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시대’를 끝내고 ‘은혜의 시대’를 연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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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시대’를 끝내고 ‘은혜의 시대’를 연 예수님
[요한복음 8장 1절 ~ 11절] 2013. 7. 7. 주일 낮 설교 -46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3.07.1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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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를 생각하면서

성경을 읽어보면 마가는 마가복음을 기록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한 토막 넣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잡혀 가셨을 때 한 청년이 벗은 몸으로 홑이불을 두르고 가다가 잡히매 그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마가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어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역사 외에 추하고 더러우며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 점을 생각해 보면 저는 목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저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가처럼 제 부족함이나 연약함을 소상하게 이야기하면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목사님에게 저런 부분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구나. 이분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큰일 날 사람이구나. 이런 분을 바꾸신 하나님이 감사하다’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데 서투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그린 「요한」

요한도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성경 속에 나타내고 싶어서 ‘처음 시작할 때 나를 나타낼까? 아니면 중간쯤, 아니면 마지막에 나타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자신을 성경에 나타낼 때 자신의 이름을 등장시키지 않고 자기와 비슷한 한 사람을 세워서 나타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 것처럼 말입니다.
어느 날 요한은 간음한 여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간음한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 여자를 끌고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늘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요한은 이 요한복음 8장을 통해 그 여자 같이 더럽고 악한 자신에게 예수님이 어떤 은혜를 입혀 주셨는지를 기록하면서 한평생 이런 예수님을 섬기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어지럽혀

사람들이 성장해서 결혼할 때가 되면 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해서 한 남편과 한 아내로서 사랑하고 자녀를 낳고 키우면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귀한 섭리입니다.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은 아기를 많이 낳는 편입니다. 저는 아기를 가져 배가 불룩한 자매님들을 종종 보면 ‘하나님이 이 자매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생명을 주셨구나’ 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키우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입니다.
이렇게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 것은 복된 일인데, 사단은 이런 질서를 깨트려서 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내 아내 아닌 다른 여자에게 끌려 죄를 짓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악하게 여기시는 겁니다. 구원받은 형제자매들도 그런 유혹을 받을 때가 있지만,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이 그것을 강하게 거부하는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바르고 복되게 살 수 있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형제자매들은 부부 사이가 화목하다는 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물론 부부가 다툴 때도 있습니다만, 곧 회복됩니다. 저는 아내와 43년을 살았는데, 아내와 성격이 안 맞을 때가 많았습니다. 어떨 때는 초저녁부터 시작해서 새벽 두세 시까지 싸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 아내가 늙어가는 것을 보면 애처롭고 미안해서 업어주고 싶은 마음이 자주 생깁니다.

간음한 여자를 살리시려고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이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끌리는 그 마음을 자신이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우리 마음이 예수님과 강하게 접촉되면 분노가 일어날 때 우리는 그 분노를 잠재울 만한 힘이 없지만, 예수님이 그런 우리 마음을 다스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무척 어려운 문제들이 아침에도 저녁에도 수없이 생깁니다. 어젯밤에는 IYF 월드문화캠프 전야제가 있어서 부산에 갔다가 12시가 넘어 도착했는데,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아서 오늘 아침에 설교할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제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여자가 되어 말씀을 읽어 보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 여자를 예수님 앞에 놓고 예수님을 고소하기 위한 조건을 찾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자를 더럽고 악한 여자로 정죄하지 않으시고 살리시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실직자가 당하는 고통

우리가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좋은 차도 있고 음식도 있고 돈도 많으면 그냥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차가 고장이 나서 쓸 수 없게 되면 불편을 느끼게 됩니다. 또 회사가 부도나서 월급을 못 받으면 생활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제가 집회 강사로 미국 애틀랜타교회에 갔을 때 교양 있게 생긴 한 분이 오셔서 저와 신앙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구원받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제가 이번 집회를 마치고 난 뒤에 애틀랜타 교회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교회 집회에도 참석하시겠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참 미안하지만, 저는 실직자여서 갈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실직하면 생활이 정말 어려워집니다. 미국인은 한국인처럼 전세 사는 것이 아니라 월세를 내기 때문에 직장에서 월급을 못 받아 6개월 정도 월세를 못 내면 집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차도 빼앗깁니다. 그러다 보니 일 년 정도 직장을 쉬면 거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만난 그분은 굉장히 똑똑하고 학벌도 있는 분인데, 실직하고 몇 개월 지나니까 차도 없고 집도 없는 거지가 된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멸망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를 좀 지어도 밥 먹고 사는 데 별 문제나 어려움이 없으면 편하게 잘 삽니다. 그러나 간음 중에 잡힌 여자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 그 정도가 아니라, 당장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여자를 보셨을 때 ‘내가 이 여자를 살리지 않으면 이 여자가 멸망을 당하겠구나. 이 여자를 살려야겠구나’ 하셨습니다. 
제가 요한복음 8장을 보면서 감사한 것은, 요한은 간음한 여자를 자기의 이야기로 그렸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형편을 보면서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죄로 인해 멸망을 받고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율법을 범한 여자

예수님이 간음한 여자를 살리시기 위하여 첫 번째 하신 일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땅에 글씨를 쓰신 것입니다. 율법은 B.C. 1491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서 돌판 두 개를 받은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율법이 내려오기 전에는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고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내려오고 난 후에 간음한 여자가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율법에 의해서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은 이 말씀을 기록하면서 예수님께서 왜 땅에 글씨를 쓰셨는지 예수님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떤 대답을 하실지 기다렸지만, 예수님은 허리를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저에게 예수님이 땅에 뭐라고 쓰셨는지 묻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무엇을 쓰셨는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자를 살리기 위해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신 것은 분명합니다.
성경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예레미야 31장 31절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는 구절에 이와 관계된 말씀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으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첫 언약은 율법입니다. 대표적인 율법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등의 십계명인데, 그중의 하나라도 어기면 영원한 지옥에 가야 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는 법이지 구원하는 법은 아닙니다. 그래서 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그 여자처럼 잡히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간음한 여자가 멸망을 당해야 하는 것과 똑같은 죄를 가진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간음한 여자를 구원했는지 그 사실을 보고 자신도 구원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까지 있었던 율법의 언약이 아닌, 또 다른 언약을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아셨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새 법을 만드셔야 했습니다.

새 법을 쓰신 예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3~34)
첫 번째 언약인 율법은 비석에 기록했지만, 둘째 언약인 새 법은 우리 마음에 기록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살리시기 위해서 법을 새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첫 언약을 손가락으로 두 돌판에 기록하셨는데, 새로 바뀐 둘째 언약도 손가락으로 땅에 쓰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34절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사해놓으시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않겠다는 둘째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은혜의 새 언약

첫 언약인 율법으로 여러분을 재판하면 여러분은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슬퍼하며 살아야 하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둘째 언약인 새 법으로 재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새 언약으로 여러분을 재판하면 여러분은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도 첫 언약인 율법으로 재판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새로 기록한 법대로 재판하면 그 여자는 죽지 않아도 됩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율법 아래에서 자신이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하지만, 그러면 결국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둘째 언약의 효력은 예수님이 간음한 여자를 만났을 때부터 발생했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자를 살리시려고 했는데, 율법으로는 절대로 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법을 만드시고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새 법을 기록함으로 그때부터 ‘율법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은혜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율법도 손가락으로 기록하셨고 새 법도 땅에 손가락으로 기록하셨습니다. 땅에 기록하신 것은 우리 마음에 기록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구절을 보면 하나님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고 밝히시며 은혜의 새 법을 주셨습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모세의 율법을 의지하면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데, 이 은혜의 법을 의지하면 그 죄에서 해방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법 앞에 서기를 원합니까? 율법 앞에 서시길 원합니까, 아니면 은혜의 새 법 앞에 서길 원하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새 법 앞에 선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단 하나입니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리 교회의 김 형제는 예전에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형제를 율법에 따라 재판한다면 그 형제는 살인자이기 때문에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새 법으로 재판하면 하나님이 “내가 김OO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선고하시기 때문에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이 죄에서 해방시키다

여러분,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는 이 말씀이 정말 영광스럽고 복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이 말씀을 읽어봅시다. “내가 OOO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OOO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어떤 할머니가 세례 문답을 통과하기 위해 며느리와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어머님, 목사님이 질문하실 때 예수님이 누구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냐고 하시면 내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다고 대답해야 합니다”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례문답 시간에 목사님이 “할머니, 예수님이 누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까”라고 묻자 할머니는 자신있게 “우리 며느리 죄를 위해서요”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겠지요. 하나님이 여러분의 죄악을 사하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걸 믿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겁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율법 아래에서 늘 “주여,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죄 사함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은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심판하시기 전에 첫 언약으로는 그 여자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둘째 언약을 땅에 쓰신 후 일어서셨습니다. 그리고 “여자여 너를 고소하는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여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제 하나님은 새 언약으로 여러분에게 명백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니 또 죄가 있느니 없느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기억 속엔 우리 죄가 없습니다. 여러분 기억 속에 죄가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비우십시오. 그리고 죄 사함의 확신 가운데서 행복하게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겁니다.
이제부터는 그런 확신 가운데서 흐릿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분명한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일예배도 나오시고 수요예배도 나오십시오. 예배에 늦지 마시고요.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 헌금도 드리고 십일조도 드리십시오. 전도도 끊임없이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너무나 복되게 이끌어 가실 줄 믿습니다.

담대하게 하나님을 섬겨야

최근에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는 걸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이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게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고 마음을 드려 하나님을 섬기길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죄 사함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으셨기 때문에 다시는 내 죄를 기억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기억하지 않겠다고 했더라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시기 때문에 절대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이제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4)는 이 말씀으로 여러분을 재판하면 죄인이 몇 명 있겠습니까? 한 명도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율법에 매여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율법이 아닌 새 언약을 믿으면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로서 담대하게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 2013. 7. 7. 주일 낮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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