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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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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원리는 쉽고 단순해마태복음 17장 1절 ~ 20절 -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람임을 깨닫고 말씀을 믿어야 - [2019. 3. 17. 주일 오전예배 설교]

신앙의 기본 원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신앙의 세계를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위에 의존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성실하게 주님을 섬기고 많이 기도하며 헌금하고 전도했을 때 신앙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반대로 그렇게 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이라는 것은 마치 전기와 같습니다. 우리가 전기를 전혀 못 만들어도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기 때문에 발전소에 있는 전기를 전선을 통해 끌어오면 집에서 얼마든지 전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냥 전선만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기는 전선을 타고 와서 집에 있는 전등의 불을 켜고 냉장고를 작동시키고 세탁기도 돌려 세탁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전기가 전선을 통해 흐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통해 흐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 마음에 받아들여서 예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뜻합니다.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읽고 말씀을 사실이라고 믿을 때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이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을 때 ‘나는 다리가 다 말랐는데,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네. 내 생각에 나는 걸을 수 없지만 예수님이 걸어가라 하시면 걷겠구나’라고 믿음을 가지면 예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회개하고 무언가를 해야 죄를 사함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죄를 사할 수 없어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에 죄를 사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를 씻은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수돗물을 마시려면

언젠가 컴퓨터에 연결된 프린터에서 인쇄가 되지 않고 모니터에도 프린터가 온라인 상태가 아니라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케이블을 다 연결했는데, 왜 그러지?’ 하며 살펴보았지만 안돼서 AS 기사를 불렀습니다. 그가 몇 가지 점검을 하더니 “종이가 떨어졌습니다. 종이를 넣으세요”라고 아주 단순하게 한마디 했습니다. 저는 종이가 떨어진 것을 몰랐기 때문에 옆에 종이가 있어도 넣을 생각을 못했습니다. 온라인 상태가 아니라는 메시지만 보고 계속 케이블 연결 상태만 살폈던 것입니다. 그런데 AS 기사 말대로 종이를 넣으니까 인쇄가 잘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주 단순한 이유로 우리가 하나님이 베푸시려는 은혜와 긍휼을 입지 못한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전선만 연결하면 발전기의 전기를 집까지 끌어와 많은 일을 하듯이 우리가 가진 관념이 어떠하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면 우리 속에 하나님이 일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런 사실을 알면 신앙생활이 무척 쉽습니다. 신앙은 담요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40일 금식기도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 단순하게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우리가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우리 삶의 방향을 영적인 방향과 전혀 다른 반대편으로 옮겨놨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실력이 있어야 하고 일을 잘하는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잘 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집에서 수돗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땅을 파야 하거나 수도사업소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니라 수도꼭지를 틀 줄만 알면 됩니다. ‘수도꼭지가 여기 있네. 틀면 물이 나오겠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르면 수돗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수돗물을 마시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니라 수도꼭지를 틀면 됩니다. 그래도 만일 수돗물이 나오지 않으면 수도관이 고장 났거나 문제가 있는 경우인데 그것은 고치면 됩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아주 단순한데 우리가 신앙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애쓰고 노력하게 됩니다. 

마음이 흐른다는 것은

신앙생활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제일 처음에 우리는 우리 삶이 물질세계에 속해서 돈, 명예, 외모 등을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계는 영적인 세계여서 마음으로 흐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피를 많이 흘렸다면 의사는 무엇보다 그 사람의 혈액과 같은 혈액형의 피를 넣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환자를 수술하기 전에 수술하다 피를 많이 흘려 죽을 경우를 대비해 반드시 혈액을 준비합니다. 이처럼 혈액이 모자랄 때 보충하면 되듯이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여러분,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처럼 성경은 무언가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입니다. 그래서 죄가 많은 악한 사람이 성경을 읽고 변할 수 있는 것이지 죄 없는 착한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축구선수가 그림을 잘 그리거나 야구선수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팀을 승리로 이끄는 데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엉뚱한 것을 알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대신 신앙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과 하나님이 존재하고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1장에 나오는 포도원 농부들은 땅이 없어 품꾼으로 사니까 늘 가난했습니다. 어느 날 포도원 주인이 먼 나라로 가면서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기고 해마다 소출의 얼마를 내도록 했습니다. 양지바른 땅에 있는 포도원에는 향 좋고, 알도 굵고 병충해에 강한 포도나무가 심겼습니다. 가을이 되자 포도가 아주 탐스럽게 익었습니다. 그 마을에서 포도향이 가장 좋은 극상품 포도였습니다. 매일 즙을 짜다 시장에 파니까 농부들의 삶은 점점 부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우리 주인은 참 고마운 분이야. 이 포도원을 우리에게 맡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고생했을 텐데’ 하며 무척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포도원 농부들처럼

그렇게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포도원 주인이 그동안 세를 받지 않았다가 세를 받으려고 종 몇 명을 포도원으로 보냈습니다. 농부들은 포도원 입구에 어떤 낯선 사람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당신들 누구요? 여기 왜 왔소?” 하며 거만하게 물었습니다. “저희들은 포도원 주인의 종들인데, 주인님이 포도원 세를 좀 받아 오라 하셔서 이렇게 왔습니다.” 농부들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그들이 “우리 주인님은 평안하십니까? 포도원을 맡겨 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되어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들의 마음이 높으니까 종들을 공손히 대하기보다 오히려 종들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세금 받으러 왔다면서 왜 그렇게 거만해?” “저희가 뭘 잘못했습니까?” “이거 말대꾸하는 것 봐라.” “아니, 저희가 뭘 어쨌다고 그러십니까?” “계속 말대꾸하네. 좀 맞아야겠네.” 
포도원 농부들은 ‘주인한테 잘해야 하는데…’라고 후회하면서 나중에 주인이 아들을 보냈을 때 ‘아, 주인님이 드디어 아들을 보내셨구나. 저 아들한테는 순종해야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 ‘내가 빈다고 되겠어? 사람을 죽였는데. 어차피 갈 데까지 가는 거야. 주인도 늙었는데 주인 아들을 죽여 버리면 포도원이 내 것이 될 거야’ 하는 생각에 끌려갔습니다. 

중범자들과 상담을 하면서

예전에 저는 10년 동안 교도소 교화위원으로 지내면서 재소자들을 만나 그들이 죄를 지었던 과정을 자세히 들었습니다. 교도소의 중범자들을 만나면 그들은 전부 자기만 아는 범죄의 비밀이 있습니다. 판사 앞에서도 이야기하지 않은 비밀인데 제가 목사니까 자신들이 범한 죄에 관한 이야기를 제게 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날 제가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뭐에 씌인 것 같았어요. 저는 어느 어느 날까지는 정말 행복했어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범죄를 저지른 동기를 말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지금까지 그들이 갖지 못했던 어떤 생각이 들어와 그들 자신도 모르게 끌고 갔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그 존재가 ‘악한 영(靈)’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니야. 지금 악령이 나를 유혹하고 있어. 이 생각은 악령이 주는 게 맞아. 내가 이 생각을 따라가면 멸망해!’ 제가 이런 경험을 한 후 어떤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아, 이 사람도 내가 그때 그랬던 것처럼 악한 영에게 이끌리고 있구나’ 하며 알 수 있었습니다. 

악한 영에게 이끌리다가

몇 년 전에 구원받은 김 자매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악한 영에게 이끌림 받는 것이 훤하게 보였습니다. 그 자매님은 저를 만나기 하루 전날 38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그 자매님은 귓가에서 ‘너, 이제 좀 쉬어야 돼. 내가 너를 평안하게 해줄게’라는 아주 따뜻한 음성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뛰어내려. 사람은 다 죽기 위해 사는 거야. 죽으면 끝이야. 쉴 수 있어’라는 음성이 다시 들렸는데 만일 그날 술을 마셨거나 신경안정제를 먹었다면 판단력이 흐려져 창문에서 뛰어내렸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달 전에 자살한 언니가 떠오르면서 ‘그 언니가 이런 음성을 듣고 죽었구나’ 하며 깜짝 놀라서 창문을 걸어 잠갔다고 했습니다. 한밤중이지만 정신과 전문의를 인터넷에서 찾던 중에 마침 친구로부터 전화가 와서 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이튿날 김 자매님이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당시 그 자매님은 자주 찾아가던 점쟁이로부터 ‘딸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좋다’라는 말을 듣고 딸을 서울에 둔 채 부산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점쟁이는 회사 일을 돕던 친정어머니와 오빠도 내보내라고 했습니다. 자매님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점쟁이의 말을 따랐는데 그 얘기를 들은 저에게는 김 자매님을 혼자 두어 죽게 하려는 악령의 계획인 것이 보였습니다. 그 자매님은 그날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아 악령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내 생각과 다를지라도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사단의 권세 아래서 살아왔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그 분의 말씀을 믿지는 못하도록 우리 생각이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정확하게 나아갈 때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누구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는 것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과 상당히 가까웠겠죠? 그런데도 그들은 어떤 문제 앞에서 사단이 넣어준 인간의 생각 때문에 번번이 예수님의 마음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 안되는 것 아냐?’ 하며 저울질하였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하며 말씀을 기이히 여겼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내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예수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생각이 예수님과 같을 때만 믿는 게 아니라 다를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이 옳아’ 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지려면 가장 먼저 ‘내 판단이 옳은가?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가?’를 구분해야 합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과 삼 년 동안 지내셨는데 그 제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관념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니까 예수님과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며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그들이 가진 마음의 세계가 아닌 주님의 세계로 이끌기 위하여 변화산에 데리고 올라가서 하나님의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수백 년 전 사람인 엘리야와 천 사백 년 전의 모세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 17:4)라고 이야기합니다. 베드로는 여전히 인간적인 생각에 젖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생각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의 관념에서 벗어나

우리도 죄 사함 받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종종 ‘내 생각에는…’ 하며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1~3) 하며 수천 년 동안 사단의 지배 아래 형성된 우리의 관념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연결되어야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서 역사하려면 우리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추하고 더러워도 예수님의 풍성한 의가 우리의 의가 됩니다. 우리는 거룩하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풍성한 거룩함이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우리는 아무 힘이 없는데 예수님의 능력이 와서 우리가 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없는데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와서 우리에게 사랑이 넘치게 되고, 우리는 소망이 없지만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살아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예수님이 다 이루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따라가면 망해’

여러분, 우리가 가진 관념이 어떠하든지 말씀을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이 예수님의 말씀과 같을 때 예수님을 따르고 다를 때는 자기 생각을 따라간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저는 1962년 죄 사함을 받기 직전에 ‘내가 선택한 길이 다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제 신앙을 아주 좋게 이끌어 주었습니다. 내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주저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이게 될 만한 일이야? 말도 안 돼’ 하다가도 ‘말이 안되지만 예수님의 말씀이면 이게 내 생각보다 옳아’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믿음이 형성되면서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지니까 저같이 못난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여러분, 신앙은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람이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볼 때 ‘유익할까, 유익하지 않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우리보다 예수님이 더 잘 아시니까 그냥 예수님을 믿고 달려간다면 우리 마음이 쉽게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마음속으로 예수님의 마음이 흘러들어 오면 예수님의 지혜가 우리의 것이 되고,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의 것이 되고,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의 것이 되고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의 것이 됩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그때부터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실 때 일부러 변화산에 올라가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모세와 이야기할 수 있는 세계, 엘리야와 이야기할 수 있는 세계, 즉 지금 우리 세계와 다른 신비한 세계를 보여주신 겁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간 것처럼, 종종 우리를 데리고 새로운 세계로 가려고 하십니다. 그 세계는 우리 세계와 달라서 정말 이해할 수 없지만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주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과 하나가 된다면 말할 수 없는 은혜와 복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 2019. 3. 17.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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