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인(否認)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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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인(否認)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을 때
2006. 5. 28  주일 낮  설교 요약 - 104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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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의 두가지 힘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항상 두 가지 힘이 교회 안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의 힘인데, 성령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면 그 사람을 바꾸는 일을 합니다. 또 하나는 성령의 힘이 아닌 인간의 힘인데, 인간의 힘으로 선을 행하려고, 변화된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항상 이 두 힘이 부딪혀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섞여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저는 목사로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에 일하실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때로는 제 편에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지만 다시 ‘내가 하지 말고 예수님이 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바꾸어 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러닝머신

제가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러닝머신으로 했는데, 한번은 제 아내가 백화점에 간다고 해서 저도 함께 갔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데 이제부터 운동을 해야겠다. 러닝머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러닝머신이 있는 코너에 가서 어느 것이 좋은지 한번 타보고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을 사려고 했는데 문득 ‘내가 사지 말고 주님 앞에 기도해야겠다. 주님이 주시는 것을 얻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기도했어요.
너무 신기한 것은 집회 갔다 오니까 러닝머신이 우리 집에 있는 겁니다. 제가 너무 좋아서 누가 가져왔는지 물어봤더니 스포츠용품 가게를 하던 자매님이 갖다 놓았대요. ‘그 자매님이 가게를 정리한 지 3년이 다 됐는데 어떻게 이걸 가져왔지?’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그 자매님이 나중에 저에게 간증을 했습니다. 가게를 다른 사람한테 인계하면서 물건 하나하나를 넘겨주던 중 마지막으로 러닝머신 하나가 남았답니다. 거기에 약간의 흠집이 있어 인수하는 사람이 그냥 달라고 했지만 그냥 주기엔 아까워서 집으로 가져왔답니다. 그 자매님은 운동을 하지 않는 분인데 3년 동안이나 집에 놔두니까 귀찮은 겁니다. 그래서 ‘이거 박목사님 운동하실 때 쓰면 좋겠다’ 싶어 갖다 준 것입니다. 제가 기도한 후 일주일도 안 되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 겁니다.

좁은 사택에 살았지만

삶 속에서 내가 하는 일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비교가 안 됩니다. 영적인 사람일수록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지만, 육신적인 사람일수록 ‘하나님이 하시면 잘 안 될 것 같고, 내가 해야 잘 될 것 같아’라는 생각 때문에 자꾸 하나님 앞서서 일을 하게 됩니다.
1979년 대구에서 예배당을 샀습니다. 늘 셋집에 살다가 ‘성일교회’라는 교회가 다른 곳으로 예배당을 지어가면서 대지 107평에 건평 54평짜리 그 예배당을 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예배당을 샀을 때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그 안에 한 평 남짓한 방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우리 네 식구가 살았습니다. 낮에도 깜깜해서 낮잠 자기 좋고, 누우면 머리는 장롱에 닿고 다리는 벽에 닿는 아주 작은 방이었습니다.
그때 나환자촌에 있는 분들을 전도해 가깝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나환자촌에 있는 교회 성도들이 우리 교회에 놀러 왔어요. 그 교회 목사님이 “여러분, 박목사님 사택 좀 구경하세요!” 하면서 우리 방문을 열었어요. 조그마한 굴 같은 사택이 드러났을 때, 형제들이 모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넓은 사택을 얻게 하시고

그러고 난 후 형제 자매들에게 ‘박목사님 사택을 마련해 드리자!’는 마음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제가 형제 자매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했어요. “우리 교회가 날로 좋아지고 있어서 앞으론 이런 사택에서 살고 싶어도 못 살게 될 거예요. 얼마든지 좋은 사택에서 살 수 있을 테니까, 또 형제들이 예배당 사느라 지금은 빚도 많고 어려운데 조금 더 기다렸다가 사택을 마련하면 안 되겠어요?” 저의 만류에도 형제 자매들은 “목사님, 늘 ‘믿음, 믿음’ 하시면서 왜 이 문제는 믿음으로 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생각하십니까?” 하면서 연보를 작정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재정 맡은 분이 저한테 와서 작정된 연보 금액을 얘기하는데 깜짝 놀랐어요. 형제 자매들이 정말 많은 금액을 드리겠다고 작정한 것입니다. 저는 쉴 만한 방 하나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영남대 교수가 살던 2층 양옥집을 전세로 얻게 되었습니다.
이사하던 날, 집회를 마치고 왔는데 그냥 대문 앞에 멈춰 서서 오랫동안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마루에서는 나이 많은 모친들이 파를 다듬고 청년 자매들은 걸레를 들고 집 청소를 하고, 부엌에선 부인 자매들이 요리를 하고 있고, 형제들은 자전거로 무언가를 사서 나르는 장면들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형제 자매들이 목사의 사택 얻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는 거예요.
물끄러미 서서 생각을 해봤어요. 내가 사택을 갖고 싶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마음을 주시기도 전에 “이 형제, 사택이 없어서 불편해. 사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김 집사, 우리 사택 좀 마련했으면 좋겠다”며 내가 그들을 충동해서 사택을 얻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안 되었을 거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여러분, 신앙생활에는 단계가 있는데 이 단계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 단계에 있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게 좋아. 술을 끊어야지. 담배를 끊어야지. 성경을 읽어야지. 율법을 지켜야지. 주일을 지켜야지. 착하게 살아야지’ 합니다.  
다섯 사람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합시다. 열심히 하다가 그 중 한 사람이 죄를 짓고 넘어지면 나머지 네 사람은 “저 사람은 믿음이 없어” 할 겁니다. 또 얼마 후 한 사람이 넘어지면 나머지 세 사람이 말하기를 “저래가지고 무슨 신앙생활 한다고 해”라고 할 겁니다.
늦게 넘어지는 사람은 먼저 넘어지는 사람 앞에서 열심히 믿고 잘하는 척합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 사람도 언젠가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우리 인간입니다. 열심히 하고 잘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진정한 믿음이 시작되려면 자신의 허물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보면 아벨은 처음부터 자기의 부족함과 연약함, 추함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가지고 “하나님, 나는 추하고 더러우니까 나를 보시지 말고 이 제물을 보시고 나를 받아주시옵소서” 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땀을 흘리며 땅을 파고 씨를 뿌려 농사를 지어서, 그 수고한 대가를 하나님 앞에 드린 거죠. 그리고는 늘 아벨을 판단했어요. ‘저 형편없는 녀석. 저걸 가지고….’ 아벨이 양을 잡으려고 할 때도 “아벨아, 징그럽게 지금 뭐하는 거야? 하나님께 제사 드리면서 피를 흘리고 그래? 내가 곡식 줄게. 곡식을 드려”라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너무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안 받으셔도 자기의 제사는 받으실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의 안색이 변해버렸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창 4:6~7) “가인아, 네가 죄를 다스리고 이길 수 있어?”라는 말이죠.
여러분, 죄를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은 다 ‘죄의 종’입니다. 죄의 종이 아무리 선을 행한다 해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데 가인은 잘하는 자기를 믿어왔다는 거예요.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추하고 악한 것을 발견할 때, 비로소 신앙의 첫 단계를 넘어,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없는 자’를 찾으시고

여러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태가 될 때 예수님은 일하십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눅 10:30~33)
이 비유는 구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사마리아인이 여행하는 중에 누구를 찾았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을 찾아가서 대신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손톱만큼도 일하시지 않습니다.
38년 된 병자나, 간음 중에 잡힌 여자나, 십자가의 강도를 보십시오. 38년 된 병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또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돌에 맞으려고 끌려가는데 자기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경건하게 산 고넬료지만

내가 하는 모든 것을 진정으로 포기하게 되면 그때부터 예수님이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내가 악한 것을 깨닫지 못하면 계속해서 무얼 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사도행전 10장은 그것을 우리에게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 10:1~2) 여러분, 고넬료는 군대의 백부장이면서 정말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날마다 구제하고 기도하면서 진실하게 살았어요.
사람들이 고넬료를 얼마나 칭찬합니까?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가로되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노라 한대”(행 10:21~22)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고넬료야, 그래서는  하늘나라 못 가. 네 선한 것으로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 그래가지고는 안 돼!”

천국을 향한 두 가지 길

여러분,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성경 말씀대로 진실하게, 착하게 살 수 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죄를 대신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겁니다.
여러분,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늘나라 갈 때에 십자가에서 내 죄를 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가느냐, 아니면 내가 십일조 내고 율법 지키고 교회에 충성한 그 행위로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으로는 “주의 은혜로, 십자가의 공로로 간다”고 하지만 마음으로는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 잘했으니까 그걸 의지하고 가야지’ 하는데, 그건 예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보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하는 설교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세요. 베드로는 “열심히 기도하시오. 좀 더 많이 구제하시오. 더 진실하게 믿어야 됩니다”라고 전혀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한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행 10:36~41)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할 수 있는 건,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나 열심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추하고 악한 죄인입니다. 죄인이 선을 행함으로써, 율법을 지킴으로써 죄가 씻어지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를 사해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십자가의 보혈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면 절대로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합니다.

인간에게는 의가 없어

사람들은 평등이 좋다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평등을 싫어합니다. 자기가 불리할 땐 ‘평등’을 주장하지만 평등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보다 얼굴이 예쁘기를 원하고, 남보다 키가 크기를 원하고, 남보다 뛰어나기를 원하고, 남의 아이보다 내 아이가 똑똑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말로만 ‘평등’을 외치는 거짓말쟁이입니다.
그처럼 인간에게는 의가 없습니다.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에게 많은 사람이 돌멩이를 들어 ‘저런 더러운 여자는 우리 마을을 더럽히기 때문에 죽여야 돼’ 했습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는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쉽게 말하면 선한 자나 악한 자나 예수님 보기에는 다 악한 자인데 우리는 ‘나는 김 집사보다는 나아. 거짓말 한 번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했어. 어쩌다 사기 한 번 쳤지만 다 갚았어’ 하면서 자신을 선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필요 없어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선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선을 추구하면서 의로워져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는 안 됩니다. 이제 예수님 당신이 한번 해 보십시오’ 하며 나를 예수님께 맡겨야 하는 겁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

B.C. 1491년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율법이 내려온 그날부터 그 율법을 완벽하게 지킨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율법은 대충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만 어겨도 다 어기는 것이 됩니다.
또 율법에는 부속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자가 아들을 낳으면 33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해지고 딸을 낳으면 66일이 지나야 깨끗해진답니다. 아들을 낳으면 33일 후에, 딸을 낳으면 66일 이후에 제사를 드려야 하는 등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유대인들도 다 못 지키는 율법을 한국인이 어떻게 지킵니까?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는 “네가 지킬 수 있는지 한번 해봐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내가 얼마나 악한 인간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나는 율법을 지킬 수 없구나’ 하는 시점에 도달할 때, 자신을 믿는 마음이 다 무너져 버리는 거예요.

내가 포기되어야만

제가 신앙생활을 하게 된 이유는 일찍 망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 자신에 대해 속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똑똑하고 착하고 진실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눈으로 나 자신을 보았는데 세상에 나처럼 악한 인간이 없는 거예요. 자신에게 속아서 선한 줄 알고, 정직한 줄 알고, 신앙생활 잘하는 줄 믿었는데 제 마음의 밑바닥을 보니깐 정말 나쁜 놈인 거예요.
거울을 쳐다보면서 고함을 쳤습니다. “박옥수, 이 더럽고 나쁜 놈아! 이 야비한 놈아!” 저를 막 저주했습니다. 그날 저는 저를 포기했습니다. ‘진짜 나는 안 되는구나.’ 그러면서도 이번에 다시 하면 될 것 같고, 또 이번에는 잘하면 될 것 같은 마음으로 많이 속아왔습니다. 그러길 수차례 하면서 마음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이 일하시기 시작했어요. 예수님이 제 안에 들어와서 일을 하시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44년을 사는 동안 제가 하려고 했던 것은 다 실패했지만 제가 포기하고 대신 예수님이 일하신 것은 다 성공했습니다.

완벽하게 이루신 예수님

여러분, 왜 죄 사함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줄 아십니까? 내가 죄를 해결하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죄를 해결하려고 하니깐 온전치 못해서 그렇지, 예수님만을 의지한다면 예수님이 왜 깨끗하게 못 씻겠습니까?
저는 제 스스로 죄를 씻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벽하고 깨끗하게, 흰눈보다 더 희게 내 죄를 씻으신 것을 전혀 의심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것은 너무나 완벽한데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완벽하게 씻으신 걸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선한 일을 해서 씻으려고 하니까 죄가 남아 있는 것 같아 꺼림칙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감히 의롭다고 말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노력하고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여러분의 죄 문제와 인생을 맡겨보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를 해결해 주신 것을 믿을 때 “나는 의롭습니다. 나는 거룩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어야

사랑하는 여러분, 고넬료는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고 백성을 구제했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고넬료도 결국 넘어지고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는 다 악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못 믿습니다. 나는 무익하고, 나는 절대로 온전할 수 없고, 나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릴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시면서 우리의 죄를 눈처럼 깨끗하게 씻어주셨는데 내가 하려고 하면 그게 안 믿어져요. 나를 부인할 때 그 십자가의 피가 내 죄를 씻었다는 것이 믿어집니다. 내 죄를 사하신 것을 믿을 때 성령이 마음에 들어오면서 그때부터 내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있는 추하고 음란한 생각, 불안하고 거짓된 생각, 그리고 욕망을 빛으로 다 제거해 주십니다. 그런 뒤에 내 마음에서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평안, 소망, 믿음이 일어나면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복되게 하시는 주의 은혜가 내 것이 되어 하나님 앞에 영생을 얻게 되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과 예수님을 같이 믿을 수는 없습니다. 나를 믿는 믿음이 무너져야 합니다. 자기를 믿는 게 잘못된 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주 앞에 설 때, 여러분은 거룩해지고 의로워져서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또 여러분 속에 하나님이 살아서 일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 2006. 5. 28  주일 낮  설교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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