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바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 ‘고라 자손’처럼
상태바
마음을 바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 ‘고라 자손’처럼
[시편 46편 1절 ~ 11절] 2013. 11. 3. 주일 낮 설교- 48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3.11.12 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거 수양관 부지를 매입할 때
 
 오래 전, 기쁜소식선교회는 대구 파동에서 몇몇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여름과 겨울에 수양회를 했는데, 수양회 참석자가 천 명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그들을 수용할 만한 수양관이 필요했습니다. 몇 분의 목사님과 상의하다가 “우리도 이제 수양관을 짓자. 산은 일반 대지보다 땅값도 싸니 산에 수양관을 지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 후 부동산을 통해 알아보았지만 산을 매입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제 형님이 돌아가신 지 좀 세월이 흘렀는데, 어느 날 조카딸이 제게 전화를 해서 결혼하려고 사귀는 남자와 함께 인사드리러 온다고 했습니다. 조카의 배우자 될 사람 직업은 부동산 중개업인데 주로 서울 사람들에게 산을 사주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웃으면서 “잘됐다. 수양관 부지를 사려는데 산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그가 전화를 해서 “작은 아버지, 산 보러 가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 가세” 하며 현재 우리 수양관이 있는 산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제게 잘 보이려고 산 주인댁에 가서 사흘을 먹고 지내며 주인이 처음 부른 가격보다 더 싸게 그 산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막대금 지불하는 날 조카딸이 제게 전화했습니다. “작은 아버지, 그 사람 알고 보니 사기꾼이에요. 그에게 돈 주지 마세요.” 하지만 저는 ‘그가 네게 사기쳤는지 몰라도 나를 위해 일 많이 했다’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그날 수고비로 그에게 100만 원을 주었더니 꾸벅 인사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습니다. 하나님이 제 조카딸을 통해 그 사람을 만나게 해서 산을 매입하도록 하셨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도로를 새로 내면서
 
그 당시 산에는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없이 오솔길만 있었습니다. 땅 주인은 그 산을 이용해서 사업을 하려다가 포기하고 중장비 일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무척 고마워서 “선생님, 앞으로 저희가 이 산을 제일 아름답고 가치있는 산으로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곁에 있던 형제에게 “도로를 어떻게 내야 하나?”라고 물었더니 그분이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도로를 내려고 하십니까? 도로 공사를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매년 봄마다 마을 행사가 있으면 돼지 한 마리를 사서 선물하여 제가 동네 사람들과 친분을 두텁게 해 두었습니다. 제가 길을 낸다고 하면 동네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그분이 2km 도로 공사를 맡으셨습니다. 
도로를 거의 완성한 후, 콘크리트 포장을 해야 하는데, 레미콘 회사에 맡기면 일주일 만에 끝낼 일을 시멘트를 사다가 직접 작업하니까 한 달 넘게 걸렸습니다.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경운기를 몰고 와서 길을 막았습니다. “이 산에 길을 내려면 돈을 내놓으세요.” “시골 인심이 왜 이렇게 사납죠? 길을 내서 같이 사용하면 되는데 왜 이러십니까?” “안 됩니다. 돈을 내세요.” “얼마를 드릴까요?” “10원도 깎지 말고 100만 원 내세요.” “50만 원 드리면 안될까요?” “이걸 깎으려고 해요?” 하며 동네 분이 눈을 부릅떴습니다. 결국 100만 원만 을 드리고, ‘기쁜소식선교회에서  도로를 관리하며 주민들과 함께 사용한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습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이 도우시고
 
제가 산을 매입한 날부터 수양관을 짓기 위해 건축허가와 산림훼손 허가 등 김천 시청의 도장을 약 300개 정도 받아야 했는데 순간순간 하나님이 도왔습니다. 제 생전에 건축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바로 대덕수양관이 첫 작품입니다. 얼마만한 크기로 수양관을 지어야할지 몰라서 건평 한 3천 평 쯤 짓자고 했는데, 수양관 앞쪽에 있는 묘를 주인이 옮기지 않아서 그곳에 건축을 못하니까 현재 사용하는 건평 700평인 가장 알맞은 크기의 수양관이 되었습니다. 여름과 겨울에 수양회를 하며 사람들이 복음 들을 것만 생각하면서 건축했는데, 매번 하나님이 하나씩 하나씩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신 간증을 글로 쓰면 아마 한 권은 될 것 같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서
 
고라 자손이 쓴 시가 시편 42편부터 49편까지 나옵니다. 고라는 이스라엘 레위 지파로 고핫의 손자인데 저주를 받았습니다. 민수기 16장에서 ‘고라’를 따르던 250명이 당을 지어서 하나님의 종 모세와 아론을 거스렸습니다. 그들은 레위 자손으로 아론과 같이 성소에서 봉사하는 일을 했는데 “왜 모세만 왕 노릇 하고, 아론만 제사장 노릇 하느냐? 우리도 제사장 되게 해 줘라” 하며 불평했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의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민 16:7) “모세, 네가 우리의 왕이 되려 하느냐?” 모세가 몹시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 …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민 16:24~30)  갑자기 그들 밑의 땅이 쫙 갈라지더니 고라 자손이 빠지자 땅이 닫혔습니다. 사람들이 도망가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은혜와 긍휼을 구하자’ 
 
살아남은 고라 자손들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가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우리 조상이 하나님의 종인 모세를 거스렸다고 꼭 우리 조상을 죽게 하고, 분향했던 250명을 모두 죽여야 하셨나요?’ 하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좌절 속에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고라 자손들이 모여서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해서 무슨 유익이 있나? 우리 조상은 죄를 짓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었지만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데, 하나님 앞에 은혜와 긍휼을 구하자’ 하며 그들이 하나님을 찾으며 부르기 시작한 노래가 시편 제2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라 자손이 이렇게 하나님 앞으로 긍휼을 구하러 나아갔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버렸겠습니까? 받아주셨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그 해답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낮추시는 이유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아픔과 괴로움도 주십니다. 저는 이번 서울지역 성경세미나 기간에 사기를 당해 사업에 실패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외모로 보면 품위 있고 많이 배운 분처럼 보였습니다. 그분이 우리 집회 소식을 듣고 와서 둘째 날 저녁에 저를 만나서 신앙 상담을 하셨습니다. ‘이분이 사업이 잘 되었다면 바빠서 집회에 오실 시간이 있었겠나. 이렇게 나와 마주 앉아 복음 들을 시간이 있었겠나. 하나님이 이분의 사업을 실패하게 해서 은혜를 베푸시려 하셨구나’ 하며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제 집회를 마쳤을 때 그분이 저를 찾아오셔서 구원받아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생 살다가 지옥 가지 않고 구원받도록 교만한 우리 마음을 낮추시고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하십니다.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편 42편을 보면,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고라 자손은 그 누구보다도 곤고했는데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간절하게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들이 ‘우리는 저주받은 민족이야. 우리 조상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을 거스렸어.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조상을 죽였어.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죽었을 사람이야’라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조상을 버렸다는 마음에서 벗어나자. 우리가 이런 생각 속에 있으면 다시 저주를 받겠구나.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을 찾자’ 하면서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 42:2~3) 이 시에서는 언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뵐 수 있을지, 기쁠 때 뵈어야 할지, 슬플 때 뵈어야 할지, 눈물로 뵈어야 할지, 찬송으로 뵈어야 할지, 간절히 하나님을 찾아가는 고라 자손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노래
 
사단은 항상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의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그거 안 돼. 어려울 거야. 다음에 해’라고 가장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을 넣어 줍니다. 
시편 42편 3절에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는 노래가 나옵니다. 고라 자손은 “너의 조상들은 저주를 받았어. 너의 하나님은 없어. 하나님이 너를 버렸으니까 기도해도 소용이 없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낙담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쓰라린 아픔과 멸시, 좌절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주받은 고라 자손만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민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 49편에 이르러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해서 다른 어느 족속보다 하나님과 가깝고 충만한 마음으로 찬송하는 걸 봅니다. 그들의 어려움이 더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계기가 됐고,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노래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라 자손의 노래를 기록한 것은
 
하나님은 왜 신구약 66권 가운데 고라 자손의 노래를 기록해서 우리 마음을 이끌려고 하십니까? 우리가 과거에 죄를 짓고 악을 행했고,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했으며, 주의 종을 원망했을지라도 이 고라 자손의 시를 보고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 저주받을 길밖에 없으니까 하나님에게 돌아오라고 고라 자손의 시를 기록하신 것으로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과 기쁨이십니다. 시편 42편 4절에서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하며 전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다른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자유로웠는데 어쩌다 보니까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고 성도들과도 마음이 멀어진 마음의 상태를 노래했습니다.  
 
마음을 바꾼 고라 자손
 
시편 42편 5절을 보면,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고라 자손의 마음이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으로 나갈 때 양심에 가책이 되어 부담스럽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지 않고 나를 돕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고라 자손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망했던 사람들의 후손인데, 그들이 ‘우리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평하다가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도 고라 자손과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유익을 주시면 좋아하고 기뻐하다가도 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사단이 자주 우리에게 ‘내가 죽어도 교회 가지 않을 거야’라는 충동을 주는데, 지금도 그 소리에 방황하고 좌절하십니까? 우리가 시편 42편부터 45편까지 읽다 보면 좌절해서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했던 고라 자손이지만 그들이 마음을 바꾸어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니까, 어느새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음성 가운데
 
오늘 아침에는 시편 46편을 읽었습니다. 시편 46편은 고라 자손의 마음이 하나님과 아주 가까워졌고,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많이 열린 상태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이 노래는 시편 42편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하나님과 마음이 가깝고,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시고 피난처 되신다는 믿음이 고라 자손에게 생긴 것을 노래했습니다. 
반대로 사단은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고, 하나님의 종을 거스르며 비방하도록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쪽으로 흘러간 경험이 모두 있을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지면 저주와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42편에서 고라 자손은 그 어려움과 어두움 속에 있으면서도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네 기도도 응답 안될 거야”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소리를 들으면 안 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돼.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돼. 나는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의 자비 앞으로 나아가야 돼’ 하는 쪽으로 하나님이 고라 자손의 마음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전에 없던 새 마음을 주셔서
 
시편에서 고라 자손이 하나님을 찾아서 갈급하게 나오자,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46:1~3)라고 고라 자손이 노래했습니다. 
옛날에는 고라 자손이 파도만 쳐도 ‘아이고 우리 조상들이 죄를 범해서 그래. 그때 우리도 죽어야 했는데.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려고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고라 자손이 시편 46편에 와서는 ‘이제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다’ 하며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노래합니다. 누가 저주 속에 헤매던 그들의 마음을 이끌어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믿음을 갖도록 했습니까? 바로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이 우리가 전에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새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일하십니다.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오늘 아침, 여러분에게 고라 자손의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노래를 읽으면서 제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인 것을 보면서 마치 고라 자손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우리들이 이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기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 46:5)라는 노래처럼 하나님이 이른 새벽부터 우리를 도와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도다”(시 46:7~9) 하며 우리 삶 속에서 전쟁을 그치게 하고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46:10~11)라는 고라 자손의 노래처럼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이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지금도 사단은 우리에게 얘기합니다. ‘교회 가봐야 별것 없어. 말씀 들으면 늘 하는 소리, 목사님이 너 싫어할는지 몰라.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 안하시잖아. 너는 믿음도 없고 복음 전해서 아직 구원받은 사람도 없잖아.’ 우리의 믿음을 녹이기에 합당한 이야기로 사단이 수없이 속삭였지만 이 예배당에 오셔서 앉아 계시는 형제자매 여러분, 얼마나 복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이끄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하실 겁니다. 
오늘 아침, 고라 자손의 노래가 내 노래가 되고, 고라 자손의 찬송이 내 찬송이 되며, 고라 자손의 간증이 내 간증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죄 사함 받고 거룩한 성도라 일컬음 받으며 주님과 거할 수 있는 복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2013. 11. 3. 주일 낮 설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