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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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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속에 사단이 넣어준 생각을 다 버리고- 2019. 10. 27.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85호

육군통신훈련소 시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군 시절에 육군통신훈련소에서 16주 동안 통신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전파에 대해 배웠습니다. 전파를 만드는 방법을 간단히 말하자면, 아주 얇은 크리스탈 조각의 양 끝에 철심을 연결해서 전류를 부가하면 전파가 만들어집니다. 그 기계를 ‘크리스탈 발진기’라고 합니다. 전파는 빛과 유사한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전파는 빛의 속도와 마찬가지로 아주 빠릅니다. 소리가 1초에 340m를 간다면 전파는 1초에 30만㎞를 가니까, 1초에 지구 일곱 바퀴 반을 도는 빛의 속도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만든 전파(반송파)에 소리를 실어 보냅니다. 그리고 레시버에서 전파를 받아 그 전파를 깨트리면 그 안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무전기가 되고, 방송국에서 방송을 송출하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요즘엔 좀 더 발달해서 전파에 영상을 싣는데, 방송국에서 영화나 화상을 전파에 실어 보내면 그 영상이 전파를 타고 집집마다 보내져 우리가 방송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파는 무선 통신, 방송, 레이더 및 항법 시스템 등에서 여러 용도로 쓰입니다. 

우리 마음은 전파와 같아

신앙이란 마음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은 마치 전파와 같아서 마음속에 미움, 사랑, 행복, 슬픔 등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속에 ‘무엇을 담느냐. 어떻게 담느냐’라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 사람의 마음이 곱다. 저 사람의 마음이 거칠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자체가 악하고 선한 게 아니라 우리 마음에 악한 생각을 담으면 악이 나오고, 우리 마음에 미움을 담으면 미움이 나오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죄

여러분, 이제 신앙을 하는 것에 대해 살펴봅시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마음속에는 ‘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안 돼. 그러면 죽는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 뱀(사단)이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1~5)
아담은 뱀의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이 내게 거짓말했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는 게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어서 못 먹게 했구나. 그럼 나도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어야지’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 마음의 구조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는 뱀의 음성, 즉 두 가지 음성을 한꺼번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여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뱀의 음성 즉 사단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는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처럼 되지 못하게 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아담이 뱀의 말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있던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첫 회개인데, 내가 가졌던 마음을 버리고 다른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회개와 믿음입니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을 버리고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아담의 마음속에는 사단이 주는 거짓과 죄악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때’의 의미

오늘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이 처음 표적을 행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에 가셨는데 그곳에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전전긍긍하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인 아담의 후손입니다. 우리 마음은 원래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 되어 예수님이 우리에게 일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때가 언제인가요? 사실 우리도 아담의 후손이라서 아담이 가졌던 마음, 죄악, 미움, 불신, 음란, 거짓 등이 우리 마음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우리를 이끄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뱀의 말을 받아들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뱀을 믿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와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이 일하시기 위해서는 사단이 주는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형성되었을 때가 바로 예수님의 때입니다. 

댕기피버란 병에 걸려

한번은 필리핀에서 사역하시는 남 선교사님께 전화를 했는데 선교사님의 아들이 받았습니다. “아버지 좀 바꿔 줘.”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어요.” “왜?” “댕기피버래요” 열대지방에는 댕기열이라는 아주 무서운 열병이 있는데 당시에는 치사율이 90%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병원에 계시니?” “필리핀 메디컬 센터예요.” 제가 필리핀 교환에 전화를 해서 메디컬 센터를 연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메디컬 센터에 “ICU(중환자실) 플리즈”라고 하니 연결해 주었습니다. “코리안 패스터 남”이라고 하자, 남 선교사님의 사모님을 바꿔주었습니다.
남 선교사님이 필리핀의 오지 마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돌아왔는데 이튿날 아침 얼굴부터 손발까지 다 까매졌습니다. 필리핀 형제들이 선교사님에게 “우리와 피부 색깔이 똑같아요”라고 할 정도로 그때 이미 혈색이 변했습니다. 남 선교사님이 병원에 입원하여 진료를 받을 때 댕기열 바이러스가 검출되었고 결국 말도 못할 정도로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필리핀 의사가 “이 한국 사람 오늘 오후에 죽는다”라고 말했답니다. 

‘남편이 안 죽겠구나’ 

남 선교사님의 사모님이 전화를 받더니 제 목소리를 듣고 엉엉 울면서 계속 “목사님,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돼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모님의 마음에서는 이미 남 선교사님이 죽어 있었습니다. 제가 계속 울고 있는 사모님에게 “그만 우세요. 진짜 울 일 생기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하자 울음을 그쳤습니다. “남 선교사님은 안 죽어요.” “그럴까요?” “그럴까요?가 뭐예요. 안 죽는다니까요. 누가 남 선교사님을 필리핀에 보냈어요? 박옥수 목사가 보냈어요? 기쁜소식선교회가 보냈어요? 아니예요.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라고 보냈어요. 아직 남 선교사님은 할 일이 많아요. 남 선교사님 안 죽어요.” 
저는 그 사모님과 통화하면서 먼저 그 사모님의 마음에서 죽어 있는 남편을 살리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예수님처럼 그 사모님에게 큰소리를 한번 친 것입니다. 그 사모님의 마음에 ‘아, 남편이 안 죽겠구나!’ 하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전화를 끊고 사모님이 남 선교사님에게 제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남 선교사님이 그 말을 듣고 믿는 순간부터 열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퇴원했습니다. 

구원받은 죄인?

여러분,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마음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창세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가지고 있던 아담에게 뱀이 찾아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아담은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뱀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때부터 아담의 후손은 죄악을 저지르며 살게 되어서 우리도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 죄를 사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은혜 받은 죄인, 구원받은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사하는 일을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완벽하게 이루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하는 일을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마음에 이 말씀이 믿음으로 들어오면 죄인이란 생각을 밀어내고 “의인이다!”라는 말씀이 자리를 잡으면서 구원받은 자가 됩니다. 

물 떠온 하인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셨고, 하인들이 물을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해서 하인들이 그대로 물을 떠다 주었습니다. 만약 그때 하인들이 ‘이것은 물인데 연회장에게 포도주를 갖다 줘야지 물을 갖다 줘도 되나?’라며 물을 떠다 주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인들은 자신들이 분명히 물을 부었고, 지금 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기만 하면 됩니다. 

두 가지 원칙

여러분, 우리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은 다른데 그것은 사단의 원칙과 하나님의 원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사단 아래서 사단의 원칙으로 살면서 우리 생각이 옳다고 믿어왔습니다. 사단은 그렇게 우리를 속이고 거짓 원칙으로 삼아 하나님의 뜻과 다른 삶을 살게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만난 사람들이 사단 아래서 죄악 속에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이사야서에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말씀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 그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죄인이다’라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를 ‘의롭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진정한 회개란

일반적으로 회개란 ‘예수님, 내가 도둑질했습니다. 간음했습니다. 거짓말 했습니다’ 하며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서 돌이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진정한 회개는 내가 사단이 역사하는 아담의 후손이므로 내 모든 행위가 죄악뿐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말씀과 다른 내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면 예수님이 ‘의롭다’ 하신 말씀을 믿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 저는 구원받기 전에 친구들과 매일 밤마다 만나 놀면서 거짓말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요한계시록 21장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는 말씀을 읽다가 ‘나는 거짓말했으니까 지옥 가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예수님이 받으시고 우리를 ‘깨끗하다, 의롭다’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했지만 또 죄를 짓는데 어떡하지?’ 하며 다시 ‘속죄’에 대한 부분을 성경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영원한 속죄

구약시대 제사장들이 속죄 제사를 지내면 죄가 사해졌습니다. 그리고 또 죄를 지으면 다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히 10:11) 이 땅은 시간계이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면 그 제사가 과거로 갑니다. 과거로 간 제사가 현재 우리의 죄를 씻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10장을 보면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0, 12)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만 이 땅의 모든 것은 시간계에 속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

히브리서 9장에는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히 9:11) 예수님이 시간계인 이 땅의 제단에다 아무리 일억 번 피를 뿌린다 해도 그 순간에만 죄가 사해지므로 우리 죄를 다 씻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란 하늘나라의 성전을 가리키는데, 예수님은 이 땅에 있는 제단에 피를 뿌린 게 아니라 하늘나라 제단에 피를 뿌렸습니다. 그 피는 지금도 영원히 남아서 죄를 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온전케 된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이런 복음을 듣고는 “그러면 이제 우리가 죄 막 지어도 되겠네요?” 하고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너무나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럼, 목사님은 죄 막 안 짓습니까?”라고 그분께 되물었습니다. 우리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이 달라서 그렇지,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의 모든 행위는 죄악뿐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가 죄를 막 짓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게 하셨다면 이 땅에서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벽하게 씻은 것을 믿고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의롭다면 의로운게 맞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마음을 만드셨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사단이 넣어준 생각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간직합시다. 그럼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의 거룩함, 의, 그리고 능력이 있으면 예수님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의 혼인 잔칫집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물을 떠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신랑을 불러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요 2:10) 하였습니다. 물 떠온 하인들이 그 말을 듣고 물이 포도주로 변한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저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 번씩 할 때마다 하나님이 제게 일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예전에 위장이 아플 때, 심장이 약했을 때, 성대가 안 좋았을 때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그때마다 저를 도우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읍시다.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 생각을 하나라도 섞지 맙시다. 그것은 악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면 우리가 의로운 게 맞습니다. 지금 물이지만 예수님이 포도주라고 하시면 포도주가 맞습니다. 그렇게 믿으면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삶과 같아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어려울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분명히 들으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더 복되고 영광스럽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 2019. 10. 27.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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