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여신(女神) ‘쿠마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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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여신(女神) ‘쿠마리’를 아시나요?
네팔 카트만두 정연철 통신원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2.08.3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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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이가 쿠마리가 되기까지

대표적인 힌두교 국가이며 불교의 탄생지이기도 한 네팔에는 어린 소녀를 ‘쿠마리’라 부르며 살아있는 여신으로 숭배하는 풍습이 있다.
카트만두의 수호신인 탈레주 여신이 ‘샤카’ 성을 가진 집안의 여자아이로 환생했다는 신화 때문에 생겨난 쿠마리는 네팔 원주민인 네와리족의 ‘샤카’ 성을 가진 2~5세 사이의 어린 여자아이 중에서 선정된다. 여기서 ‘샤카’는 ‘석가’를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성이기도 하다.
쿠마리 선정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 먼저 병이 없어야 하고 피를 흘린 적도 없어야 하며 몸에 상처가 있거나 흠이 있어서도 안 된다. 이외에도 무려 32가지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고 마지막으로 버펄로와 염소 머리 108개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되면 쿠마리로 선정된다.
이후 쿠마리가 된 여자아이는 ‘쿠마리의 집’으로 옮겨져 좁은 방안에서 홀로 생활하게 된다. 현재 쿠마리는 ‘마티나 샤카’라는 아이로 4년 전 세 살에 쿠마리가 되어 올해 일곱 살이 되었다.

근거 없는 미신 때문에 비극적인 삶을 살다

필자가 ‘쿠마리의 집’에 갔을 때 관광객들이 돈을 헌납하며 복을 빌고 있었다. 그러나 붉은 옷을 입고 방 안에 갇혀있는 앳된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가련하고 안타깝게 보였다.
과거에는 인간이 신을 가르칠 수 없다 하여 쿠마리는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으나, 6년 전 네팔 왕정이 끝난 후로는 정해진 교사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 네팔의 사회적 분위기는 아이의 인권 문제보다는 미신을 보존하려는 의식이 강한 터라, 언론은 물론 어디에서도 쿠마리를 반대하는 의견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가 초경을 시작하면 다시 평범한 여자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쿠마리로서 또 한 번의 비극이 시작된다. 오랜 시간 고립되었던 아이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뿐 아니라 쿠마리였던 여자에 대한 좋지 않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사회에서도 배척당한다. 한때 여신으로 불리던 아이는 결국 거리로 내몰려 창녀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근거 없는 미신 때문에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쿠마리의 안타까운 모습은 필자의 마음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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