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볼리비아 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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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볼리비아 포토시’
볼리비아 산타크루스=조다혜 통신원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3.08.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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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가장 가까운 도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도시가 있다. 그곳은 바로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의(국기 중앙에 그려져 있는 체로 리코 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포토시이다. 이 도시는 1545년 체로 리코(4,824m) 산에서 은(銀) 광산이 발견되면서 건설된 곳으로 신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광산 도시이다.
‘포토시’란 말은 옛 전설에 따르면 1462년 잉카제국의 한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아 산을 헤매다 은광을 발견했는데, 은을 캐려고 했을 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드리지 마라. 이것은 너희 것이 아니라 뒤에 올 이들의 것이니라.” 목동이 왕에게 ‘포토시(굉음)’를 들었다고 보고했고, 그것이 도시의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100년 후,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황금을 바치며 그들을 맞았던 것도 이 전설(?)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막대한 양의 은이 생산되면서 포토시에는 부귀영화를 꿈꾸는 이들이 몰려들었다. 17세기 후반에는 20만 명이 넘는 인구, 86개의 교회, 20여개 성당 등이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아직도 스페인에는 관용적으로 ‘발레 온 포토시(valer un Potosi)’라는 표현이 있는데 ‘포토시만큼 가치 있는’ 이라는 뜻으로 부(富)를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 건축물로는 가르멜수도회의 산타테레사 성당(1691년)과 왕립 조폐국(스페인 유통 은화를 제작)으로 알려져 있다.
 
포토시 광부들의 애환과 슬픔
 
하지만 밝은 빛 이면에는 검은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포토시 체로 리코 광산 노동자들은 36~48시간을 쉼 없이 일해야 했고, 하루에 죽어간 원주민이 1,500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원주민들의 노동력이 약해지자, 1608년부터 지배자들은 총 3만여 명의 아프리카 노예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그렇게 부유했던 포토시는 볼리비아가 독립한 1825년 광산은 이미 고갈되었고, 20세기에 들어와 주석을 채굴하였으나 도시 경제는 기울어졌다. 독립과 함께 광산은 원주민 협동조합 소유가 됐지만 광부들의 고단한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아 원시적인 작업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지하 450m까지 들어가야 하는 광부들에게 코카잎과 코카로 만든 음식은 필수다. 그러나 그 코카조차도 스페인 지배자들이 노동력 향상을 위해 일종의 마약인 코카를 씹게 했다는 것이다. 이곳 광부들은 수은 중독과 진폐증을 앓아 평균 수명이 40세밖에 되지 않는다. 
처음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왔을 때 5,130m였던 체로 리코 산은 현재 467년 채굴로 300m 이상 깎였고, 산 전체가 개미굴처럼 변해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깊은 갱도에서 현재 1만 2천여 명의 광부들이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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