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류의 신앙(내가 노력하는 신앙 VS 예수님께 의지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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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류의 신앙(내가 노력하는 신앙 VS 예수님께 의지하는 신앙)
2006.8.24 가나 대전도집회 설교 요약- 117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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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와 원숭이

브라더 앤드류가 쓴 ‘복음은 철의 장막을 뚫고’라는 책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군인으로 전쟁터인 인도네시아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죽이고 또 죽고 하는 전쟁터에서 마음이 굉장히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돌아오면 늘 원숭이를 친구 삼아 같이 지냈습니다. 원숭이하고 숲속에 가서 서로 끌어안고 얼굴도 비비면서 전쟁터에서 느끼는 불안을 원숭이를 통해 해소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원숭이가 힘을 잃어가고 불안해하면서 아주 고통스러워하는 겁니다. 점점 힘이 없어지고, 잘 웃지도 않고, 뛰어놀지도 않고 그냥 앉아서 벌벌 떨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원숭이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철사줄에서 풀려

그날도 전쟁터에서 돌아와 원숭이와 숲속에서 놀고 있었어요. 누워서 원숭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원숭이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원숭이 목에서 무언가가 걸렸습니다. 자세히 만져보니까 철사줄이 원숭이 목에 묶여져 있었습니다. 원숭이가 아주 어렸을 때에 누군가 그 목을 철사로 묶어놓고 풀어주질 않았던 것입니다. 철사에 묶인 상태에서 목이 굵어지니까 그렇게 고통스러워한 거예요.
앤드류는 작은 칼을 준비한 후 원숭이를 데리고 숲속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원숭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네가 지금 목이 아프지? 내가 칼로 그걸 끊어 줄 거야.” 원숭이를 두 무릎 사이에다 앉히고 목 주위의 철사 매듭을 찾은 후 그 부분을 펜치로 끊었습니다. 그때부터 원숭이가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 후 원숭이가 굉장히 기뻐하며 즐겁게 뛰어놀았다고 합니다.

죄의 줄에 묶인 우리

여러분, 우리는 그 원숭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죄의 줄’에 매여서 고통하고 있습니다. 철사줄에 목이 매여 있어 고통스러워도 원숭이 스스로는 풀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이 인공위성을 만들고, 달나라에 가는 등 갖가지를 연구하고 개발합니다. 인류의 문명이 얼마나 발달했습니까? 그러나 자기 목에 있는 죄의 사슬을 풀어낼 능력은 없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제게 있는 죄의 사슬을 풀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늘 죄에 끌려 다녔습니다. 알지 못하는 어떤 죄의 힘이 제 마음을 이끌어 죄를 짓는 쪽으로 자꾸 끌고 갔습니다. 내가 죄를 짓고 싶든지 짓고 싶지 않든지 간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자유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의 사슬을 풀어주시기 전까지 저는 늘 죄에 매인 삶을 살았습니다. ‘아!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데 오늘도 죄를 지었어. 주님, 이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다시 죄를 짓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는 매일 그런 기도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그 죄의 사슬에서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모든 죄에서 저를 구속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에 있던 모든 죄의 사슬이 다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한 번도 죄가 제 마음을 끌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죄에서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죄와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죄에 대해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저를 죄에서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

여러분, 우리는 얽매이는 것이 참 많지요? 어떤 사람은 병에 얽매여 있고, 어떤 사람은 빚에 얽매여 있습니다. 여러 가지 두려움이나 슬픔, 고통에 매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정말 다릅니다.
저는 1984년에 처음으로 승용차를 갖게 되었는데 승용차를 갖고 있을 때와 갖고 있지 않았을 때의 삶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때 저는 서울에 살고 있었는데 매주 월요일마다 의정부 교도소에 성경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승용차가 없을 때는 성경공부 시간은 오후 1시인데도 아침 일찍 출발해야만 했습니다. 아침에 시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가서는 의정부행 버스를 타고 의정부에 내립니다. 그곳에서 다시 교도소 있는 데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갑니다.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한참 걸어가야 교도소에 갈 수 있습니다. 3시간 반에서 4시간 가까이 걸려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승용차를 갖고 난 뒤에는 그냥 한 시간 전쯤 출발해도 시간에 맞게 교도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승용차가 있을 때와 없을 때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이나 한국 사람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여러분을 위해서도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서 보내주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사람과 예수님 없이 사는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님과 더불어 일을 합니다.

갑자기 닥친 어려움

저는 1969년에 경북 김천이라는 도시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한국 돈으로 20만 원을 주고 집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집 주인이 우리 돈 20만 원을 받아가지고 도박을 하다 다 날려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은행에 잡히고 많은 돈을 얻어가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어느 날 은행 지점장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어이, 박 형! 이 집에 대해서 압니까?” “아니오.” “이 집은 이제 은행 소유입니다. 은행에서 이 집을 관리하게 됐으니까 당신은 이 집에서 나가야 합니다.” 갑자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집 주인은 도망을 갔고 우리는 집을 비워주고 나와야 하는데, 다른 집을 구할 돈이 없었습니다. ‘아, 하나님!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을 닥치게 하십니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집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우리는 이제 갈 데가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구한 후

그러던 어느 날, 은행 지점장이 우리를 찾아와서 집을 비워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지점장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점장님, 집을 비워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갈 집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상세하게 보고를 드렸는데 아직 주인에게서 연락이 없습니다.”  
그분이 깜짝 놀라면서 주인이 있었냐며 그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지점장이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박 형이 믿는 예수님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시길 바랍니다. 박 형도 열심히 기도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더군요.
그때까지 그런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디서 돈을 구할 수도 없고 집을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던 집에 작은 다락이 있었는데 거기서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내 모든 문제의 책임자는 당신이십니다. 당신이 이 집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날도 아침에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도만 하지 말고 방을 얻으러 나가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방을 구하기 위해서 집을 나섰습니다.
어떤 집에 가니까 2층인데 세를 놓는다고 써 있었습니다. 일단 그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집세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20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20만 원은커녕 단돈 만 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집회하느라 바쁘게 다녔습니다.

은혜로 집을 얻고

거의 한 달쯤 지나 그날도 집을 위해 기도를 했는데 다시 주님이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을 주셨습니다. ‘얼마 전에 본 그 집이 마음에 드느냐?’ ‘예, 주님. 좋죠. 그러나 그 집은 벌써 딴 사람이 들어갔을 걸요.’
아침에 다시 그 집에 가봤습니다. 여전히 ‘세 놓습니다’라고 쓰인 종이가 그대로 붙어 있었습니다. 집 안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고 아이들만 놀고 있었습니다. “야, 너희 아버지 어디 가셨냐?” “예, 어디 나가셨어요.” “내가 오늘 저녁에 이 집을 얻으러 온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려라.”
돈을 주고 물건을 사거나 집을 얻었지, 한 번도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여 얻어 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집을 주시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그 집 주인을 찾아가서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으로 이 도시에 복음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의 시민 한 사람이 제게 손해를 끼쳤습니다. 제가 20만 원을 주고 전세를 살았는데 그 사람이 그 집을 은행에 넘기고 도망을 갔습니다. 이제 그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갈 집이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이 집을 제게 주시겠다는 믿음이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이 이 집을 주고 싶으면 주십시오.”
그분이 한참 눈을 감고 깊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시내에 있는 ○○교회의 장로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도로변에 이렇게 좋은 집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이 집을 하나님의 종이 쓰신다는데 내가 어떻게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종이니까 이 집을 쓰십시오.”
정말 주님 앞에 한없이 감사했습니다. 저에게는 아무 방법이 없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 들어오신 그날부터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항상 예수님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제 곁에 계시지 않을 때는 어떤 일을 당하든 제가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주님이 저와 함께 계시는 동안에는 어떤 일을 만나든 제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의 문이 열려

여러분, 저는 오래 전부터 대전이라는 도시에 살면서 매일 “하나님,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 대전에서 국제 엑스포가 열렸고, 우리 교회 청년들이 엑스포에 모인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케냐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구원을 받아 저희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케냐의 상공부 장관이 저희 집을 방문했는데 식사를 하면서 그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Only by Jesus' Works’라는 책을 선물했습니다. 그 후 그 장관이 저를 케냐 나이로비에 초대해서 1994년 9월 아프리카에 처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케냐에 가기 위해서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데 그곳에 우리 선교회 지부가 있어서 거기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그 지부의 권오선 목사님이 저에게 여기서 300㎞ 떨어져 있는 ‘괴팅겐’이라는 곳에 가나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가서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가나에 꼭 와 주십시오”

그래서 괴팅겐까지 갔는데 정말 가나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예배드릴 때 그냥 얌전하게 앉아서 성경책 읽고 기도하는데, 가나 사람들은 북을 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부르고 다니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고 예배를 마치자 그분들이 저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나 음식을 처음으로 먹었습니다. 그날 밤 늦게 프랑크프루트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나이로비에서 20일 동안 머물면서 말씀을 전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1995년에 다시 케냐 나이로비에 집회를 하러 가게 됐습니다. 독일 괴팅겐에서 사무엘이라는 형제가 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박목사님, 케냐에 가시면서 가나에 잠깐 가실 수 없나요?” “미안합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케냐만 다녀올 겁니다.” 다시 권오선 목사님을 통해서 사무엘 형제가 저에게 이야기했어요. “가나에 오십시오.” 제가 시간이 없어서 못 간다고 다시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형제가 굉장히 끈질겼습니다. 세 번째로 연락을 했습니다. “박목사님, 왜 가나에 오시지 않습니까? 가나에 꼭 한번 오십시오.”

가나에도 복음을

저는 다시 노트를 펴놓고 스케줄을 점검하면서 가나에 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일주일을 내서 가나에 가게 됐습니다. 사무엘 형제가 굉장히 기뻐했습니다. 제가 가나에서 머물 집을 준비하고 제가 탈 수 있는 자동차를 준비해 놓고, 그의 아내는 저를 위해서 음식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1995년 처음으로 가나 테마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아싸리’ 형제가 운전하면서 저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 덕분에 저는 가나에서 많은 분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쿠마’ 시에도 갔고, 정글에도 많이 다녔습니다. 정글에서 코코넛을 따먹기도 했는데, 우리가 정글에 갔을 때 아이들이 “백인들이 나타났다. 큰일났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막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정글을 다니면서 많은 마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배당 부지도 구하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몸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가나에 놔두고 왔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지만 ‘나는 아프리카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를 대신해서 처음으로 장만길 목사를 아프리카 가나에 보냈어요. 그리고 이준현 목사도 보냈습니다.
우리는 가나에 예배당을 짓기 위해 땅을 구했습니다. 그때 가나 정부에서는 교회를 짓기 위해 부지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 땅들이 전부 다 나가고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부 관리가 깜짝 놀라면서 “정부에서 주는 교회 부지가 다 나가고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땅이 하나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정부에서 그 땅을 1,998불에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이 가나에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 가나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믿는 방법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열심히 해서 뭘 이루려고 했습니다.

율법을 어긴 우리

여러분, 구약성경을 읽어 보면 기원전 1491년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 돌판을 받았습니다. 그 후 3500년 동안 수백 억의 사람들이 지구를 다녀갔을 거예요.
하지만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한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시 14:2~3)는 말씀처럼 율법을 온전히 지킨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선한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 선한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율법을 다 어긴 사람입니다. 율법을 어긴 우리가 앞으로 율법을 다 지킨다 해도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선을 행한다 해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모든 문제를 주님께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가 할 수 없는 모든 일을 예수님이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율법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십니다. 우리 스스로는 죄에서 건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질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 기대를 두셨고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문제를 예수님이 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면 예수님께서 그 일을 능력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무엇인가 잘하려고 애쓰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뭘 하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하려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나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길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예수님이 온전하게 다 이루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분이 일하실 수 있도록 그분께 맡기면 그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것입니다.

두 부류의 신앙

오늘은 요한복음 6장을 읽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워졌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 비스듬한 언덕이 있는데 그 언덕에는 잔디밭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잔디밭에 앉아 있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왔습니다. 그 숫자가 남자만 5,000명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남자가 5,000명이니까 여자까지 합하면 아마도 만 명이 넘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에도 빌립 같은 사람이 있고 안드레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잘하지 못하면서 자기가 하려는 것은 빌립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안드레의 신앙은, 형편은 불가능하지만 예수님이 해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두 가지 부류의 신앙이 있습니다. 내가 죄를 씻으려고 노력하고 내가 열심히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추하고 더럽지만 예수님이 하시면 능히 깨끗케 하실 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미 씻어진 우리의 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질 때에 예수님이 내 죄를 씻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 씻어 놓으신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놓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죄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 마음에서 ‘나는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내 죄를 사했다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눈처럼 씻으시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면서 참 오랫동안 ‘난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보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 죄가 다 씻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여러분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 2006.8.24 가나 대전도집회 설교 요약-
※ 박옥수 목사는  2006.8.21~9.10 아프리카 전도여행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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