 했어요. 전원희 자매가 찬조출연을 한다고 우태직 형제와 리허설 하는 것을 보니까 우태직 형제가 얼마나 어설픈지, 우태직 형제가 전원희 자매만큼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우태직 형제의 공연 역시 너무 은혜로웠습니다.
그리고 2주 전에는 진주에서 바리톤 송일용의 독창회가 있었습니다. 송일용 형제는 가사를 잘 외우지 못해요. 게다가 음악회에서는 원어인 이태리어로 불러야 하잖아요. 제가 리허설 할 때 송형제에게 “가사 외우느라고 수고했다”고 했습니다. 그날도 “저건 송일용 형제의 목소리가 아니야” 하는 마음이 들 만큼 공연이 은혜롭게 끝났습니다.

나를 정확하게 안 뒤

저는 예전에 저 자신의 생각 외에 아무 이야기도 안 들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혼자 잘났다고 생각하면서 얼마나 바보같이 살았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박옥수’라는 인간이 더럽고 추하고 야비하고 가증한 인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따라가면 망하겠구나’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예수님의 마음을 밝히 보기 위해서 성경을 펴야했습니다. 또 제 마음은 자주 세상에 끌리기 때문에 기도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예수님의 마음이 제 마음을 조금씩 이끌어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저는 ‘이 일이 내 마음으로 시작된 것은 아닌가. 이 일에 내 욕망이 들어있지 않은가’ 하며 제 마음을 저울 위에 자주 올려놓습니다. 그런 뒤 이 일이 제 개인의 욕망이나 유익을 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확신이 들면 이젠 걱정할 것이 없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두 마음 사이에서

여러분,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사단의 마음 사이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했지만, 사단은 “아니야, 결코 죽지 않아. 네가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거야”라고 속였습니다. 아담은 정말 무지했습니다. 그냥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줄 알았습니다.
어쨌든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라기 보다는 사단의 계획을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그때부터 인간은 사단의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계속 망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성경을 읽어보니까 망할 사람들은 먼저 망할 생각을 가졌습니다. 탕자와 아도니야, 아나니아나 삽비라는 어떤 생각 하나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망하는 길이 아닌 성공하는 길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인간적으로 흘러가는 것은 다 망했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길, 즉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길은 다 흥했습니다.

사단에게 이끌리면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이 무리를 보시고는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요 6:5) 빌립이 말하기를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 6:7) 그러나 거기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요 6:9)
된장국을 끓일 때 냉이를 넣고 끓이면 냉이 맛이 납니다.  그것처럼 어떤 마음이 들어오면 그 마음이 여러 가지 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음란한 마음이 들어오면 음란한 쪽으로 생각을 끌어가는 것입니다. 부부가 결혼해서 살다가 음란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면, 범죄한 뒤에 일어날 문제를 생각할 만한 지혜를 음란한 생각이 다 빼앗아버리기 때문에 음행을 하게 됩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이 뇌물을 받고 부정을 저질러서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도 ‘이러다가 잡히면 감옥에 갈지도 몰라. 국회의원직을 상실할지도 몰라’ 하는 생각을 못하고 돈에만 끌려가도록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거기에 이끌림을 받습니다.

빌립과 안드레

여러분을 복되고 은혜롭고 영광스럽게 이끌 수 있는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욕망이 더 좋아 보이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면 안 될 것 같으니까요.
저는 지난 40년 동안 예수님 안에 살면서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제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이니까요. 무슨 일을 만나도 예수님이 다 도와주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빌립과 안드레는 똑같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빌립은 아직까지 자기 마음의 세계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마음이 예수님께로 건너가지 못했고,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 생각이 예수님의 세계로 한 번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똑같은 문제를 두고 “우리가 이 많은 사람들로 어디서 먹게 하겠느냐?” 하고 물었을 때 빌립에게서는 자기 계산밖에 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사람들을 만나 몇 마디만 이야기해보면 ‘저 이야기는 저 사람에게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이야기야. 저 사람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은 사람이야’ 하는 것이 금방 감지가 됩니다.

인간의 계산

빌립이 하는 말과 안드레가 하는 말은 너무나 다릅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이 부족하니이다” 하는 빌립의 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인간의 계산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안드레는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라고 하면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믿음을 가지고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겨냥했고,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으로 오천 명을 겨냥했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가져도 부족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도 보았고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도 빌립은 여전히 자기 마음의 세계 속에 있었습니다.  
신앙은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신앙을 하려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착하고 성실하고 의롭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신앙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악하고 추하고 음란하고 거짓되다는 것을 알면 ‘이런 마음 때문에 내가 망하는구나’라는 마음이 들면서 주를 바라보게 됩니다.

안드레의 믿음

나이가 많고 세상 경험이 많아도 마음의 세계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인간이 완벽하려면 천만 가지가 다 완벽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바보 같이 서너 가지만 잘하면 자기는 잘난 사람인 것처럼 속고 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많은 역사를 보면서도 자기를 믿으니까 “예수님 참 잘 하시네, 참 놀랍네” 하는 정도지 자기 마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겠다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것도 많이 경험해보고 자기가 하면 꼭 잘될 줄 알았던 일이 잘 되지 않는 것도 여러 번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참 부족한 사람이구나,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저렇게 하시지? 저분의 지혜는 크고 마음은 너무 깨끗하다. 나도 저런 마음의 세계 속에 들어가 살아봤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교회 나가는 것, 연보 하는 것 자체가 신앙은 아닙니다. 신앙은 악하고 추한 내 생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마음의 세계 안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평온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입습니다.

믿음이 없었던 아브라함

성경에는 하나님의 종이 자기에게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그 마음을 옮겨가는 과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아브라함은 따라가긴 했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의 세계로 옮겨지지 않은 채 여전히 자기 방법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되는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어요.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창 17:5) 또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창 17:15~16)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웃었어요. “내가 아들을 낳는다고요? 내가 내년이면 100세, 내 아내는 90세가 되고 경수도 끊어졌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아요? 이스마엘이나 주 앞에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라가 아들을 낳는다고 하셨지만 아브라함은 못 낳을 것 같은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마음을 옮기고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속에서 ‘내가 볼 땐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데 하나님이 아들을 낳는다고 하시면 낳을 수 있지’ 하며 자기의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생각으로 넘어가버렸어요. 아브라함의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온 그때부터 아브라함 마음에도 하나님의 마음처럼 아들을 낳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에게 찾아가서 말씀하셨습니다.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0)
사라가 그 말씀을 듣고 웃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사라가 웃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하셨을 때 사라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고,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아니야, 네가 웃었느니라.” 그때 사라는 자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

신앙이 왜 안 되는 지 아십니까?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사 55:8)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을 거스릅니다. 여러분의 생각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승용차를 타고 미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승용차를 타고 인천공항까지는 갈 수 있지만 미국에 가려면 승용차에서 내려 비행기로 갈아타야 합니다. 그처럼 내 마음의 세계에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갈아타고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우리 자신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다윗, 베드로, 바울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에게서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참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나오지만 자기 생각의 테두리에서 못 벗어나고, 그 속에 얽매여 있는 동안은 예수님과 마음을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면 이제는 인간적인 계산이나 방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이 마음에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세계로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내 생각대로 살았던 모든 삶이 다 실패인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여러분이 생각할 때는 불안하고 안 될 것 같지만 너무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38년 된 병자 이야기에서도 자기 생각으로는 걸어갈 수 없는데 예수님이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38년 된 병자는 자기 생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걸을 수 있었습니다.
또 문둥병자 열 명에게 예수님이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는 문둥병이 안 나았기 때문에 제사장에게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가다보니 다 나아버린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만 역사를 하지, 인간의 생각의 세계 속에서는 일을 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싶고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길 원한다면, 여러분의 생각의 세계를 떠나서 하나님의 생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놀랍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말씀에서

저도 예수님 마음 안에 들어갔을 때 제가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시겠다’며 제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했을 때 백이면 백, 천이면 천,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죄 사함 받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 생각에 맞추어서 죄 사함을 받으려면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실 때 우리의 방법으로 죄를 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의사가 병을 고칠 때에도 환자의 방법이 아니라 의사의 방법으로 고칩니다. 환자가 의사를 믿으니까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방법으로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의 방법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하여 죄 사함에 대한 감정을 갖길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으로 확신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내 죄가 사해졌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죄가 사해졌다면 죄가 사해진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가지고 보면 안 믿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주의 마음과 하나가 되면

사랑하는 여러분, 조용히 생각해 봅시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전기가 이 건물 안에 가득 차 있지만 아무데서나 전기를 쓸 수 없고 전선이 연결된 곳에서만 쓸 수가 있습니다. 전선에서 멀어지면 전기는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어떤 전기 제품이라도 전선과 연결되면 그때부터 힘 있게 일을 시작합니다. 빛도 내고, 에어컨도 돌리고, 세탁기도 돌리고, 텔레비전도 작동시킵니다.
여러분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면 여러분의 삶에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있든지, 어떤 죄나 어떤 병이 있든지 하나님이 역사하기 시작하십니다. 빌립과 안드레 둘 다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능력을 봐도 자기 생각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각에 미치지 못했고, 안드레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생각 안에 있으니까 예수님이 안드레를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능력으로 일하시기를 정말 원하십니다. 여러분,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지만 아주 단순하게 하나뿐입니다. 여러분 생각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러분 속에 놀랍게 일하십니다. 여러분과 예수님이 하나가 되면 그 예수님은 여러분이 풀 수 없는 어떤 문제도 아름답게 풀어서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 2006.10.1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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