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고 ① 이준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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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 ① 이준현 선교사
해외선교간증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5.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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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학교를 마치고 1995년 10월 16일, 아프리카 가나에서 첫 선교를 시작했다. 그리고 3년 반 후, 1995년 4월 22일에 새로운 선교지인 토고로 들어갔다.

가나에 있을 때, 그저 마음을 다 쏟아 복음만 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복음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실망만 남았다. 그러다가 토고에 파송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언어도 영어에서 불어로 바뀌고 새로운 세계로 간다는 것이 처음에는 참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토고 역시 하나님이 종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에 쉼이 찾아왔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잘 해 보고 싶었다. 가나에서의 부끄러움과 수치들을 벗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토고에 온지 한 달쯤 지나서, 가나 형제의 고모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 분을 포함해서 네 명이 처음 구원을 받았다. 뭔가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000년 초에는 두 사람이지만 어렵게 선교학교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 여명의 형제 자매들이 구원을 받았다.

싸늘한 현실 앞에…

하지만 형편에 쉽게 자기를 내어주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과 변명을 늘어놓는 형제 자매들을 대하면서 갈수록 마음이 힘들어졌다. 이상하게도 마음을 쏟는 지체마다 교회를 거스리고 하나님 앞에 세워지지 않고 결국 많은 아픔과 고통을 남기고 교회를 떠나갔다.

처음에는 40개의 예배당 의자를 샀지만 거의 비어 있었다. 어쩌다 한국에서 목사님이 오셔서 집회를 할 때면 너무 민망스럽고, 지나가는 거지라도 그 자리를 채워 주길 빌었다.

오후마다 한쪽 손에 사전 하나 들고 전도 나가는 시간도 너무 힘들었고 아프리카라고 해서 사람들이 쉽게 구원받지 않았다. 자주 아내와 아무 말 없이 벤치에 앉아 강가를 바라보다 돌아올 때가 많았다. 호기심을 가지고 교회에 오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냉담하기만 했다.

나는 선교사도 아니고 불쌍하고 초라한 백인일 뿐이었다. 현실이 너무 싸늘하게 보였다. 아프리카에 온 것을 후회도 해 보았다. 2001년 초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같이 있던 선교학생은 교회의 물통과 밥솥을 가지고 새벽에 도망갔다. 더 이상 사역할 만한 의욕을 다 잃어버리고, 나는 가나로 갔다.

새롭게 발견한 주님의 세계

가나에 계신 선교사님과 마음의 교제를 나누면서, 죽어 있던 내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좋은 감정에 취해 있다 보면 자기의 수고와 선함을 붙들고 스스로 옳게 여기며 살아간다. 열왕기상 3장에 나오는 두 창기 중에 자기의 옳음을 붙들고 있던 창기가, 결국 솔로몬의 재판 앞에서 그 옳음으로 인해 생명을 얻기는커녕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을 본다. 자기의 선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삶이 있고, 자기의 마음을 버리고 종의 말씀을 받아서 사는 삶이 있다. 그 삶을 내 마음에도 그려 주시려고 이끄신 하나님의 섭리가 마음에 감각되기 시작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죽어지고 잃어지는 것이 있어야 새롭게 솟아 오르는 생명의 세계, 주님의 세계가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정리/ 구지원 기자 jwkoo77@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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