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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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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야곱은 복을 받고 에서는 저주를 받았나[창세기 27장 1절 ~ 23절] - 2019. 10. 20.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84호

처음 성경을 읽었을 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 속에는 우리에게 일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관념으로 성경을 대하면서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어하는 마음과는 전혀 다른 생각들을 갖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제가 성경을 읽었을 때 처음에는 성경 스토리 정도만 알게 되었는데 열 번, 스무 번, 마흔 번 성경을 읽어가니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과 제 생각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시고,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주장하면서 하나님과 부딪히게 됩니다. 그때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몇십 년을 공부해도 하나님의 뜻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말씀과 우리 생각이 갈등하고 부딪히는 동안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내 생각이 다 틀렸구나. 하나님의 말씀이 맞구나’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하게 되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전갈에 물린 한 학생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로 해외봉사를 갔던 최요한 학생이 어느 날 밤에 잠을 자다가 전갈에 쏘였습니다. 그런데 전갈에 쏘인 줄도 모른 채 그냥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오후쯤 되어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요한이를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의사는 “데려가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 사람은 이미 늦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전갈에 쏘였을 때 금방 와도 살까 말까한데 이미 온몸에 독이 퍼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병원들을 찾아갔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겨우 한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심정지가 왔습니다. 의사들이 심폐소생술로 겨우 맥박이 뛰도록 조치를했지만 당시 최요한 학생의 체온은 17℃에 혈압이 20mmHg으로 시체나 다름없었습니다. IYF 라이베리아 지부장님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울면서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지금 최요한이요! 최요한이요! 전갈에 쏘였는데 죽어가고 있어요.”

전갈의 독을 이기려면
 
최요한 학생이 두 시간도 채 살기 어렵다는 전화를 받았지만 한국에서 라이베리아까지는 제트 비행기로 18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였습니다. 제가 그곳에 약을 보낼 수 있습니까? 의사를 보낼 수 있습니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화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에 심어주면 그가 살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한이와 통화할 수 있어요?” “예.” 지부장님이 전화를 바꿔주었습니다. “요한아, 내 목소리 들려?” “예, 목…사…님.” “요한아, 너는 아프리카 전갈에 쏘였대. 의사는 네가 두 시간을 견디기 어렵대. 그런데 요한아, 난 오늘 아침에 성경을 읽었어.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는 말씀이 있어.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말씀이야.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으셔. 이 말씀은 누구라도 믿기만 하면 역사를 해. 네가 전갈의 독을 이기려면 새 힘이 필요해. 하나님을 앙망해 봐. 하나님이 약속대로 새 힘을 주실 거야. 그럼, 넌 전갈의 독을 이길 수 있어.” 요한이와 그렇게 15분 동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놀랍게도 최요한 학생은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얼마 후 살아났습니다. 지금은 LA에서 복음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쇠퇴하는 이유
 
여러분, 오늘날 기독교인의 수가 이토록 빠르게 줄어드는 이유는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전으로 쓰여졌다.” “사람이 지어낸 것이다.” 등 별별 이야기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성경 말씀에 회의를 느끼게 합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미국에서 신학 박사과정의 최종 단계에 있었는데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라는 성경 말씀을 믿는다고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사야서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고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인간적으로 가능한 것은 이야기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성경 구절이 잘못되었다”, “성경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한 확실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넘게 하시고
 
하나님이 마음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천지차이입니다. 저도 사역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 왜 제게 이런 어려움을 주십니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저를 도우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김천에서 사역할 때 집주인이 도박을 하다 집을 은행에 잡히고 도망갔습니다. 은행에서 집을 비워달라고 찾아왔지만 이사 갈 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저에게 ‘너, 나가서 집을 한번 알아봐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보러다니던 중 가까운 곳에 마음에 드는 건물을 찾았지만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는데 하나님이 그 집을 주시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저녁에 주인을 찾아가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 도시에 복음을 전하려고 온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데 집주인이 은행에 집을 넘겨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 후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이 건물을 저에게 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집을 저에게 빌려 주시고 싶으면 주십시오. 그러나 동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잠시 후 그분이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시내 지좌동에 있는 지좌교회 장로올시다. 하나님께서 국도변에 이렇게 좋은 집을 저에게 주셨는데 하나님의 종이 쓰신다고 하는데 어떻게 안된다고 하겠습니까. 쓰십시오.” 

야곱과 에서

오늘 읽은 창세기 27장을 보면 야곱과 에서가 나옵니다. 그들은 똑같이 아버지 이삭의 복을 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삭이 사냥을 잘하는 에서를 불러서 말합니다. “에서야.” “예.” “내가 이제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너는 전통과 활을 가지고 사냥해서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와라. 내가 그것을 먹고 너를 마음껏 축복하리라.”
이 말을 들은 에서는 사냥을 하러 들로 나갑니다. 그러나 사냥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만약 노루를 잡을 때 급소를 정확하게 맞히지 못하면 노루는 활을 맞아도 그냥 도망쳐 버립니다. 그 노루를 쫓아 산골짝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다시 활을 쏘아 죽였다고 해도 100㎏이 넘는 노루를 메고 집까지 오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에서는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루를 잡아와 정성껏 요리해 아버지께 드려서 복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서가 아닌 야곱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리브가는 예수님의 그림자

성경을 보면 이삭이 에서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리브가가 야곱을 부릅니다. “야곱아, 네 아버지가 형 에서에게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면 마음껏 축복을 해준다고 했다. 너는 염소 떼에 가서 어린 염소 한 마리를 가져와라. 그러면 내가 요리해서 너에게 줄테니 그것을 들고 가서 네가 아버지의 복을 받아라.”
야곱은 이 말을 듣고 형은 털이 많은데 자신은 털이 없이 매끈해서 아버지가 자기를 만지면 속이는 게 들통나 저주를 받을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리브가는 모든 저주를 자기가 받겠다면서 그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창세기를 자세히 읽어 보면 리브가가 예수님의 그림자라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우주에서 우리가 받을 저주를 ‘내가 대신 받겠다’라고 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리브가의 말을 좇아 어머니가 준비한 것을 들고 이삭에게 나아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은혜의 참 뜻은

성경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에서는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이삭에게 나아갔는데 저주를 받았고, 야곱은 아무 일 한 것 없이 리브가가 준비한 것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을 가장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머니이듯 하나님을 가장 만족시킬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로마서 4장을 보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4~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이라도 무엇을 해서 얻은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 갈만한 그 어떤 일도 안 했고 오히려 경건치 않은 죄인인데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성경은 우리가 에서처럼 자기 열심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다 속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행위에 속한 길

성경을 대할 때 하나님의 섭리를 살피며 자세히 읽으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두 가지 방법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율법을 지키고, 기도하고, 십일조 내고, 착한 일을 해서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전부 자기가 해야 하는 행위에 속한 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잘하면 “하나님, 보시옵소서” 하며 자기가 잘한 것을 들고 나가고, 반대로 잘못하거나 죄를 지으면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시옵소서”라며 죄인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몰라서 그렇지 인간 자체가 악하고 더럽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악뿐입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는 전혀 다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선한 행위로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선을 받지 않으십니다. 이미 죄에 빠진 인간에게서 나오는 선은 우리가 볼 때 선한 것 같아도 결코 선이 아닙니다. 거룩한 것 같아도 거룩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 속에 거룩한 것이 없고 악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에서는 왜 저주를 받았나

야곱이 복을 받고 난 뒤에 에서가 사냥한 요리를 들고 이삭에게 나아갔습니다. “아버지, 제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저를 마음껏 축복해 주십시오.” “넌, 누구냐?” “맏아들 에서입니다.” “뭐라고? 좀 전에 에서가 와서 내가 복을 줬는데?” 이 말을 듣고 에서는 크게 울며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 그 소리를 듣고 이삭이 대답했습니다.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창 27:39~40) 이처럼 에서는 복이 아닌 저주를 받았습니다.
에서는 왜 저주를 받았습니까. 에서의 행위는 악뿐인 인간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야곱이 한 것은 우리를 대신해주신 리브가(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를 갈 때 의롭다, 거룩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거룩해서, 의로워서가 아니라 예수님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래 악하기 때문

어떤 사람들은 우리 인간의 기준을 가지고 말합니다. “에서는 아버지 말 그대로 순종했고 야곱은 거짓말을 했잖아요. 그런데 왜 야곱에게 복을 줍니까?”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거짓말을 했냐 안했냐가 아니라 ‘인간이 한 것을 가지고 나왔느냐, 예수님이 하신 것을 가지고 나왔느냐’입니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본래 악하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나오는 어떤 것도 하나님은 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재판장이 의롭다하면

한번은 도미니카 기성교회 목회자 모임에서 제가 말씀을 전하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의롭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참석하신 모든 목사님들이 깜짝 놀라며 질문했습니다. “목사님은 죄 안 지었습니까?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했습니까? 솔직하게 얘기하십시오.” 제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거짓말도 하고 죄도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의롭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 분명히 아는 것은 하나님이 저를 의롭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신데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면 의로운 것 아닙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고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죄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다 사해 놓았는데 여전히 자기가 죄를 씻으려고 발버둥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3)라는 말씀처럼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할 때 ‘자기의 선’, ‘자기의 의’에 속습니다. ‘나는 선을 행했어. 의로워.’ 그 생각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의를 다 버립니다. 여러분이 믿는 ‘자기의 의’는 하나님 앞에 설 때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남습니다. 우리는 다 죄를 짓는 가증하고 악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를 주신 것입니다.

‘죄를 막 지어도 됩니까?’

지난 홍콩 집회에서 영원한 속죄에 관한 말씀을 전할 때 참석자 중 한 분이 “그럼 죄를 막 지어도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 인간이 죄를 안 짓고 살았습니까? 하나님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하셨고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행한 선한 것 하나 가지고 자기 의를 세웁니다. 그러나 분명 하나님은 인간이 악뿐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편 14:2~3)” 자기 눈으로 볼 때 선을 행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 기준에서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그럼 지금까지 죄를 짓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행위로 마음으로 죄를 짓고 싶은대로 다 지어놓고는 이제 와서 죄를 안 지은 사람처럼 앞으로 막 지어도 되냐고 묻는 사람은 자기가 죄를 안 지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것 자체가 거짓입니다. 죄를 이기는 것은 죄를 짓지 않으려는 인간의 각오와 결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이후부터 예수님 안에서 제 삶이 거룩해지는 것을 봅니다.

의롭다 하신 말씀을 믿어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우리의 죄를 일부만 가져가신 게 아니라 손끝만큼도 남김없이 온전히 다 가져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을 때 우리가 의인이 됩니다. 여러분, 거기에 우리 인간의 의를 보태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의는 다 악하고 더럽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을 행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리브가가 준비한 것을 들고 아버지에게 나아가 축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예수님이 완벽하게 이루어 놓은 그 의를 들고 나아가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씻으신 그 의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의롭다고 하신 그 말씀만 믿으십시오. 여러분 더 이상 죄의 종된 삶을 살지 마시고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복된 삶을 살게 되길 바랍니다. 
- 2019. 10. 20.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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