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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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 가볼까
[탐방] 남한산성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4.07.05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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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남한산성(사적 57호)이 6월 22일 카타르 도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4 유네스코 제 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에 세계가 인정한 축성술과 방어전술이 결집된 남한산성(경기도 광주 중부면 산성리)을 찾아가 보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유
 
국제적인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한 UNESCO(유네스코)의 비정부기구인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남한산성이 ▲동아시아지역의 무기발달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군사유산이며 조선의 자주?독립의 수호를 위해 유사시 임시수도로 축조된 유일한 산성도시인 점 ▲자연지형을 활용해 성곽과 방어시설을 구축함으로써 7세기~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점 ▲완전성 측면에서 세계유산적 가치를 반영하는 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고 효과적인 법적 보호체계와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이라는 단일 민간 전담기구를 통해 보존?관리되고 있다는 점 ▲진정성 측면에서는 남한산성의 형태와 디자인, 재료와 구성 물질, 용도와 기능을 비롯해 역사적 구성 요소가 삼국사기 등 다양한 사료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기자가 찾은 6월 29일은 바람 한 점 없는 한여름 날씨였지만 남문에서 수어장대까지는 소나무가 많아 모자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그늘이 만들어져 있었다. 수어장대에 7살 아들과 올라온 김형권(수원 수성구) 씨는 “평소 자주 오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그런지 오늘은 사람이 더 많이 온 것 같다. 앞으로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도 많이 찾을 텐데 지역민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치욕의 역사 현장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거듭나
 
수어장대는 조선 인조 2년(1624)에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으로 지휘관이 군대를 지휘하던 곳이다. 수어장대의 2층 누각의 바깥 정면에 ‘守禦將臺(수어장대)’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고, 안쪽에는 ‘無忘樓(무망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무망루’란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아들 효종이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쪽 땅을 빼앗으려다 실패하고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남한산성에 대해 병자호란때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며 삼전도(지금의 송파 삼전동)에서 9번 머리를 땅에 조아렸다는 ‘삼전도의 굴욕’의 수치스러운 역사 현장으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인조 이후에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다섯 임금이 남한산성 행궁에서 잠을 자고 갔고, 특히 정조는 이곳에서 4박 5일을 머물며 군사훈련, 과거시험 등을 통해 결의를 다지는 장소로 조선의 자존심을 지킨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지만 앞으로 유네스코에서는 매 6년마다 모니터링을 한다고 한다. 이때 세계유산적 가치에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되면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분류가 되고 이후 개선이 되지 않으면 등재 목록에서 삭제된다. 따라서 앞으로가 중요하다. 남한산성의 가치를 찾아 보존하는 일에 온 국민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
 
배지원 기자 jiwonbae@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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