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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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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삶과 사울의 삶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사무엘상 26장 1절 ~ 12절 - 2018. 9. 1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30호

신앙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아주 어렵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난 그림을 잘 그려. 난 노래를 잘 불러. 난 피아노 연주를 잘해’라고 말하며 남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신앙에 자신 있어. 신앙을 잘해’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꽃게는 앞으로 가는 것보다 옆으로 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 꽃게에게 앞으로 가라면 정말 고생스러울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 쉬운 반면, 옆으로 걸어가라면 어렵습니다. 마치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생각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중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대하다 보면 ‘하나님과 내 생각이 다르구나. 내 생각을 비우지 않으면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할 수 없겠구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뱀의 말을 들은 그때부터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뱀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반대편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과 다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잘난 사람일지라도 그의 지혜와 방법이 있는 한 하나님이 그에게 일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듯이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 17:15~16)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게 아들을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한 것이 아니라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창 17:17~18)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출애굽기 1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바로의 권세 아래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려 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0~11)라고 하나님께 고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망할 것 같고 자기 생각과 방법으로 하면 잘될 것 같아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이사야 성경에서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여러분, 우리 생각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내 생각으로 한 결과가 이렇구나’ 하며 결국 우리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했지만 로마서 기록을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롬 4:18~19)라며 자기 생각이 틀린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백세나 되어 늙었지만 하나님이 아들을 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모세도 처음에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며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다가 마침내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로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라”(출 10:3~4)며 담대히 외쳤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삶

사무엘상 성경을 읽으면 자기 생각과 방법으로 사는 사울과 자기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다윗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창을 든 사울과 수금을 타는 다윗」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사울은 누군가 자기를 죽일 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 늘 창을 들고 벽을 등지고 있었습니다. 벽 뒤로 다른 사람이 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이 늘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녔는데도 수금을 타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자기를 지키려고 발버둥친 사울은 죽고,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은 왕이 돼서 힘 있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에도

오늘 읽은 사무엘상 26장에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쫓는 사울을 피해 황무지에 있었습니다. 
1절에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이르러 가로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2~3절에는 “사울이 일어나 십 황무지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과 함께 십 황무지로 내려가서 광야 앞 하길라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황무지로 들어옴을 깨닫고”라며 다윗은 사울이 황무지로 들어온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4절에 “이에 탐정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줄 알고”라는 기록을 보면 다윗은 탐정을 보내서 사울이 황무지에 들어온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성령의 지혜로 사울이 황무지로 들어온 사실을 먼저 ‘깨닫고’, 사울이 이른 줄 ‘알고’, 그리고 5절에서 “일어나 사울의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대장관 아브넬의 유하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 가운데 누웠고”와 같이 사울이 진 가운데 있는 것을 ‘본즉’ 하며 그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마음의 세계 속에서 살았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제 어머니는 무남독녀 외동딸이셨습니다. 처녀 시절 처음으로 한국에 온 선교사들에게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처녀가 혼자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외동딸이니까 외할머니는 남편 몰래 딸이 교회에 가도록 하셨답니다. 외할아버지는 딸이 교회 가는 것을 못 본 척하셨습니다. 출가 후 시댁의 시부모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이라서 교회를 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지 못하시고 집안일을 하며 혼자 찬송을 부르시곤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 곁에서 찬송을 부르던 때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교회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열아홉 살까지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당시 한국은 가난해 배고픈 시절이었습니다. 남의 집 밀밭에 들어가 밀을 꺾어다 구워 먹곤 했는데 지금도 밀이 익을 무렵엔 그 밀을 한번 꺾어 구워 먹고 싶어집니다. 저는 친구들과 매일 밀밭에 들어가 밀을 잘라 가슴에 품고 나와서 산꼭대기로 올라가 불을 피워 구웠습니다. 구운 밀을 비벼서 후후 불면 껍질이 날아가는데 구운 밀알이 그렇게 맛있었습니다. 그 맛에 유혹을 받아서 도둑질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면서 “도둑질 하지 말라”라는 십계명을 알고 난 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제게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지려면

여러분, 우리는 복음을 듣고 그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서 죄 사함을 받는 시점이 될 때까지 자기 생각 속에 빠집니다. 그래서 늘 죄 때문에 “나는 죄가 많아서 지옥 갈지 몰라. 나는 믿음이 없어”라고 생각합니다. 죄 사함 받는다는 것은 성경을 읽고 듣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똑같은 죄를 두고도 우리가 보는 시각과 예수님이 보는 시각이 전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믿음을 가지려면 내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저는 1962년 10월 7일 구원받기 전까지 제 생각 속에서 더럽고 추하며 악한 죄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자신을 사랑하겠지만 그 당시 저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진절머리가 나고 싫어서 ‘이 더러운 놈, 야비한 놈, 악한 놈아!’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녁마다 친구들과 모였고 밤이 깊어지면 남의 집 과수원에 가서 사과 서리, 참외 서리를 하고 새벽에 다시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합니다. ‘어제 지은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오늘 그 친구 집에 가지 않게 해주십시오. 거기 가면 또 도둑질해요.’ 제가 저녁마다 친구 집에 안 가려고 했지만 어느 틈에 벌써 그곳에 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62년 10월 7일 저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눈을 빌려주시고, 당신의 마음을 빌려주시고, 당신의 생각을 넣어 주셔서 그 눈으로 저를 보니 이전과 전혀 달랐습니다.

신앙의 원리

저는 죄를 짓고 도둑질하고 악을 행했지만 제가 짓는 죄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고 죄를 씻는 훨씬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을 보니까 죄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죄를 씻는 예수님의 능력이 죄를 짓는 우리 능력보다 크면 우리의 모든 죄가 씻어진 것입니다. 반대로 죄를 짓는 우리 능력이 죄를 씻는 예수님의 능력보다 더 크면 우리가 죄인으로 남는 겁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이 짓는 죄가 아무리 커도 죄를 씻는 예수님의 능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우리가 깨끗하고 거룩하고 의롭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신앙은 바로 이런 원리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가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내 다리가 말라서 비틀어지고 가늘어 빠져 아무 힘이 없는데 이 다리를 가지고 어떻게 걸어가?’라고 생각하니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걸어갈 수 있어. 일어나 걸어가 봐. 내가 너에게 능력을 주었어. 걸어가 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에서 중요한 사실은 ‘내가 얼마나 선하냐 악하냐’가 아니라 ‘내 생각을 믿느냐 예수의 말씀을 믿느냐’입니다. 

그날 후에 세울 언약은

오늘날 한국의 참 많은 교회에서 주일 낮 예배 때 십계명을 봉독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싫어하십니다. 실제 인간을 법이 아닌 사랑으로 만나시려고 십계명을 법궤 안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법궤의 뚜껑을  열지 못하게 천사가 날개를 펴서 덮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법궤의 뚜껑을 열어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봤다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모세를 통해 십계명이 내려온 날부터 사람들은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살인치 말라. 간음하지 말라…”라는 계명인 율법을 지키려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그날 후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렘 31:33)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히 10:16)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보면, ‘도둑질하지 말라’ 하는데 도둑질하고, ‘거짓말하지 말라’ 하는데 거짓말하여 법을 어긴 죄가 크지만, 우리 죄를 씻는 예수님의 능력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짓는 죄를 다 합한 것보다 큽니다. 그래서 우리가 짓는 죄와 죄를 씻는 예수님의 능력이 서로 싸울 때 예수님의 능력이 커서 결국 이기니까 우리가 죄인이 아닌 의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보혈의 능력

예레미야 31장 34절에는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죄가 남아 있다면 하나님은 그 죄를 기억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 못하실 것입니다. 죄를 사하는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서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 죄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간음을 하고, 도둑질 하고, 거짓말을 해서 그 죄가 우리 마음에 가득 차 있는데도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 죄를 모두 사했기 때문에 죄가 하나도 없는 겁니다. 우리는 죄를 짓는 사람이고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분인데, 만일 우리의 능력이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는 능력보다 크다면 죄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죄를 사하는 예수님의 능력이 더 크기 때문에 우리에게 죄가 없습니다. 우리보다 예수님이 작아 보일 때 우리는 죄인으로 남게 되고, 우리보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더 크게 보일 때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요구르트와 커피가 만나서

한번은 요구르트 제조하는 형제님을 만나서 “요구르트에 커피를 넣은 상품을 만들어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커피는 맛이 강한데 우유는 맛이 아주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유제품인 요구르트 속에 커피가 들어가면 그제야 커피는 제맛을 냅니다. 나중에 그 형제님을 만났는데 커피를 넣은 요구르트 상품이 히트를 쳤다고 했습니다. 마치 같은 팀끼리 축구 경기를 하면 재미없고 상대팀인 적군과 싸워야 재미있듯이, 음식 맛도 서로 다른맛이 만나 제맛을 내는 겁니다. 
우리 마음의 세계에도 적군과 아군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아군의 마음은 사단이 주는 생각인데 항상 하나님과 반대입니다. 즉 예수님의 마음은 적군에 해당됩니다. 내 마음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되어 신앙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내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을 섞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악하고 추하고 더러운 내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을 할 때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정확히 알면 저절로 신앙을 하게 됩니다. 

‘나’라는 존재를 알고 나면

여러분, 저는 하나님이 저를 복음의 일을 하도록 선택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1962년 구원받기 직전에 제가 했던 모든 것이 실패하여 ‘나’라는 존재를 세우려는 마음이 다 무너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신앙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철저히 알면, 내가 얼마나 더럽고 추하고 교만하고 악하며 거짓되고 음란하며 방탕한지 정확히 보이면서 나에 대한 회의가 옵니다. 
저는 구원받기 전까지 죄 속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거짓말과 도둑질, 그리고 많은 죄에 얽매여서 꼼짝할 수 없도록 짓눌려 있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게 있던 지혜와 전혀 다른 예수님의 지혜, 성령,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이 제 마음속으로 들어와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제 눈으로 볼 땐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더러운 죄를 짓는 똑같은 ‘나’였지만 예수님의 눈으로 보니까 제가 깨끗하고, 거룩하고, 의로워져 있었습니다. 정말 믿기 어려웠지만 말씀을 보면 저는 의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오늘 다윗과 사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들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사무엘상을 보면 사울은 왕이었고 그를 지켜주는 근위병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창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반면 다윗은 늘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이 있었지만 수금을 타며 사울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사울은 왕이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장차 왕으로 기름 부은 걸 알고 그가 왕이 되지 못하도록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고 기름을 부었기 때문에 절대 사울이 자신을 죽일 수 없다고 믿고 담대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아주 단순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생각으로 산다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면, 하나님이 우리를 복되게 하시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더럽고 추한 인간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아닌 죄 사함을 받았을 때 왔던 죄가 씻어졌다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 그 거룩한 믿음에 이끌린다면 우리는 너무나 놀랍고 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 2018. 9. 1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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