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든 죄를 사(赦)해 놓으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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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죄를 사(赦)해 놓으신 예수님
[이사야 53장 1절 ~ 6절] 2013. 7. 14. 주일 낮 설교 - 47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3.07.1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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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문화캠프 개막식을 마치며

올해 IYF 월드문화캠프 개막식은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음악회와 함께했습니다. 작년 개막식에는 공연 전에 아슬아슬하게 비가 그쳐서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해도 공연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비가 굉장히 많이 내리다 그쳐, 하나님이 음악회를 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날씨를 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또한 수많은 대학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참 행복했습니다.
어제는 부산에서 이른 새벽부터 선교사님들과 신앙 상담한 뒤, 전주로 향했습니다. 제3회 세계청소년부 장관 포럼 참석차 한국에 오셨던 각국의 장관님들과 대학교 총장님들을 모시고 (주)운화를 견학하며 선물도 받고 ‘또별’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력 교정이 필요한 분들이 계셔서 우리 선교회 장로님이 운영하시는 대전의 안과에 들렀습니다.
그날 저는 좀 피곤했지만 행복했던 것은 세 분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산에서 전주까지는 케냐의 케냐타대학교 총장님이, 전주에서 대전까지는 다른 분이, 그리고 대전에서 서울까지 또 다른 분이 저와 같은 차를 타고 오셨는데 그중, 케냐타 대학교 총장님은 교회를 아주 열심히 다니시는 분이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최근에 성경을 읽는 가운데 이사야 53장 말씀이 특히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사야는 어떤 사람이 가시관을 쓰고, 채찍에 맞아서 상처 난 몸으로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하나님의 계시로 봤습니다. 이사야는 ‘저분이 누구일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런 형벌을 받는 거야?’ 하며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답하셨는데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기록한 것이 이사야서 53장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 사람이었는데, 그 때 이미 예수님이 오셔서 어떤 일을 당할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채찍에 맞고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실 거라는 글을 썼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 700년 후에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2천 년이 지난 지금 이사야가 기록한 그 말씀이 살아서 제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내가 죄를 씻으려고 애썼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우리는 죄를 씻어야 한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착한 일을 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죄를 지으면 회개해야 죄 사함 받는다”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며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은 죄를 다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제 마음에는 죄가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예배를 드릴 때면 죄가 생각나서 힘이 빠지고 고개가 숙여지는 죄인이 되니까 고통스럽고 예배가 더욱 부담스러웠습니다.
저는 매일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데, 그 일이 성경적으로 틀렸는지 몰랐기 때문에 내가 좀 더 착한 일을 해야 하고, 죄를 통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삶을 바꾼 말씀이 있어서

저는 이사야 성경을 수십 번 읽었는데, 어느날 신기하게 이사야 53장 1절의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라는 말씀이 제 마음에 부딪히며 제가 틀렸음을 지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다시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서 저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전화하고 싶었습니다. “여보세요. 이사야 선지자이십니까? 저는 대한민국의 박옥수입니다. 왜 그런 말을 하셨죠? 당신이 살아 있을 때 아무도 여호와를 믿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선지자로 있을 때 웃시야 왕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왕은 하나님을 섬기는 왕이 아니었습니까? 그가 당신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까? 서울을 보세요. 서울에 얼마나 많은 교회가 있습니까? 주일마다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데 그들이 다 하나님 믿는 거 아닙니까?”
이사야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 아무도 하나님과 말씀을 믿지 않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 분

이사야 53장 2절을 봅시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제가 김천에서 살 때, 하나님이 집을 처음 마련해주셨던 그날 저는 하루 종일 비를 맞고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주님, 당신이 세상에 계실 때 방 한 칸 없었는데 비가 올 때는 어느 처마 밑에서 피하셨습니까? 바람 부는 날에는 어디서 바람을 피하셨습니까? 주님, 제가 뭔데 저에게 이런 집을 주십니까?’ 하며 제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좋은 지위를 갖지 않았습니다. 키가 크거나 잘 생겼다는 등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루 종일 말씀을 전하시고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다가 주무셨습니다. 그냥 옷 한 벌로 지내시다가 산에 쓰러져 주무시고 아침에 일어나시니까 그 옷에 먼지가 묻어 있고, 음식도 제대로 드실 수 없었습니다. 머리도 자주 감지 못하시고 세수도 자주 못 하신 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멸시했고 아무도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빵이 필요할 때나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는 여자들 몇 명만 남고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래도 나는 신앙이 괜찮아’

이사야 53장 3절을 봅시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오늘 아침,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주님을 귀히 여기십니까? 여러분은 세상과 욕망을 더 사랑하지 않습니까? 정말 주님 앞에서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을 버릴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 맞는 신앙을 하면서 ‘그래도 나는 신앙이 괜찮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종종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생각하면 저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미워집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지옥 가지 않기 위하여, 단지 잘 살기 위하여 그냥 예수님을 믿는 형식만 따를 뿐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아 구원받은 형제자매들도 자기 생각과 욕망을 강하게 따라가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이사야 53장 4절을 봅시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질고를 지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의 질고를 지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원한 저주와 멸망을 받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그런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예수님을 믿습니까?
계속해서 5절을 봅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소홀히 생각하겠습니까?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그걸 믿는 사람들이 자신을주님 앞에 드리는 데 주저하겠습니까? 또 자기 욕망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에티오피아 내시가 복음을 듣고

어제 저는 도저히 저와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 분들과 차를 같이 타고 서울로 오면서, 제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사야 53장 6절 말씀을 읽어드렸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에티오피아 내시가 이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 길의 병거 안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대체 그가 누구야? 그가 누군데 우리의 질고를 졌지? 그가 누군데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공부도 많이 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는데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빌립이 병거 가까이 가자, 에티오피아 내시가 빌립에게 병거에 타라고 해서 빌립이 병거 안에서 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제 저도 그 말씀을 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여러분,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그는’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참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의 문제는 자기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못하면 지옥 가고, ‘내’가 잘하면 천국 가고, ‘내’가 잘못하면 저주를 받고, ‘내’가 잘하면 복을 받는다고 배워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르게 이야기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는 말씀에서 다른 문제는 몰라도 죄의 문제라면, 하나님인 내가 죄를 예수님에게 넘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는 악해. 네가 하는 모든 것은 더러워져. 너는 손대지 마. 네가 죄를 씻으려 하지 말고, 내가 죄를 사해 놓은 것을 네가 받아들여. 너는 죄를 씻을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어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착각하는데,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랫동안 다녀도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죄를 사하는 일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죄를 예수님께 넘기는 일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하기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여러분, 이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나도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

오랫동안 위궤양을 앓아 오시던 저희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 피를 토하셨습니다. 그 방에 같이 있던 아내와 저는 곧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말씀하신 대로 장례를 치러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몸은  그렇게 모시면 되는데, 아버지의 영혼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아버지가 아무 말씀 없으시더니 한숨을 푹 내쉬면서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 그런데 너무 늦었다.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한 공로가 있어야 가지.”
저희 아버지는 성경을 모르셨지만 하늘나라에 가려면 자신이 뭘 잘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앙이 잘 안 되는 것도 자기가 선을 행하지 않고 죄를 지었다며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사야 53장에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죄를 사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죄 씻는 일을 예수님께 맡겨야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도록 하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 죄 씻는 일을 맡겨야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다 기억하거나 깨닫지도 못하니까 우리가 죄를 완벽하게 예수님께 넘긴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2천 7백 년 전에 이사야는 벌써 그걸 보고 이 글을 쓴 것입니다. 우리가 다 잘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무리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담당하셨기 때문에 죄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건너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의 문제를 예수님이 완벽하게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아닌 자기 생각을 믿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죄에 대한 가책을 느끼며 자기가 그 죄를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자기가 그 죄를 씻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53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대신 하시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무리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사야 성경에서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하며 사람들이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을 믿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내 생각에 죄가 기억나니까 죄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악하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으로는 “너희가 죄를 지었다. 그러나 나 여호와가 너희 무리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켰다”고 기록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그런데 오늘날 참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기가 죄를 씻으려고 애씁니다.

우리가 죄를 위해 할 일이 없어

예전에 제가 개인적으로 신앙상담했던 분 가운데 선장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항상 거친 파도와 싸우며 오랜 항해 속에서 아내와 가족을 그리워하며 바다 위에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에서 십분의 일을 꼭꼭 하나님께 드리니까 자신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어렵게 번 돈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며 자기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십일조 내는 것은 잘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십일조 드린다고 천국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착한 일 했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많이 했다고 천국 가는 것도 아닙니다. 죄를 씻어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씻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고, 그걸 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며 예수님이십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손톱만한 죄도 씻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잘 모르니까 자기 방법대로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6절에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다면, 이미 우리의 죄가 씻어졌으니까, 우리가 죄를 위해서 할 일이 없습니다.
이사야는 우리 죄가 어떻게 씻어졌는지를 5절에서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씻음을 받아서 거룩해졌습니다. 우리가 죄를 위해 할 일이 없도록 완벽하게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복음을 위해 사는 삶

히브리서 10장 17절에서 “우리 죄와 허물을 다시 기억치 않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죄가 해결됐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너희 죄를 기억하든 말든 간에 나는 너희 죄와 허물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는 우리가 씻는 게 아닙니다. 죄를 예수님께 넘기는 것도 우리가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만 하십니다.
 만일 누군가 “죄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이제 없습니다”라는 대답은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듣고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복음을 위해 사는 삶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흐리게 하고, 죄가 사해지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해서 말씀이 아닌 내 생각과 방법을 따라 죄를 씻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이제 이사야가 전한 말씀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죄가 다 예수님에게 넘어갔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가 씻어진 사실을 믿는 게 믿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어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 작은 예수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 2013. 7. 14.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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