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방법과 생각이 무익함을 깨달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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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방법과 생각이 무익함을 깨달아야
2006.7.16  주일 낮 설교 요약- 111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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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너무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계속해서 우리의 믿음을 일으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다윗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이 어느 날 골리앗을 만났습니다. 골리앗은 여섯 규빗 한 뼘이나 되는 큰 장수인데도 전혀 그를 무서워하지 않고 그에게 나아갔습니다. 왕이 “너는 안 돼. 너는 소년이잖아.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용사였어” 하며 만류하지만 다윗은 말합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 17:34~36)
다윗이 하는 믿음의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어떻게 다윗이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우리는 골리앗 장군을 보면 겁이 나 도망가기 바빴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으로 이끄사

아브라함도 정말 믿음이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으로 이끄시는 과정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브라함이 나보다 더 믿음이 없네’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하나님이 그런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이끄시는 것을 보면서 ‘나도 믿음이 없지만 하나님이 나를 믿음으로 이끄시면 믿음의 사람이 되겠구나’라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아브라함의 생애와 제 생애를 비교해 보면, 제가 아브라함보다 훨씬 더 의롭게 살았을지도 몰라요. 아브라함은 아들 못 낳는다고 여종을 취해서 아들을 낳았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누구보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고 충성했고 믿음이 있어서 믿음의 사람이 된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이나 저와 똑같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육신적인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믿음으로 이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노아, 다윗, 야곱, 베드로, 바울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 중에 처음부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믿음으로 이끄시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몽골 학생의 변화

이번 월드캠프에 몽골 사람들이 처음 참가했습니다. 제가 지난 봄에 몽골국립대학교와 사립대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국립대학교 교수님 여덟 분이 학생들과 같이 참가했는데, 그분들이 정해진 일정대로 따르면서 겸비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는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학생들 중에는 국회의원이나 장관 아들도 있었는데, 이 학생들은 전혀 다스려지지 않아 감당이 안 되는 겁니다. 그 중 한 학생이 경주에 머무는 동안 밤에 숙소에서 도망을 쳐서 술집에서 술을 잔뜩 마셨어요. 그리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는데 술이 취해서 자기 방을 못 찾고 남의 방에 들어가 자다가 새벽에 다 토해버린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자기 마음을 꺾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르니까 잘난 줄 압니다. 그 학생에게 잘못되었다고 야단을 치니까 오히려 교사한테 대들었습니다. 자기 아버지를 배경삼아 어디 가든지 큰소리치고 마음을 한 번도 꺾지 않았습니다.
캠프에 참가한 2,500여 명이 한사람처럼 규율을 다 따르는데 그 학생 하나만 그렇게 행동하니까 금방 드러났습니다. 그 학생이 자기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들이 그 학생에게 “네가 잘못했다”고 하고 그 부모한테도 그렇게 얘기하니까 결국 학생의 마음이 꺾였습니다. 그런 후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받는 신령한 복

IYF 월드캠프에 와서 영원히 죄를 씻고 거듭나는 학생들이 그렇게 많습니다. 이번에도 수 백 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시작할 때부터 부모나 교사도 감당할 수 없는 학생들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믿음이 들어가면서 그 마음이 변하고 새로워졌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월드캠프를 통해서 학생들이 구원받는 것이 너무 좋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최대한 좋은 것으로 먹이고, 입히고, 대접합니다. 저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내가 구원받은 그날, 만약 구원을 받지 않고 내 몸 덩어리만한 다이아몬드를 받았다면 이만큼 행복했을까? 내가 구원을 받지 않고, 장관이나 대통령이 되었다면 이만큼 행복했을까? 내가 구원을 받지 않고 온 세상을 두루 다녔다면 이만큼 행복했을까?’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죄 사함만이 아닙니다. 죄 사함 받은 뒤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데, 그 복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으로 이끄시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끄시면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지금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이 좋아 보이지만, 나중에 믿음의 세계에 눈을 뜨면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방법과 비교가 안 되기 때문에 그 앞에 감히 내 방법을 내세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형을 만나기 두려워서

창세기 32장에는 야곱이 어떻게 믿음의 사람이 되었는지를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장자 명분을 빼앗았기 때문에 에서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갔다가 20년 만에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네 본토 친척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해서 가나안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고향에 가까이 오니까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형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다고 형이 나를 죽이려고 했는데, 지금도 나를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형의 마음이 누그러졌을까?’
그래서 야곱은 그냥 고향으로 가지 않고 형 에서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종을 먼저 보냈습니다. “내가 밧단아람 라반의 집에 있다가 이제 돌아옵니다. 그래서 먼저 인사하러 보냅니다” 하니까 형이 아무 소리 안 하고 자기 부하 400명과 함께 칼과 창을 들고 말을 타고 오는 거예요.
사자가 급히 와서 야곱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당신 형님한테 이야기를 하니까 형님이 400명을 거느리고 당신을 맞으려고 옵니다.” 야곱은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 나를 맞으려고 400명이나 거느리고 오나? 이것은 틀림없이 형님의 축복을 빼앗은 나를 죽이려는 것이구나! 이제 우린 죽었다.’ 그 마음이 드니까 야곱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창 32:9~11)

믿음이 없는 야곱

야곱이 기도를 드리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고 자기를 지켜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으면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는 했지만 하나님이 지켜주시겠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어야 하고, 둘째는 하나님을 바라면 하나님이 너그럽고 풍성하게 도우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은 400명이나 되는 부하를 데리고 형 에서가 자기에게 온다고 해도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니까 하나님만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는 했지만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을 것 같으니까 인간적인 방법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지? 떼를 두 떼로 나누어서 형님이 한 떼를 치면 다른 한 떼는 도망을 가야지. 그리고 그 사이 시간을 벌어야지. 먼저 한 떼를 앞서 보내어 만약 치면 도망가기 좋게 해두고, 그 다음에 형에게 소, 양, 나귀 같은 짐승 떼를 예물로 보내서 형의 감정을 풀면 형님이 나를 받아 주지 않을까?’

인간적인 방법을 썼지만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보다 자신의 방법이 좋은 줄 알고 자신의 방법을 선택하지만,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돌이킵니다.
야곱은 얍복 나루를 건너야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강 건너편에 있기 때문에 강을 건너면 형을 피하기 어려워 강을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물을 먼저 보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준비해서 그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또 형이 한편을 치면 다른 한편은 피해서 도망가려고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인간적인 방법을 써도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 예물은 그의 앞서 행하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경야하다가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쌔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창 32:21~24)

하나님 외엔 길이 없어

그 후, 밤에 일어나 어쩔 수 없이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너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도 건너야 하는데 건너기가 너무 두려웠습니다. ‘강을 건너야 하는데 형이 400명을 이끌고 나를 치러 오면 피할 수 없어서 내가 죽겠구나!’
강을 건너지 못하고 혼자 두려움 속에 있는 그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4~26)
야곱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해 봤지만 결국 그 방법이 온전하게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밖에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면서 마음에서 하나님을 놓을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아니면 자기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인간적인 방법은 실패하고

이런 위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도 결국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면 잘 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에 속으며 삽니다.
그러나 여러분, 대충 생각하지 말고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는 일은 처음에는 좋을 것 같지만 결국 무익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법은 내게 참된 평안과 쉼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저도 구원을 받고 난 뒤에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잘 될까? 어떻게 하면 전도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며 인간적인 방법을 많이 썼습니다.
세월이 지나간 뒤, 시간이 있을 때마다 과거를 돌아 봤는데, 인간적인 방법으로 했던 일이 그 당시에 볼 때는 잘 될 것 같았지만 지나고 보니까 다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러나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일들은 그 당시에 볼 때는 막연해 보이고 안 될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하나님을 바라봤던 일 중에 망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내 육체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육체의 소욕과 성령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그냥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갈 5:17)라고 말합니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다가, 제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나 믿음 속에 깊이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육체가 그것을 강하게 막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날, 마음의 선이 그어졌습니다. ‘내가 육신을 기쁘게 해서는 안 되겠구나. 육신이 나를 망케 하려고 이끄는구나.’
그 다음부터는 육체의 소욕과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잠자고 싶고, 먹고 싶고, 즐기고 싶은 욕망과 싸워 이길 수 없었습니다. 몇 번 싸우다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서를 읽는데 사도 바울의 간증이 나오더군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사도 바울도 나처럼 육신의 소욕과 싸우느라고 곤고해진 적이 있었구나! 자기가 하다가 안 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때 예수님을 바라보았구나.’ 이제 로마서 7장에서 8장으로 바뀌면서는 성령의 역사가 충만하게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방법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처음에 육체와 더불어 그 욕구를 따라 살려고 하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구원을 받을 수 없고, 구원을 받아도 육체의 소욕 속에 있으면 성령의 충만한 데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내가 육체를 기쁘게 하면서 주님을 기쁘게 할 수는 없구나’를 깨달으며 육체와 싸움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못 이기겠구나’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때 하나님이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바라봤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힘이 와서 ‘내 마음’에 일어나는 음란과 정욕을 이기게 하고 거짓이나 악을 이기게 합니다. 그리고 나를 밝고 거룩한 삶으로 이끄시면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전혀 길이 없을 때

야곱이 자기를 위하여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다 써봤어요. 그러나 결론적으로 예물이 형님의 마음을 바꾸겠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또 한 떼를 치면 다른 한 떼가 도망간다고 하지만 그 자체도 한 떼는 죽어야 하고 나머지 한 떼도 도망을 가면 얼마나 가겠습니까? 막상 부딪치려고 보니까 자기 방법이 자기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거예요. 전혀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셨어요.
그전 같으면 하나님께 대충 기도하다가 꾸벅꾸벅 졸고 말았겠지만, 이제는 야곱에게 하나님밖에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천사와 씨름을 하는데 날이 훤하게 밝아왔습니다. 천사가 “날이 새니 가야겠다. 놔라!”고 했지만 야곱은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형이 400명을 데리고 오는데 내가 인간적인 방법을 썼지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나를 돕지 아니하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놓을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놓지를 않는 거예요. “놔라!” “못 놓습니다.” “놔라!” “못 놓습니다. 당신이 나를 두고 가고 싶거든 축복해 주세요! 나를 살려주세요!”

‘야곱’에서‘이스라엘’로

여러분, 그렇습니다. 사단은 어려움 앞에서 우리를 속여서 ‘괜찮겠지.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육신의 생각을 따라가도록 하지만 정확하게 계산해보면, 여러분의 방법도 야곱의 방법과 같아서 그 방법이 무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기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하나님밖에 길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찾고 붙들게 되는 거지요.
천사가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뭐냐?” “야곱입니다.” 야곱이라는 말은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 구부러졌다. 비뚤어졌다. 어그러졌다’는 뜻인데 천사가 “이제부터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비록 환도뼈가 위골되어서 절게 되었지만 하나님께 약속을 받고 확신을 가지고 얍복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형이 아니라 끌어안고 입을 맞춰주는 귀한 형을 만나서 두려움이 다 사라지고 삶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살아계셔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눈이 아닌, 우리 눈에 보이는 인간적이고 온전치 않은 것을 믿고 살아왔기 때문에 너무나 어리석어요. 성경에서 하나님이 야곱을 믿음의 사람으로 이끌어 ‘이스라엘’이 되는 과정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셔서 우리 속에 능력으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일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하나님보다 내 방법을 더 믿고 야곱처럼 우선 내 눈과 내 생각을 따라 행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그것이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잡으시게 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생명이나 재산,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귀한 분이 될 때, 여러분 속에 능력으로 일하실 것입니다.

주님만을 의지해서

야곱에게 찾아온 그 두려움을 야곱은 자기 방법으로는 쫓을 수가 없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왔을 때 그 두려움을 내쫓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앞에 닥치는 죄의 유혹과 질병과 문제를 우리의 힘으로는 쫓을 수 없지만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을 때,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쫓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평생 죄와 두려움에 종노릇 하고 문제의 종이 되어야 하는데 야곱은 거기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나를 이스라엘이라고 하셨다. 이제는 형과 만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겠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고 강을 건넜고 믿음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인간의 방법이 무익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방법이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주님만이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여러분, 주님만을 의지해서 사랑하는 주님이 여러분의 삶 속에 힘있게 역사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 2006.7.16  주일 낮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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