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전희용 선교사 (키갈리교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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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전희용 선교사 (키갈리교회)·上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6.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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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난 2006년 5월 2일, 하나님의 은혜로 아프리카 중앙부에 있는 작은 나라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이곳 아프리카에도 복음이 전파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지금까지 선교사로 있게 하셨다는 생각에 아기의 이름을 ‘하나님의 기뻐하심’이라는 뜻의 ‘주열(主悅)’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주열이는 태어나서부터 젖을 잘 빨지 못했다. 분유를 조금 먹다가도 다 토해버렸고, 점점 핼쑥해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한 형제님이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니 병원에 데려가 보라고 하여 르완다에서 제일 큰 병원에 아기를 데려갔다.
의사는 아기를 보자마자 응급실로 옮겨 머리보다 더 큰 산소호흡기를 씌우고 그 작은 손에 이리저리 바늘을 꽂아 링거 자리를 찾았다. 옆에 있던 아내는 그만 눈물을 쏟아냈다. 서너 명뿐인 의사들이 모두 X-ray 사진을 보더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기의 장이 막힌 것 같아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는 수술을 할 만한 의사가 없으니 급히 다른 나라로 아기를 옮겨야 하는데, 아기의 숨이 고르지 않아 산소호흡기와 응급장비가 구비되어 있는 구급비행기를 이용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 불이나 되는 구급비행기 값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국 교회와 주위 선교사님들께 기도를 부탁드렸고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했다.

토요일 영상교제 시간에 박옥수 목사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며, 우리의 길이 끝났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하셨다. 정말 우리에게는 아무런 길이 없었다. 르완다에서 아기를 수술할 수도, 다른 나라로 옮길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아기가 죽어간다는 생각은 마음을 저미는 고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성경을 읽다가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요 4:49)라며 아들의 병을 위해 예수님께 간구하는 왕의 신하를 보니 꼭 나와 같았다. 그런 내게 예수님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길로 병원에 가서 아기를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의사와 수간호사는 깜짝 놀라 아기를 죽일 작정이냐며 화를 냈다. 성경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내게 가라고 하셨지만 나는 아기를 데려오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아기가 있던 응급실에 청년 한 명이 실려 왔다. 그곳 의사들이 손을 쓸 수 없었던지 르완다 대령인 그의 아버지가 구급비행기를 전세 내어 그 청년을 케냐 나이로비병원으로 옮기려 했다. 그때 모든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그 대령에게 우리 아기의 이야기를 하며 케냐로 가는 구급비행기에 함께 태워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아기를 케냐로 빨리 데려가라는 수간호사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나는 르완다 비자가 만료된 상태였고, 새로 태어난 아기도 여권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이 가는 사람이 르완다 대령이라서 그런지 전쟁 때문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르완다 이민국을 무사히 통과해 광활한 빅토리아 호수를 건널 수 있었고, 아기와 나는 케냐 비행장에 드디어 도착하였다. <계속>

정리/ 정민승 기자 mins8003@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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