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방인의 때’가 모두 끝나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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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방인의 때’가 모두 끝나고 나면…
[로마서 11장 25절 ~ 33절] 2014. 6. 29. 주일 오전 설교 - 51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4.07.05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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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당시의 삶  
 
제가 구원받고 목사가 되어 50년간 복음 전한 걸 생각하면 정말 꿈만 같습니다. 저는 어려서 장로교회를 다닐 때 죄 때문에 아주 많이 갈등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죄를 씻어달라고 기도해도 죄가 씻어지지 않아 지옥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열아홉이면 한창 클 때라 잠이 무척 많을텐데도 새벽마다 교회 예배당의 종을 치며 목사님께 새벽기도 시간을 알려드렸습니다. 하지만 새벽기도를 마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갈 때는 다시 저의 죄로 인해 고통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돌이켜보면 ‘내가 죄 사함을 받았구나! 모든 죄를 눈처럼 희게 씻음받아 거듭나서 잠시 후면 영원한 그 나라에 가겠구나! 내가 정말 목사야? 내가 정말 죄에서 벗어났어? 내가 정말 하늘나라 가게 돼?’ 하면서 정말 꿈만 같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유대인 외 이방인들에게
 
여러분, 우리 한국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내가 네 씨, 곧 네 후손으로 천하만국이 복을 받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하시고 유대인을 선택하셨습니다. 유대인 외 이방인은 하나님과 율법 없이 수 천 년을 지내왔기 때문에 멸망 당할 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기 때문에 죄인으로 태어나 죽어서 멸망 당해야 했고 구원의 은혜가 전혀 주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이방인의 때’를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4) 그리고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인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땅에 현재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그 예루살렘 성전을 밟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의 때’를 만드신 이유
 
원래 이방인은 저주를 받고 멸망 당해야 할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이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허락하시려고 이방인의 때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가 이때니이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7~8)
어느 날 이방 여자인 수로보니게 여자가 예수님께 찾아와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으니 고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밖에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볼 땐 예수님이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 수로보니게 여자의 딸을 위해 귀신을 쫓아 주셨습니다. 이처럼 이방인은 유대인들이 상종도 않는 천한 자들인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 주후 78년 이스라엘에 로마 병사가 들어와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며 종으로 팔려가서 전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그 자리는 지금까지 이방인의 발에 밟히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백부장, ‘고넬료’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고넬료’는 로마 군인인 이탈리아 백부장으로 이방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고넬료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하여깜짝 놀랐습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하는 날 베드로는 시장하여 먹고자 하는데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큰 보자기가 매어 땅에 드리웠습니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고 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베드로야, 잡아먹어라.”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베드로는 그 환상이 무슨 뜻인지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 집에 시몬이라는 베드로가 있느냐?” “어찌 왔습니까?” “백부장 고넬료는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사람인데, 천사의 지시에 따라 당신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처음으로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으로 갔습니다.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베드로가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아 처음으로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너무나 놀랍게 고넬료 속에 성령이 임하면서 변하여 새로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구원받은 고넬료의 식구와 친구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소문이 퍼지면서 할례자들이 베드로를 힐난했습니다. “어떻게 개 같은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느냐?” 베드로는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시고 말씀하셔서 복음을 전했는데 이방인들도 구원받고 성령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구브로와 구레네에서도
 
다시 사도행전 11장을 읽겠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 11:15~21)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았고, 환난 때문에 흩어진 몇몇 사람들이 구브로와 구레네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들이 구원받으면서 하나님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도 증거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이방인의 때’이다
 
오늘 아침에 읽은 로마서 11장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 11:25)라는 말씀처럼 유대인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이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질 수 있는 이방인의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이방인의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방인의 때가 끝나는 날이 옵니다. 
 
유대인이 구원받는 때에
 
지난번 이스라엘의 장 선교사를 만났는데 “목사님, 유대인들은 아무리 전도를 해도 구원받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장 선교사, 로마서 11장을 읽어보셨어요?” “예, 읽어봤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같이 찾아봅시다.” “…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 11:26) 그때 장 선교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며 영접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말미암아 유대인의 역사 가운데 이방인의 때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할례도 없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서 개처럼 취급받던 이방인이 구원받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구약의 호세아서를 읽어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호 3:4)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패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성전이 이방인에게 밟힌다고 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이스라엘에서 쫓겨나서 전 세계로 흩어져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럼 이방인의 때는 영원히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호 3:6)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사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받는 그때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다고 말씀하십니다. 
 
돌감람나무를 접붙이시고
 
우리가 로마서 11장 말씀을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 11:13~20)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은 참감람나무인데 그 가지를 꺾고 거기에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을 접붙여서 참감람나무 진액을 받아 구원받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이셨다는 말씀은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방인의 때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때가 끝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구원받지 못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습니다. 이방인의 때는 이방인들이 구원받도록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걸 보고 시기하여 그들도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구약 다니엘의 ‘칠십 이레’
 
최근에 이스라엘 장 선교사가 헝가리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사형수 한 명을 만났는데 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가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이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구약 다니엘서의 ‘칠십 이레’에 대한 말씀입니다. 다니엘 9장의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 9: 24~27)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때 다니엘은 하나님이 내 백성과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했다고 예언했습니다. 우리 말에 ‘하루, 이틀,…엿새, 이레’ 하며 일수를 세는 ‘이레’란 말이 있는데 다니엘에 나오는 한 이레가 칠 년이므로 칠십 이레는 사백 구십 년을 뜻합니다. 
 
‘이방인의 때’가 있어서
 
다니엘과 선지자 느헤미야 시대 사이에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성전 벽이 무너졌습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라는 말씀에서 육십구 이레(69×7년)가 지난다는 것은 훼파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는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신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483년이 지난다는 것입니다. “육십이 이레가 지난 후에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육십구 이레가 지난 후 바로 칠십 이레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때를 두시고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은혜의 시대를 여시고  그 이방인의 때가 끝나는 날에 아직 남아 있는 한 이레, 곧 칠 년이 시작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 폐허가 되었고 예루살렘 성도 무너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때가 왔는데 이방인인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가 언제까지 계속되겠습니까? 그동안 전 세계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1948년에 이스라엘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소유했던 토지를 빼앗기고 쫓겨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유대인의 때가 오는 것일까요? 아직 아닙니다. 폐허된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어야합니다. 그래서 현재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설계를 마치고 성전 기구와 성전에 필요한 돌을 깎아 놓고 조립만 하면 되도록 이스라엘 비밀 장소에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준비를 해왔지만 아직까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어야 할 자리에 성전 벽은 그대로 두고 성전 지붕을 없애고 성전 안에 흙과 돌로 채운 후 기초를 다져서 그 자리에 이슬람교 신전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슬람교 신전이 예루살렘 성전 터 위에 있습니다. 그 신전 자리는 유대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가톨릭의 성지이기도 하여 세계 분쟁이 가장 심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곳에 성전을 건축하길 원하지만 언제 그 자리에 성전이 건축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성전이 건축되면 그때부터 마지막 남은 한 이레 곧 칠 년이 시작되는 겁니다. 
 
남은 한 이레, 칠 년이 시작되고
 
다니엘서를 보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단 9:27)라는 것은 그 한 이레인 칠 년이 시작되면 이스라엘 백성은 삼 년 반 동안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지만 나머지 삼 년 반 동안은 미운 물건이 나타나 자기가 하나님이라며 자기를 숭배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언제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될지 모르지만 현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모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성전이 건축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로마 교황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재에 나섰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러분, 이방인의 때가 영원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유대인이 구원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견고한 믿음 위에 서도록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특별한 은혜를 입어 구원받았습니다. 언제까지 우리 육신만을 위해 사시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은혜로 구원받는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습니까? 아무도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칠십 이레 말씀처럼 근래 유대인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면 주님 오시는 날이 임박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허황된 육신 속에 빠져 살지 않고 복음을 위해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이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구원받지 않은 가족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여 그들이 복음의 견고한 믿음 위에 서도록 주의 은혜를 입으시길 바랍니다.  
 
- 2014. 6. 29. 주일 오전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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