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능력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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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능력이 있어
2006.7.2  주일 낮 설교 요약- 10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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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전에서 사역을 할 때였습니다. 우리 교회 한 장로님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깡패였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이면서도 매일 친구들과 다니면서 싸움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딸이 갑자기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어요. “아빠, 나 지금 큰일 났어요. 빨리 이리로 오세요.” 너무 다급하게 이야기해서 가보니까 딸이 여자 깡패들 틈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막 뛰어 들어가니까 아이들이 도망을 가서 그 딸이 간신히 구조되어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이 공부는 안 하고, 매일 깡패 짓을 하고 싸움을 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그래서 딸을 불러놓고 권고도 하고 책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무라도 딸이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아버지를 따라 교회를 한두 번 나오다가 IYF 월드캠프에 참석해서 구원을 받았어요. 저도 그 학생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들어도 ‘정말 저 아이가 변하려나?’ 했는데, 작년에 Goodnews Corp로 아프리카에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월드캠프에서는 반장이 되어 자기 반 학생들을 염려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변했더라고요. 그 여학생 얼굴에 하나님의 평안과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자식을 믿었지만

제가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부모들을 만나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목사님, 우리 아이는 어려서부터 착했어요”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저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어릴 때는 죄를 지을 능력이 없으니까 죄를 안 짓는 것뿐이지 착한 건 아닙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기 아이가 진짜 잘못된 것을 발견하면 부모는 너무 속상해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니까 “그렇게 하지 마!”라는 이야기만 계속하게 됩니다. 그 말을 듣고 아이들이 ‘이제는 나쁜 짓 하지 말아야지, 술 그만 마셔야지, 마약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내가 원해서 열이 나는 게 아닙니다. 열이 나는 게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열이 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짓는 것도 내가 죄를 짓고 싶다고 해서 죄를 짓고, 짓기 싫다고 해서 짓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우리 마음에 들어와 우리를 끌고 가서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착각

구약의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내 계명을 잘 지켜 행하면 제사장 나라가 되며 복을 받으리라. 그러나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착각을 했습니다. ‘그래, 내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 복을 받을 수 있겠네!’
그들이 자기를 정확히 알았더라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가 없습니다. 저는 거짓말도 하고 남을 미워하기도 하고 음란한 마음도 일어납니다. 언제 죄를 지을는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킬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안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십계명과 부속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십계명 두 돌 판을 받아 시내산을 내려왔을 때, 그들은 이미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고 금송아지를 만드는 악을 저질렀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 아래서는 저주를 면할 수  없습니다.

율법과 행위에 매여

에베소서 4장에 있는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 4:25) 여기에서 거짓을 버리라는 말은 얼핏 구약의 율법과 같아 보입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이 말씀도 도적질하지 말라는 율법과 똑같지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는 구절도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다 지키면 복을 받지만,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율법을 다 지키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한 가지도 못 지켰습니다.
그러면 에베소서의 이 구절들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합니까? 율법에 “하지 말라”고 하면 보통 ‘도적질하지 말아야지’, ‘간음하지 말아야지’, ‘살인하지 말아야지’, ‘거짓말하지 말아야지’ 하며 율법을 범하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못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율법이 필요 없다는 말입니까? 이 두 갈림길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율법과 은혜의 법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나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 8:4~5)
성경에는 두 가지의 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와 사망의 법, 즉 율법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재판하면 이 여자는 멸망을 받아야 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니까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은혜의 성령의 법으로 재판하면 이 여자는 무죄가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요 8:10~11)

천국 가는 두 가지 길

하나님이 우리 죄를 다스릴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율법으로 다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혜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다스리면 여러분이 지은 죄가 하나라도 있으면 멸망, 즉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다스리면 저주를 받아 지옥에 가야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니까 지옥에 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지옥 보내서는 안 되는데, 어떻게 구원하지?” 하실 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하나님, 제가 가서 인간들이 저지른 모든 죄의 형벌을 대신 받겠사오니 그 죄를 인간에게 돌리지 마시고 제게 돌려주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 모든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참 기뻐하셨습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고난을 겪었지만 그럼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의 죄가 해결이 됐으니까 안심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두 가지로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는 율법을 지키고 행해서 천국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죄를 지어 지옥에 가야 마땅하지만 은혜를 입어서 천국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율법을 따라서 천국 가려고 하면 갈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 쪽으로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행위를 강조하는 설교

예전에 저는 정말 훌륭하고 유명한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유명한 목사님들은 어떻게 설교를 하는지 배우려고 그분들의 설교 테이프를 많이 들었어요. 요즘도 다른 교회 목사님들은 어떻게 설교하나 보려고 기독교 TV에서 설교를 가끔씩 듣곤 합니다.
그런데 설교의 대부분이 “하나님께 충성합시다. 주님의 계명을 지킵시다. 사랑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하는 행위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기가 사랑하려고, 인내하려고, 충성하려고, 기도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신앙은 애를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수록 점점 더 죄 속에 빠져들고 위선자가 되어버립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주님 앞에 IYF와 교회를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가 목사지만 기도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집회에 갔다 오거나 외국에 갔다 오면 생활 리듬이나 시차가 바뀌어서 기도가 안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제가 기도를 하려고 애를 쓰는 게 아니라 ‘하나님, 요즘 제 마음이 떠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목사니까 성경도 매일 읽어야 합니다. 목사가 성경을 읽지 않고 어떻게 신앙을 하고 설교를 합니까? 그러나 저는 성경을 잘 읽지 못합니다. 성경을 읽으려고 하면 다른 생각이 나고 전화가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당신이 제 손목을 잡고 말씀 속으로 저를 좀 이끌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무너지는 인간의 결심

여러분, 제가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리는 것과 주님이 하게 하시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단에게 속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며 자기가 각오하고 결심하면 주를 부인하지 않을 줄로 알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그날, 밤도 새기 전에 세 번이나 주를 부인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결심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결심, 노력, 각오는 너무 쉽게 무너집니다. 스프링은 밟아 누르면 누를수록 튀어 오르는 것처럼 각오하고 노력할수록 마귀가 더 죄를 짓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마약에서 벗어나는 것도 내 노력과 수고와 결심으로 하는 것과 예수님이 내게 오셔서 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자기가 죄와 맞서 싸우면 죄에 져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죄를 지으면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줄 알면서도, 어리석게도 자기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결심하면서 한평생이 지나가버리는 겁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법을 우리가 잘 지킬 수 있는지 한번 해보라는 거예요. 율법은 기원전 1491년에 모세가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1500년 전부터 율법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율법을 지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악을 행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 율법을 어겼습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여기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것은, 이 말씀을 듣고 ‘아, 예수님께서 돌에 맞아 죽을 나를 구해주셨으니까 이제 간음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이제 남자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또 간음하게 돼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어느 날, 야고보서를 읽어 봤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약 2:15~16)
자, 예를 들어 제가 대전에 가야 된다고 합시다. 여비도 없고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배는 고파지고 날씨는 춥습니다. 한 자매님이 오더니 “목사님, 지금 대전 가시죠? 안녕히 가세요”라고 하면 제가 안녕히 갈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여비가 없기 때문에 그 말은 죽은 말입니다.
“아이고, 목사님. 겨울인데 어떻게 여름 옷을 입고 계십니까? 백화점에 가서 옷 한 벌 골라 입고 가세요” 하며 말만 하고 그냥 가버리면 저는 옷을 입지 못합니다. 그러나 “목사님, 옷 한 벌 사 입고 따뜻하게 지내세요. 돈 여기 있습니다” 하면 저는 옷을 사 입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말은 살아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히 4:12)라고 말합니다.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말씀 속에서 ‘배부르게 하라’고 했을 때 나를 배부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이 같이 따라 오고, ‘평안히 가라’고 했을 때 평안히 갈 수 있는 힘이 같이 가고, ‘따뜻하게 하라’고 했을 때 따뜻하게 할 수 있는 힘이 같이 있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들어있는 말씀

우리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8~11)
여러분,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절대로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이루는 능력이 함께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면 빛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그 말씀 안에 들어있어서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누워있는데 여러분이 가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해서 걸어갈 것 같으면 병원 문 다 닫아야지요. 그러나 우리의 말과 예수님의 말씀은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을 때, 그 말씀 속에는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있는 힘이 함께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치 않도록 하셨구나”

구약시대의 율법에 “살인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만 그 말에는 살인하지 않게 할 만한 힘이 들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명의 성령의 법에는 그 말씀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다시 죄를 범하지 말아야지’ 하고 각오해서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이 그 여자를 끌고 다니는 음란한 마음을 이미 꺾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즉, 이제는 간음하지 않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사람은 ‘주님이 나를 보고 다시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는데, 주의 말씀은 살아있으니까 그 말씀 속에 내가 죄를 범치 않도록 모든 힘을 이미 주셨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도둑질하지 마. 술 마시지 마. 나쁜 짓 하지 마”라고 자식들을 교육합니다. 술 마시는 것, 도둑질하는 것이 나쁜 줄 몰라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알지만 그 유혹을 이겨낼 힘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낼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을 때 병자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이 지금까지 다 말라버린 그 다리에 힘을 주시고 “걸어 봐. 걷게 되어 있어”라고 하신 것입니다. 전에는 걸으려 해도 안 됐는데 그 말씀이 들어온 뒤에는 걸어 보니까 힘이 생겨 다시금 걷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게 하는 성령

저는 참 많은 대학생들이 방탕하게 살다가 변해서 눈물을 흘리며 간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에 선교학교에 온 학생 중에 예전에 너무 나쁜 짓을 많이 하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과 싸우는 등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어머니를 매일 울리던 학생이 있습니다.
어느 날 이 학생이 구원을 받고 아프리카에 단기선교를 갔다 와서는 너무나 변하니까 그 어머니가 감격해서 또 울었답니다. 이 학생이 각오를 해서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 죄를 이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30)는 말씀은, 죄를 짓고자 하는 유혹을 성령이 이기게 해주시기 때문에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가려고 하고, 자기 노력에 기대를 가지면 열 번을 시도해도 열 번 다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나는 죄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거룩하시니까 당신이 나를 죄에서 건져 주십시오. 주님께 다 맡깁니다’ 하면 그때부터 예수님이 오셔서 삶을 바꾸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스스로의 힘으로 성실하게 살았다면, 이젠 그 방법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분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없어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주님이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셨다면, 그분이 “내가 도둑질하지 않도록 네게 힘을 줬어. 네 힘으로는 안 되지만 나를 믿고 해 봐. 이제는 도둑질 안 하게 될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또 “네가 지금까지 간음했지? 그러나 내가 너를 그 음란한 마음에서 해방시켜줬어. 전에는 네가 음란한 마음에 매였지만 내가 너를 거기서 벗어나게 했기 때문에 이제는 음란한 마음이 너를 끌고 갈 수가 없을 거야. 이제 거기서 벗어나 봐”라고 하십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죄를 이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온전한 것이지, 내가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은 얼마 못 가서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인생 전부를 주님께 맡기면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는 추한 인간입니다. 나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제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하거나 나쁜 습성을 버리려고 애쓰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럴 수밖에 없는 인간인데 이제 주님에게 맡기오니, 사랑하는 주님이 나를 거기서 건져내 주시옵소서. 주님이 나를 온전케 하실 줄 믿습니다. 밝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 인생 전부가 주님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여러분 속에 주님의 힘이 역사해서 여러분 속에 있는 미운 마음, 방탕한 마음, 음란한 마음 등 죄악 된 마음을 이기고 밝게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거룩하고 의로운 분은 예수님 한 분입니다. 그분이 아니시고는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분이 나를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것을 믿는 믿음은 죄를 이기지만 내가 애쓰는 신앙은 얼마 가지 못해 곧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 2006.7.2  주일 낮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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