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우리 겨레의 노래, 세계의 노래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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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우리 겨레의 노래, 세계의 노래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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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9.15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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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가적인 행사에서 불리울 때 그 자체로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아리랑. 이제 세계의 노래가 된 아리랑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민족의 명절 추석을 맞아 아리랑의 발자취를 찾아보았다.

한국인에게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아리랑은 1926년 10월 1일 서울 종로 단성사(團成社)에서 처음 상영된 나운규의 영화「아리랑」의 주제가 ‘신아리랑’이다. 당시 민족의 울분과 서러움을 그린 이 영화의 ‘신아리랑’은 그전까지 불리던 전통 민요의 가락과 내용을 모태로 편곡된 노래로, 그 주제 또한 본래의 것에서 한(恨)의 정서를 부각시켰다.
아리랑은 비관적인 삶을 해학적으로 전개한다는 점이 특징인데, 어느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슬픔을 차단하고 처절함을 표현할 때조차 절망 자체가 아닌 절망을 이기려는 굳센 의지를 동시에 표현한다. 암울했던 시대에는 독립운동가로 불렸고, 고향을 등지고 떠난 이들에게는 서러움과 그리움을 달래기 위한 위로의 노래였던 아리랑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적인 행사에서는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아리랑의 발상지 ‘정선의 아리랑’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2012년 12월 5일 아리랑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오르는 아리랑은 정선아리랑이나 진도아리랑처럼 특정 지역의 것이 아니라 후렴구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끝나는 노래는 모두 포함한다.
정선은 아리랑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도시이다. 오늘날의 아리랑이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그 중심에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 정선아리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진도아리랑이 육자배기조, 밀양아리랑이 정자소리조라면 정선아리랑은 메나리조로서 8도 아리랑 중에 오로지 정선아리랑만이 국가가 지정한 중요무형문화재이다.
인구 4만 명에 불과한 정선군이 오랜 세월 축적한 아리랑의 기록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노력한 결과가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됐다. 또한, 정선아리랑제, 정선아리랑보존회, 정선아리랑문화재단, 군립아리랑예술단으로 이어지는 전승 및 보전체계에 민간단체인 정선아리랑연구소가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동안 수집?채록된 가사수도 3,000여 수에 달하며, 이르면 올 연말 8,700여 수에 달하는 정선아리랑 가사 사전이 발행될 예정이다. 한편, 지난 9월 5일에는 정선아리랑 전시문화공연센터 기공식을 가졌는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아리랑의 가치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리랑을 한자리에서 만나다

오래전 몇 백 개로 불려지던 아리랑은 지금은 약 50개의 아리랑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 지역의 음악적 특징에 따라 대표적으로 세 지역으로 나누어지는데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가장 널리 분포된 동부민요는 정선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엮음아리랑 △경기민요인 아리랑, 구조아리랑, 밀양아리랑 △남도민요인 진도아리랑이다. 이번에 이 아름다운 노랫가락을 한곳에서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국립국악원은 8월 30일부터 2014년 2월 28일까지 국악박물관에서 기획전시 ‘겨레의 노래, 세계의 노래 아리랑’을 열고 있다. 이곳에서는 아리랑을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킨 명인?명창들의 유물 75점을 공개해 한민족 최초의 아리랑 음원이 담긴 원통형 음반과 악보를 듣고 볼 수 있다. 아리랑은 바야흐로 세계의 노래가 되었다. 이제 우리가 아리랑을 발전시켜 아리랑이 생활 속에서 누구에게나 불려지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희로애락 또한 해학으로 풀어갈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

배지원 기자 jiwonbae5@goodnews.or.kr


<아리랑의 기원>
아리랑의 기원은 강원도 태백산맥 산간에서 서민들이 밭매고, 나물 뜯고, 모심기하며, 때로는 신세타령을 하면서 불렀다. 정선지역을 중심으로 구전되던 아리랑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1865년 수행된 경복궁의 중건 공사로 전국에서 일꾼들이 몰려들었고, 그때 동원된 소리꾼들에 의해 한양에 퍼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어 同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에 의해 그 지역의 토속적인 노동요에 아리랑 후렴구가 붙여져 재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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