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형편을 보지 않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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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형편을 보지 않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
[열왕기하 7장 1절 ~ 8절] 2015. 7. 26. 주일 오전 설교- 57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5.08.0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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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한국 월드문화캠프 기간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2015 한국 월드문화캠프 기간에 저는 각국 청소년부 장차관, 대학 총장들, 그리고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 마음에 하나님 말씀의 참된 빛이 들어가니까 그들의 얼굴이 밝아지고 삶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사람의 마음의 세계에 작용하는 말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성경은 햇빛처럼 이 세상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는 빛입니다.
 
성경 속 마음의 세계를 알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1~2) 창세기 1장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3~4절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며 빛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 어둠이란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빛 되신 말씀이 전해졌지만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인간의 어두운 마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5장에서 아브람에게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16장에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라고 아브람에게 절망을 말했습니다. 
 
키리바시 청소년부 장관님은
 
여러분, 우리 마음에 빛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우리 마음에 소망이 생겨 기쁘고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아들을 주시고 모든 자손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지만 사단의 음성을 듣으면 사라처럼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했다”는 절망을 마음에 품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빛을 막으면 어둠이 자리잡고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나라 ‘키리바시’는 인구 15만 명의 작은 나라입니다. 청소년부를 맡고 계신 여성 장관님이 2015 한국 월드문화캠프에 참가하여 누가복음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마음이 모든 어둠과 죄에서 벗어나 매우 기뻐하며 감격해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은 마치 전구와 같습니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전등이라도 전기가 끊어지면 전혀 빛을 낼 수 없지만, 몇 천 원짜리 전구라도 전기와 연결되면 밝은 빛을 냅니다. 이처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 마음은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평안과 기쁨, 소망을 얻게 됩니다. 
 
말씀에 반응하는 인간의 마음 
 
저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는데 전 세계 공항 중에서 한국공항이 가장 편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귀찮은 것을 싫어해서 시설을 아주 편리하게 만듭니다. 특히 인천공항은 세계 어느 공항보다도 편리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미국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게이트를 빠져 나오려면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인천공항은 아무리 사람들이 많아도 10분 정도면 게이트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은 모든것이 편리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 못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자살률 세계 1위, 이혼율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는 정말 풍요로운 삶을 살지만 마음속에는 어디에도 쉴 만한 곳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의 병을 고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큰 문제와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작용합니다. 사과나 포도, 복숭아 등 과일들을 우리 입맛에 맞도록 만드신 하나님이, 말씀도 우리 마음에 맞도록 만드셨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만드신 하나님이 기록하신 말씀은 남자든 여자든,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그 마음에 들어가면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든 말씀이 마음에 들어갔을 때 반응하는 것이 너무도 신비합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것은
 
요한복음 1장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3)처럼 말씀 속에는 말씀하신대로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있어서 아무리 어두운 곳이라도 ‘빛이 있으라’라는 말씀이 미치는 곳에는 빛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이 일을 해서 평안과 사랑, 거룩함을 만들고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성경은 그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7장을 읽어 보면, 그 당시 사마리아 성은 아람 군대에게 포위되어서 성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양식이 점점 떨어져 갔습니다. 사람들이 굶주리다가 자기 아이마저 삶아 먹는 비참한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사마리아 성 안에는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사람들의 마음은 절망과 슬픔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 굶주림과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것은 왕의 말도 아니고, 장관의 말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뿐이었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열왕기하 7장에서 어느 날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사마리아 성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왕하 7:1) 한 세겔이란 요즘 식으로 풀이하면 쌀 한 되에 천 원 정도로 양식이 무지무지하게 싸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기근이 심했을때 쌀 한 되에 백만 원 또는 천만 원도 했을텐데,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한다는 말이 전해지자 사람들의 마음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7장 2절에는 “그 때에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장관의 생각에는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窓, 창문)을 내신다 해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여전히 배고픔과 절망, 슬픔 속에 빠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축복된 사람과 저주받는 사람의 차이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느냐, 사단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알콜중독에서 벗어나
 
우리 기쁜소식강남교회의 심 형제님은 구원을 받고도 20년 동안 소주를 마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소주 두 병을 사발에 따라서 마시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고, 나중에는 식사도 않고 소주만 마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가운데 심 형제의 아내 되는 자매님이 남편에 대해 고민하며 저에게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심 형제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그가 술을 끊는 일은 어느 누가 봐도 불가능했습니다. 
심 형제님에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형제님, 죄 사함 받으셨죠?” “예.” “여기 히브리서 10장 14절을 보세요.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거룩해진 겁니다.” “목사님, 제가 지금 이렇게 매일 술만 마시고 술주정하는데 어떻게 온전하고 거룩합니까?” “형제님, 형제님의 생각이 맞아요, 말씀이 맞아요?” “말씀이 맞긴 맞는데….” “성경에는 뭐라고 되어 있죠?” “거룩하고 온전하다고 하셨어요.” “형제님 생각은 어때요?” “그래도 저는 거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씀 앞에서 형제님과 15분 동안 말씨름을 했는데, 그 후에 형제님은 “저는 거룩합니다”라고 마음을 말씀 편으로 옮겼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우리 마음에 맞는 말씀이면 받아들이지만,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 생각과 다른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자신의 형편을 보고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바로 신앙입니다. 
 
형편과 다른 말씀 앞에서
 
열왕기하 7장에서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형편을 보면 내일 아침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형편이 아닌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니까 어떤 일도 능히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에 맞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그 순간 배고픔이 끝나고 사망의 그림자가 끝납니다. 그러나 형편을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는 말이 더 옳아 보입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 두 부류의 사람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에게 말했습니다.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나님의 사람이여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 17:11~12) 사르밧 과부의 마음은 어두움과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 찼습니다. 이때 엘리야가 다시 말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받아들이면 너무나 기쁩니다.
 
하나님의 종을 믿어야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성경을 읽기도 하고 성령의 인도도 받지만, 우리가 말씀을 깨달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의 종이 전해주시는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세워서 그 종에게 당신의 마음을 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엘리야입니다. 만일 그 과부가 ‘어떻게 가루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해? 영감쟁이가 마지막 남은 빵 한 조각을 못 뺏어 먹어서 안달이네’라며 하나님의 종을 의심하면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아무런 힘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을 믿을 때 그 말씀의 능력이 일을 합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려 할 때 사단이 가만히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가루통의 기적이 일어난 때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생각에는 하늘에 창을 낸다 할지라도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이뤄질 수밖에 없으므로 믿어야 합니다. 먼저 사르밧 과부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왔을 때 가루통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그의 마음만 변한 것이 아니라 가루통의 가루가, 기름병의 기름이 변했습니다. 우리도 사르밧 과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쌀통의 쌀과  저금통장이 변하고 우리 삶 전체가 달라집니다.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했다면 가루통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루통은 가루통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서 가루통이 비어 있었다면 그대로 비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의 쌀통이나 저금통장도 빈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美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
 
작년에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을 시작하기 전 마이애미 교회의 송 선교사님이 칸타타 준비를 했던 간증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라시아스 합창단을 초청하려면 식사 준비에 공연장과 여러 가지 부속 시설을 대관해야 하고, 관람객들을 초청하기 위해 칸타타를 홍보하는 일 등 여러 가지 일이 부담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 교회를 방문했다가 만난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목회자 모임에 초청을 받아 칸타타를 홍보했습니다. 처음에는 목사님들이 별 관심이 없었는데, 홍보를 마치자 한 목사님이 “내가 그라시아스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렇게 훌륭한 합창단 노래는 생전 처음 들었다. 정말 최고의 합창단이다. 우리 교회에도 와서 홍보를 해 달라”고 하자, 서로 앞다퉈 자기 교회에서 홍보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느 교회의 한 방송국 관계자는 자신의 방송국에서 30분 동안 칸타타를 홍보할 시간을 주었고 그 소식을 접한 다른 방송국에서도 홍보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관객 천 명을 모으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2천 5백 석을 가득 채우는 일을 보면서 ‘하나님이 나같이 믿음 없는 사람에게도 일하시네’ 하며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
 
세상에 열왕기상 7장처럼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을 것 같습니다. 네 명의 문둥이가 사마리아 성문에 앉았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 죽기를 기다리랴? 아람진으로 가서 항복하자” 하며 말씀을 따라 비틀비틀 하면서 아람진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음걸이입니다. 만일 제가 그림을 그린다면 ‘소망’이란 제목으로 네 명의 문둥이들이 걸어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문둥이들은 굶고 지쳐서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넘어지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보게, 미안해. 나는 도저히 못 걷겠어. 자네들이나 가서 행복하게 잘 살다 죽게. 난 안 돼.” “이 사람아 무슨 소리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힘을 내. 하나님의 뜻이 있어. 아람진을 향해 가자.” 절망 속에 있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성령의 인도와 함께, 종과 함께, 교회의 인도와 함께 걸어간다면 그 걸음 속에 새로운 기적과 능력이 일어나 우리 삶에 말할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네 명의 문둥이처럼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왕이 그 손에 의지하던 장관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여러분 생각에 맞지 않지만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종의 말씀과 사단의 음성은 서로 정반대입니다. 네 명의 문둥이들은 그들의 생각과 맞지 않았지만 말씀을 따라 아람진을 향해 갔습니다. 아람군인들은 갑자기 컴컴한 어둠속에서 말발굽 소리, 병거 소리, 말 울음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군대소리로 듣게 하셔서 그들은 놀라며 ‘우린 이제 죽었다’ 하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모두 도망갔습니다. 몇날 며칠을 굶던 네 명의 문둥이들이 아람진에 와 보니 흔적도 없이 다 도망가고 넘쳐나는 양식과 금은보석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네 명의 문둥이에게 일어난 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엘리사가 장관에게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라고 말했던 것처럼 양식이 풍성한 그 영광스럽고 기쁜 날에 밟혀 죽는 불행을 겪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이나 얼굴이 예쁜 사람, 착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마음에서는 어느 것을 높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여러분의 생각입니까? 여러분의 삶은 말씀을 높이는 삶 입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을 높이는 삶 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 모든부분에 생기를 가져다줍니다. 배고파 아이마저 삶아 먹던 사마리아성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을 때 너무나 복되게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길과 교회와 함께하는 길은 우리가 네 명의 문둥이처럼 걸어가는 길인데, 하나님은 그 길을 통해 우리의 절망을 물리치고 영광스러운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믿읍시다. 
 
- 2015. 7. 26. 주일 오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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