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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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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말씀을 믿고 사는 이 시대의 아브라함이 되어[창세기 18장 1절 ~ 15절] - 2019. 11. 3.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86호

아브라함을 세우시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읽은 창세기 18장 말씀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린 하나의 그림입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사단에 속해 죄에 이끌리며 어둡고 죄악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을 구원하셔서 밝은 삶을 살게 하고, 하늘나라에 가게 하는 일을 끊임없이 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실 때 그냥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을 세우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셨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는구나.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자”라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2~3)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할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게 자손이 많겠구나. 복을 받겠구나.’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바로 주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마흔이 되고 쉰살이 되고 일흔이 되어도 자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사라는 늙어서 경수가 끊어졌고 아브라함도 늙어서 도저히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이 좋긴 하지만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왜 하나님은 젊을 때 자식을 주지 않으시고 다 늙어서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이때 자식을 주신다고 하시는 거지?’라며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지적장애 아이를 보며

하나님은 인간을 만날 때마다 계획을 가지고 계신데 우리가 그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마음이 합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사단이 우리를 수천 년 동안 지배하면서 우리 생각을 인간의 한계 속에 빠지게 해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영역까지 도달하지 못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우리 선교회의 한 목사님 아들이 지적장애가 있어 12세인데도 이불에다 대변을 눕니다. 그런 아들 때문에 부모의 마음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이 목사님은 밖에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며 기뻤지만 집에 들어와 아들만 보면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찼습니다. 어느 날 제가 어떤 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떼를 썼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동안 참고 있다가 그분이 가시고 난 후에 아이를 혼내면서 제가 의자를 딱 소리가 나도록 치니까 아이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 부모님은 이 아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반응을 하네. 그럼 이 아이도 교육시키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그 목사님에게 “이 아이를 교육하면 고쳐질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불에 용변을 보는 이유

제가 왜 이 아이는 이불에다 대변을 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모님은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아들이 나이가 들어도 저러면 어쩌지? 우리가 다 죽고나면 우리 아들 혼자서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아이는 밤에 잠을 자다 대변이 마려울 때 화장실 가는 것이 귀찮으니까 아무 생각없이 이불에다가 대변을 쌌습니다. 어차피 다음날이면 부모님이 다 치워주니 그냥 편한대로 행동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말을 듣고 그 목사님이 아들을 교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불에 대변을 볼 때마다 아이를 혼냈습니다. 사모님이 그 모습을 보고 “여보, 저 아이가 뭘 알아듣는다고 그렇게 혼을 내요. 이제 그만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도 아이를 보면 불쌍하고 애처로워 갈등이 되었지만 마음을 정하고 아이를 혼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새벽기도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아이가 방에 없었습니다. 아이를 찾으니 아이가 화장실 변기에 대변을 보고서는 그것을 쳐다보며 좋아서 웃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목사님이 아들을 끌어안고 막 우셨다고 합니다. 아이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잠을 자다가 대변이 마려웠는데 그냥 이불에다 눌까말까 고민 하다가 화장실 가는 게 혼나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아이가 여러면에서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올바른 삶으로 이끌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좀 더 밝고 올바른 삶으로 이끌어주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셨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다른 인간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 마음을 믿음으로 옮기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 이야기처럼 아빠가 추구하는 삶과 아이가 추구하는 삶은 다릅니다. 아이는 당장 편하고 부담없는 길을 가려고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살면 아이 인생이 불행해지기 때문에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가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인간의 차원과는 다른 하나님 차원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가십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헌금을 많이 하고, 전도를 많이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차원에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역을 하며 어려웠을 때

여러분이 하나님의 차원에 도달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제가 사역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아들을 낳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대구 파동의 작은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돈도 다 떨어지고 양식도 없었습니다. 그날 멀리서 한 분이 복음을 들으러 오셔서 저녁 내내 복음을 전했습니다. 단칸방이었기 때문에 제가 복음을 전하는 동안 배가 불룩한 제 아내는 방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밤 열시 가까이 되었을 때 그분은 죄 사함을 받고 무척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배웅하고 들어오는데 아내가 진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는 동안 진통이 시작되었는데 배가 아프다고 말하면 상담이 중단될 것 같아서 안간힘을 다해서 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점심과 저녁까지 굶었고 돈도 한 푼 없어 병원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너무 어려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교회 재정 맡은 형제님께 전화할까?’ 그래도 명색이 목사인데 제가 말하면 성도들이 입원비 정도는 준비해 줄 것이 분명했지만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사람에게 제 필요를 구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준비하시고

그날 제 마음에서 싸움이 되었습니다. ‘이러다 아기가 나오면 어떻게 하지? 아니야 주님을 의지해야 돼 인간을 바라봐서는 안 돼.’ 그러다 아침이 되었는데 며칠 전 구원받은 자매님이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어서 그 이른 아침에 우리 집을 찾아왔을텐데 아내가 진통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모님, 저는 부산 일신병원 산부인과에서 근무했습니다. 제가 조산원 자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러더니 막 뛰어나가 가방을 들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이렇게 앞서 준비해 두셨는데 내가 하나님을 못 믿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며 생각합니다. 자매님이 부엌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시더니 또 뛰어나가 소고기, 쌀, 미역 등을 사와 우리 모두가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 처음에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다른 방법을 쓴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

하나님과 우리가 자유롭고 편안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백세가 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인간적으로 가능한 것 말고 불가능한 것도 믿을 때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보면서 “봐라. 저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와 다른 점은 죄 사함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믿음을 배우려고만 하면 며칠만 다녀도 죄 사함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가 10, 20년을 다녀도 죄 사함에 대해 정확하게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19세가 될 때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녔지만 어떻게 죄를 사함 받는지 몰랐습니다. 회개하라고 해서 열심히 회개를 했지만 여전히 죄가 남아있었습니다. 한번은 부흥회 강사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회개를 했는데도 죄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럼 회개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회개의 열매는 어떻게 맺습니까?” “잘못한 것은 다 사과하고 용서를 비세요.”
저녁에 친구를 불러냈습니다. 어두컴컴한 밤에 제가 진지한 표정으로 불러내니 그 친구가 바짝 긴장했습니다. 제가 밝은 데서 말하는 게 창피해서 그 친구를 데리고 큰 짚단이 쌓여있는 곳으로 가서 말했습니다. “어제 내가 너한테 한 말, 그거 거짓말인데 미안하다. 용서를 빌게.” 그러자 친구가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가버렸습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하던지 ‘회개의 열매를 맺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를 사하는 방법

제가 해외에 나가 2~3천여 명이 모인 목회자모임(CLF)에서 설교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묻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십니까?” 그 사람들은 죄를 사함 받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고 합니다. 제가 아주 쉽게 답했습니다. “알면 쉽고 모르면 어렵다.” 여러분, 죄 사함에 대해 모르고 자기도 죄에서 못 벗어나는 목회자가 어떻게 성도들에게 죄 사함에 대해 가르칠 수 있습니까? 한국의 많은 기독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죽으셨지만, 그것이 어떻게 우리 마음의 죄를 사하는지 그 과정을 모릅니다. 그것을 모르니까 산에 기도하러 가서 불 받았다, 성령을 받았다, 방언 받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은 그런 것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천국은 행위로 갈 수 없어

한번은 제가 해외에 갔을 때 현지의 한 목사님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시기에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 때문에 감옥에 7년 동안 갇혀있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자기는 구원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구원은 행위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목사님, 감옥에 간 적이 있습니까?” “교도소에 가서 성경을 가르쳐 본 적은 있어도 감옥에 간 적은 없습니다.” “목사님, 감옥에 갈 때 저만 고생한 줄 아십니까? 제 아내, 아이들이 길가에서 거지 노릇하면서 누가 버린 사과껍질을 주워 먹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늘나라에 못 간단 말입니까?”
그분의 물음에 제가 대답했습니다. “성경에 하늘나라는 행위로 못 간다고 되어있습니다. 그건 당신의 행위입니다.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 게 아니고 구원의 말씀을 당신 마음에서 믿어야 합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 죄를 씻으신 사실이 믿어져 당신의 죄가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씻어졌다는 것을 믿을 때 그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한번은 대구매일신문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며 저를 찾아와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계신 기쁜소식선교회와 다른 교회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기자분은 교회를 다니십니까?”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지는 아십니까?”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간단히 답했습니다. 
“우리 기쁜소식선교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우리 죄를 다 사했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여전히 죄가 있다고 말합니다.” 기자가 믿기지 않는 듯 “정말 다른 교회에서는 죄인이라고 합니까? 그럼 그 사람들은 십자가를 세워놓고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기자가 많은 지면을 할애해 저에 대한 기사를 잘 써 주었습니다. 그 이튿날 많은 일반 교회 목사님들이 항의 전화를 했는데, 그 기자님이 “기사를 쓰는 것은 기자의 고유의 권한이고 박옥수 목사님에게 질문하고 실제로 보고 느낀대로 인터뷰 내용을 실었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까”라고 오히려 따졌다고 합니다.

죄 없다 찬송을 부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헌금을 많이 한다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의 하신 일, 즉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우리 죄를 사하신 그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우리 대신 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 죄가 사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의롭다면 의로운 게 맞습니다. 우리는 찬송을 부를 때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하시네’(찬송가 187장/새 255장)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찬송가 189장/새 257장)라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여전히 죄인이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피를 흘리시면서 우리 죄를 대충 씻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다 세지 못하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죄까지 십자가에 못 박아 끝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하고 하나님은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 생각의 차원으로 “하나님이 옳습니까? 그릅니까?”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니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한계에서 생각하니까 거듭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시는데 니고데모는 인간의 방법을 이야기하니까 안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말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고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이 병이 났을 때 저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병이 낫는다고 신앙 교제를 해줍니다. 저는 말씀을 그대로 믿어서 죽을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정말 많이 봤습니다. 저도 죽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병이 낫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살아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신앙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살아 일하고 싶어하십니다. 우리와 마음을 나누면서 도우시고 이끌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할 수 없는 것도 우리를 통해 행하시길 원하십니다.

이 시대의 아브라함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을 수 없었는데 하나님이 아들을 주겠다고 했을 때 그 말씀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고 하나님이 그에게 역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도 이같이 일하시길 원하십니다. 38년된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하니까 걸어갔고, 죽은 나사로에게 일어나라 하니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내가 너희에게도 이와 같이 하겠다. 나를 좀 믿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 생각을 접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아브라함이 됩니다. “아, 저 사람이 하는 모든 게 잘 돼. 하나님께서 축복해. 구원을 받아서 그래. 나도 죄 사함을 받아야겠다.” 이처럼 우리가 복을 받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 들어와 복을 받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죄 사하는 일을 하시려고 우리를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믿음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 2019. 11. 3.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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