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같은 자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상태바
「가인」과 같은 자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창세기 4장 1절 ~ 15절] 2013.3.3. 주일 낮 설교- 451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3.03.09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원받은 후 어려움에 처한 자

옛날 대구 삼덕동 삼덕교회에 홍대위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만주에 가서 목회를 하시다가 어느 날 노르웨이 여선교사를 만나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분이 『구속의 도』라는 책을 쓰셨는데, 다음 이야기는 그 책의 내용입니다.
어떤 공장에서 일하는 공원(工員)이 있었는데 그가 구원을 받고 공장에서 안 믿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다 미움을 받고 결국 공장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공원이 너무 답답해서 하루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믿는데 왜 직장에서 쫓겨나야 합니까? 제게 직장을 주시고 양식을 주십시오.’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하나님께 ‘양식을 달라’고 자꾸 조르는 기도를 듣고 너무나 웃겨서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버려진 죽은 까마귀를 집어 들고 ‘이거나 받아먹어라’ 하고 창문 안으로 던졌습니다.

극적으로 복직을 하다

그 공원이 한참 기도하다 뭔가 툭 떨어져서 보니 죽은 까마귀였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아침마다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물어주게 하셨는데, 이 까마귀는 이미 죽어서 어떡합니까?’ 하고 기도하다가 칼로 까마귀 배를 갈라봤습니다. 놀랍게도 금목걸이가 까마귀 뱃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 금목걸이를 물에 씻고 보니 전에 다니던 회사 사장 사모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공원이 그 금목걸이를 들고 사모님을 찾아가서 드렸습니다.
사모님이 너무나 기뻐서 저녁에 집에 온 사장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구나. 그런데 요즘 우리 공장에 골치 아픈 일이 생겼어.” “뭔데요?” “공장 감독이 늘 물건을 훔쳐가서 손해를 입혀.” “여보, 그럼 이 사람을 감독으로 세우면 어때요? 주운 금목걸이를 자기가 갖지 않고 가져온 걸 보면 정직한 사람 같은데.”  “아, 그러면 되겠네.” 그리하여 그 공원은 공장에서 나온 지 닷새 만에, 공장 감독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하나님은 오늘 아침 이 자리에 모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간절히 일하고 싶어 하십니다.

군(軍)에서도 도우심을 경험

우리 선교회 목사님 가운데 김 ?? 목사님은 충주 제7탄약창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그해 여름수양회를 앞두고 제가 오 목사님과 아침 일찍 출발해서 충주교회에 거의 가까이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오 목사님이 제게 “목사님, 저 부대에 김?? 형제가 복무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면회 한번 못했는데, 그 부대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대 정문에서 위병(衛兵)이 경례를 하며 누구를 찾아왔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김?? 상병 만나러 왔다”고 하면 오전 일과를 마치는 12시 반까지 기다리라고 할 것 같아서 그 부대장 설 대령을 만나러 왔다고 했습니다. 마침 1년 전 여름수양회 때 김 형제가 “목사님, 우리 부대장님에게 편지 한 장 써 주십시오. 제가 수양회 가고 싶습니다”라고 부탁한 적이 있어서 제가 그 부대장님에게 편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부대장실에서 설 대령님이 저를 보시더니 “목사님, 잘 오셨습니다. 마침 친구 박 대령이 왔는데 장로입니다.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박 대령님은 저에게 “목사님, 오늘은 그냥 가시면 안 됩니다. 어떻든지 간에 설 대령이 예수 믿도록 전도하고 가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 대령님을 우리 수양회에 모시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설 대령님은 “지금 바빠서 도저히 안 되고 김?? 상병을 대신 휴가 보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후 저는 설 대령님, 박 대령님과 점심식사를 하고 부대로 와 보니 김 형제는 휴가 가고 없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제가 충주교회에 도착해서 예배 시간에 김 형제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김 형제가 어느 날 성경을 읽었는데,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는 성경 구절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무엇인가 구하라고 하시네. 그럼 뭘 구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번 여름수양회에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무반에서 성경공부 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번 여름수양회에 가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후, 수양회를 앞두고 토요일이 되어 휴가증을 얻으러 중대장을 찾아갔습니다. “단결! 중대장님께 용무 있어 왔습니다.” “무슨 일이야?” “예, 중대장님. 저희 선교회에 수양회가 있는데 휴가를 가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전군이 비상이고. 나도 집에 못 간 지 벌써 보름이야. 이번엔 휴가가 안 돼.” “네, 알겠습니다. 단결!” 하고 중대장실을 나왔습니다. 김 형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이 약속했는데’ 싶어 다시 중대장실로 들어갔습니다. “단결! 중대장님께 용무 있어 왔습니다.” “너 또 왜 왔어?” “중대장님, 아무래도 휴가 가야겠습니다.” “신병도 아니고 군 생활 할만큼 한 사람이 왜 못 알아 들어? 지금은 비상 기간이야. 휴가가 안 돼.” “네, 알겠습니다. 단결!” 하고 중대장실을 나왔습니다. 김 형제는 ‘아닌데, 하나님이 약속했는데. 휴가 가야하는데’ 하며 다시 중대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세 번째 중대장을 찾아갔을 때는 중대장이 “네가 날 놀리냐”며 막 때리려고 했습니다. 그런 후 10분도 안되어 복도에서 중대장이 “김??” 하며 부르더니 “휴가 가”라고 하길래 그는 휴가증을 받아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부대를 나왔다고 합니다.
저는 그날 김 형제 간증을 들으면서 제가 그 부대에 가거나 부대장님을 만나려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부대 앞을 그냥 지나지 못하고 면회 갔다가 부대장님을 만나게 됐고, 마침 박 대령께서 오셔서 김 형제가 휴가를 얻도록 하나님이 일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믿음

제가 어릴 때 다니던 장로교회에서 목사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어떻게 자신합니까?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다 보면 점점 믿음이 자라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했을 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나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러자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나씩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마지막에 그 여자만 남았는데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너를 정죄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주여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예수님은 그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처럼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아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면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자 가인이 화가 나 안색이 변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은 받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는다고 해서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때려죽일 만큼 화를 내야 했을까요? ‘하나님이 왜 내 제사는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지?’ 하며 원망하거나 불평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동생을 때려죽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것은 가인의 마음이 아니라 사단이 가인의 마음을 충동한 겁니다.

복음을 대적하게 하는 사단

기독교 역사서 가운데 『피의 발자취』라는 책이 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고 처형을 당했습니다. 세계사에서 전쟁이나 기근, 지진으로 죽은 사람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핍박을 받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사단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비난하고 대적하여 죽이도록 충동하는데 성경에도 그것이 정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았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가인은 ‘하나님, 왜 저의 제사는 받지 않으십니까? 저도 양의 첫 새끼를 드리면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땅의 소산을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저도 양의 새끼를 드리지요’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사단이 그 마음을 충동해서 동생을 죽이게 했습니다.
이런 사단의 역사는 복음의 역사가 있을 때마다 계속되었습니다. 가인뿐만 아니라 우리도 사단의 충동을 받을 때 복음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제가 선교학교에 있을 때 많은 선교학생들이 복음을 깨닫고 너무 감사해서 복음만을 위해 살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래, 이 복음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야지. 복음을 위해 내 젊음을 주님께 드려야지. 내 생명을 바쳐야지.’ 그런 마음이 일어나 열심히 주님을 섬기던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은 거의 다 세상으로 가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구원받은 형제자매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거나 성령의 인도를 받고 교회와 마음을 같이해서 달려가지 않으면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면서 조금씩 세상으로 향하고 타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결국 사단의 충동을 받아 복음을 거스르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간교한 사단에게 속으면

사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믿음으로 달려가는 다윗을 봤을 때 시기와 질투가 생겨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사울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여러 번 돌이켰습니다. ‘다윗아, 내가 미안하다. 나는 너를 학대했는데 너는 나를 선대했구나. 사람이 그 원수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나를 너에게 붙이셨을 때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나는 분명히 네가 큰 왕이 될 줄 안다.’ 사울이 그렇게 뉘우치고 돌이켰는데 그 다음에는 또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간교한 사단은 가인을 충동해  아벨을 죽이게 했던 것처럼 우리 마음을 끌어갑니다. 아마 가인 자신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세상에 내가 아우를 죽이다니…. 나는 이렇게 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렇게 악한 줄 몰랐어. 나는 그냥 아우를 미워만 했는데 내가 아우를 죽이다니!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됐을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교제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 마음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사단이 끄는 그대로 끌려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결국은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복음과 주님을 대적하는, 정말 불쌍하고 저주받은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인에게 표를 주사”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4장에서 아벨을 죽인 가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인은 아벨에게 들로 가자고 해서 아벨을 죽였습니다. 자기 아우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나님은 가인의 죄를 지적하고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창 4:13~15)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이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하며 하나님께로 돌이키자 하나님이 가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대적한 자

여러분,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단의 충동을 받아서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했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욕망과 쾌락을 따라, 인간의 생각을 따라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일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동생을 미워해서 죽이지는 않았지만, 간교한 사단에게 충동을 받아 하나님을 거스른 일이 많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 사단은 ‘그래, 너는 죄를 지었잖아. 돌이켜도 안 돼. 그냥 그렇게 사는 거야’ 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갓 구원받았을 때가 좋았는데. 그때 하나님이 참 내게 역사했는데’라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마치 둘째 아들이 먼 나라에 가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허비하고 아버지 앞에 돌아올 때 부끄러워했듯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부끄럽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 같은 인간을 받으시겠나. 받지 않으실 거야. 나는 기도해도 응답 안 하실 거야. 나는 성경을 읽어도 못 깨달을 거야. 내가 전도해도 사람들이 구원 안 받을 거야’ 하고 절망하게끔 우리 마음을 몰아갑니다.

주님의 의를 힘입고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나님은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죽인 악한 인간인데도 가인을 돌이키게 해서 당신의 은혜를 입히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죄나 악을 저질렀든지 그 죄를 저지른 것은 사단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 나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에게 빠져 죄 속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가인에게 표를 줘서 만나는 이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이런저런 죄를 범한 사람일지라도 참 마음으로 돌이키고 주님의 은혜 앞에 나와서 주님의 의를 힘입어 담대히 주님을 섬겨야 할 줄 압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

여러분, 이제 사단에게 속지 마십시오. 창세기 4장에서 자기 동생을 죽인 가인을 향해서 하나님이 그 죄를 들춰내시고 그가 참으로 돌이키고 고통스러워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누구를 만나든지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는 표를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네가 가인처럼 아우를 죽였느냐? 네가 가인처럼 하나님을 대적했느냐? 네가 가인처럼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았느냐? 네가 가인처럼 악을 저질렀느냐? 네가 거기에 빠져있으면 사단의 굴레에서 못 빠져나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바라보고 내가 은혜를 베푸는 자리로 나와. 내가 너를 긍휼히 여길 거야. 내가 네 속에 역사할 거야.’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생각이 아닌 말씀을 믿어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사단의 음성을 듣지 맙시다. 우리는 연약하고 혼자 있으면 다시 죄에 빠지므로 예수님을 바라봐야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으면 우리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자가 됩니다.
과거에 우리가 어쨌든지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전능하신 말씀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우리의 허물을 씻으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예수님께로 얼굴을 향하고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긍휼과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손에 잡힌 바 되어 우리 남은 생애를 복음을 위하여 힘 있게 달려갑시다.

- 2013.3.3. 주일 낮 설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