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종’이 되었을 때 누리는 행복한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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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종’이 되었을 때 누리는 행복한 삶에 대하여
[출애굽기 21장 1절 ~ 11절] 2012. 7.1. 주일 낮 설교- 41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2.07.0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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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없는 환자였지만

저는 어제 한국 월드캠프 준비 상황을 둘러보려고 부산에 갔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지난 일요일 일산 아람누리 공연장의 IYF 아티스트 콘서트에 참석하셨다가, 제게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으셨던 자매님이셨습니다. 그 자매님의 남편은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했는데, 지금 수술할 형편도 안 되고 위독하다며 제게  “목사님, 남편이 죽기 전에 복음 한 번 듣고 하늘나라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제가 부산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교회 부목사님이 그 병원을 찾아가셨습니다. 담당 의사는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것 같아도 귀로는 아직 들을 수 있다고 해서 40분 동안 부목사님이 전혀 반응이 없는 그분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받기 어렵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내가 옳다’는 생각을 주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그래서 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들어도 그 복음을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그 남편은 표현은 못하지만 ‘내가 언제 죽을는지 모르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흘려 내 죄를 사하셨구나. 나를 의롭다고 하셨구나. 내가 하늘나라에 가겠구나’ 하며 복음을 들은 줄 믿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습니다.

임종 앞두고 구원받으신 아버지

6.25전쟁 때 저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을 참 많이 살렸기 때문에 늘 제게 “나는 하늘나라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가십니까?” “내가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나는 죽어가는 사람들 참 많이 살렸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하늘나라에 보내주실 거다.”
그런 아버지가 위궤양으로 고생하시다가 어느 날 저희들 앞에서 피를 토하셨습니다. 그때 아버지 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저와 아내도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이제 아버지 인생이 여기서 끝이구나’ 하며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 괜찮습니까?” “괜찮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유언을 하셨습니다. “내가 죽거든 얼마 안 되는 재산 가지고 형제들끼리 다투지 마라. 그리고 나를 네 어머니 곁에 묻어 다오.”
 “아버지, 돌아가시면 말씀하신 그대로 장례를 치러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몸은 그렇게 모시겠는데, 아버지의 영혼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아버지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나도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 그런데 너무나 늦었다. 내가 무슨 공로가 있어야 하늘나라에 가지.” 그때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비참해 보였습니다.
제가 그런 아버지께 복음을 전했고 아버지는 구원을 받고 기뻐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우리가 우리의 공로로 하늘나라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간다는 것이 무척 감사했습니다.

주인의 마음

오늘 읽은 출애굽기 21장은 ‘종이 자유롭게 되는 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아주 좋은 남종은 은 삼십 세겔, 천한 종은 이십 세겔에 매매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돈이 필요하면 자기 몸을 팔아 은 삼십 세겔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칠 년 동안 종살이를 하면 종에서 놓임을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유롭게 하는 날이 다가오면 모두 주인에 의해 결혼해서 처자가 있는 종들은 ‘내가 종에서 자유롭게 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며 고민했습니다. 주인이 ‘우리 집 여종과 결혼시키면 둘이 행복하게 살 것 같다’는 마음이 들 때 그에게 좋은 아내를 구해주어 결혼해 살도록 합니다. 결혼하면 귀여운 아이도 낳게 됩니다. 그러면 그 종이 얼마나 충성스럽게 주인을 섬기겠습니까? 그러나 그 아내는 원래 주인의 종이었기 때문에 영원한 주인의 종입니다.

종이 자유롭게 되는 날

남종은 7년이 지나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종이 자유를 얻어 나갈 때, 원래 결혼해서 아내와 같이 종으로 왔을 때는 같이 나가지만, 주인이 남종에게 아내를 주어 자식을 낳으면 남종은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지만 아내와 그 자식은 같이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여보, 나는 당신을 떠나기  싫어. 난 자유를 포기하고 그냥 종으로 살 거야”라는 남편의 말을 그 아내가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겠습니까?
아내가 자식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얘야, 이제 아버지는 더 이상 종살이 하지 않고 자유를 얻을 수 있어.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종으로 있어야 돼.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해서 떠나지 않고 종으로 있었으면 좋겠는데, 차마 종살이 하라고 말 못하겠어.” 그 종의 아내와 아이들은 갈등하게 될 것입니다.

문설주에 귀를 대고 뚫어서

출애굽기 21장은 사람들이 종으로 사는 것과 자유롭게 사는 것의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종이 아닌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종이 되었을까요? 방탕하게 살다 보니 빚이 많아져서 더 이상 그 빚을 갚을 수 없으니까, 결국 몸을 팔아서 빚을 갚고 종이 된 겁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자유의 몸이 될 때가 온 겁니다. 그런데 예전의 그 마음으로는 다시 종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가 선한 사람의 종이 되느냐 악하고 잔인한 사람의 종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가 7년을 종으로 살다가 자유로운 몸이 되는 날에 단신으로 나가서 예전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다가 다시 빚을 져서 종이 되어 악한 주인을 만난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러나 자기의 여종을 그의 아내로 준 주인은 은혜와 긍휼이 많으며 자비롭기 때문에 그 종이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주인을 섬기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 종이 아내와 자식을 위하여 자신이 자유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면, 주인은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문설주에 그 종의 귀를 대고 송곳으로 뚫어 ‘종’이라는 표시로 귀걸이를 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우리는 구원받은 후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유를 가지고 살다 보면 종으로 살 때와 달리, 나 자신을 위하여 자유롭게 살면 살수록 자꾸 죄악된 삶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에게 ‘나는 정말 선한 주인인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십니다. 직장을 다니더라도 ‘내가 아내와 자식을 사랑해서 자유를 누리지 않고 종이 되겠다’는 종처럼 꼭 목사나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살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살다가 인생의 빚을 지면 그 빚은 우리가 책임져야 하므로 다시 종이 될 수 있지만, 선한 주인을 만나 그의 종이 되면 그 모든 문제를 선한 주인이 해결해 주시는 겁니다.
 

 

 

죽음 앞에 서 보면

몇 년 전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오리사의 기독교인 2천 명 이상을 죽인 일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리사의 선교사님이 성경세미나를 하려고 형제자매들과 단상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힌두교인들이 집회를 막으려고 와서 그 단상을 무너뜨리고 ‘여기는 힌두의 땅인데 다시 들어오면 죽이겠다’고 하며 힌두교의 깃발을 꽂아 두고 돌아갔습니다. ‘RSS’라는 힌두교도들은 도끼나 칼을 들고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입니다. 인도 경찰서장이 사태가 심각함을 느끼고 그곳에 ‘어느 누구도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며 접근을 막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인도에 가면 죽을지도 모르지만, 예전에 제가 죽음 앞에 섰을 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십년 전 장폐색증으로 수술을 기다리다가 앞에 서 있는 아내의 얼굴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내가 지금 정신을 잃는구나. 죽어가고 있구나. 내가 지금 죽으면 어떻게 되지? 나는 죄 사함을 받았지! 내가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울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앞으로 100년 안에 모두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10년 또는 30년 안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구원받기 전에는 죽음을 생각하면 고통스러울 것 같아 정말 두려웠는데, 죄 사함을 받은 후에는 ‘주님과 함께 생명나무 강가를 거닐겠구나’ 하며 죽음 앞에서도 제게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는 말씀이 떠올라 제 죽음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기 때문에 제가 그냥 죽지 않는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인도 오리사 집회를 떠올리며

저는 비행기를 타고 델리 브안네시에 도착하여 600km 되는 오리사까지 헬리콥터를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김 선교사님이 브안네시에서 저를 기다렸다가 만나자마자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아침까지도 목사님을 오시라고 해야 할지 한국으로 돌아가시라고 할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오리사 경찰서장이 박 목사님이 타고 오실 헬리콥터 착륙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힌두교도들은 교회 차를 표적으로 삼고 있어서 다른 차를 구해왔습니다.”
그날 김 선교사님과 저는 산길을 6시간이나 달려서 오리사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제가 도착하자, 오리사 형제자매들은 그동안 꽃이 시든다고 물에 담가두어서 물이 줄줄 흐르는 꽃다발을 제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오리사 경찰서장은 무장경관 9명을 보내서 제가 집회 말씀 전하는 동안 호위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지금도 그 오리사 집회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제가 죽음이 두려웠다면 인도에 못 갔을 것입니다. 그후 저는 죽음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면서 다른 어렵고 부담스런 일 앞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게르솜’과 ‘엘리에셀’

어제 저녁에는 제가 부산에서  KTX를 타고 올라오면서 출애굽기 18장을 읽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 보내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그 두 아들을 데렸으니 그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 함이요.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출 18:2~4)
모세가 애굽 왕궁에서 살다가 어느 날 애굽인을 죽인 일이 탄로 나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이제 왕궁을 나와 정말 갈 길이 막막하고 아무 거할 처소도 없을 때, 하나님이 십보라를 만나서 결혼해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의 이름은 내가 이방의 나그네가 됐다는 뜻의 ‘게르솜’이라고 지었고, 둘째 아들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나를 구원해 줬다는 뜻의 ‘엘리에셀’이라고 지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 전도자들이 무전전도여행을 했을 때의 간증이 생각났습니다. 처음에는 처음 가 본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니까 막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치 모세가 십보라를 만나고 결혼해서 살듯이, 우리 전도자들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잠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음식을 준비해 주시고, 복음 전할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복음 전도자나 선교사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길을 여십니다. 

두 부류의 자유인

출애굽기 21장은 우리 모두는 죄의 종으로 영원한 저주와 멸망을 받아야 하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죄의 종에서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롭게 된 사람들 중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주님이 나를 죄에서 자유케 했지만, 난 자유를 누리지 않고 예수님의 종이 되어 주님을 섬길 거야. 내가 다시 자유롭게 되면, 육체의 소욕을 따라 죄에 빠질 가능성이 있어. 나는 결정할 일이 있을 때 내가 보기에 좋고 나쁜 것으로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종 된 삶을 살겠다’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난 구원받고 자유니까 내 마음대로 살아도 돼. 또 죄를 지어도 주님이 씻어 주시니까 마음대로 살다가 주일 예배 한번 참석하면 되지. 그리고 마음대로 살다가 헌금하면 되고 전도 한번 하면 되지’ 하며 만족하려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이끄시고

저는 구원받은 후, 주님 앞에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저 자신을 주님 앞에 드리기로 했습니다. ‘나 같은 인간이 어떻게 주의 일에 쓰임 받겠나?’ 하면서 제가 목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저를 받으시길 원하신다면, 제가 교회에서 신발장 정리하고 아이들 코나 닦아주며 살아도 행복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성실한 사람이 아닌데도복음을 전하다 보면 때때로 제 마음이 교만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주님이 제 마음을 낮추시고 이끄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주의 종이 되고 난 뒤에 주님이 천 가지 만 가지 복 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자유를 가질지라도

저는 부산 해운대에서 가지는 월드캠프 개막식 준비상황을 보려고 어제 부산에 내려갔는데, 때마침 내리던 장대비가 그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날씨를 주시겠다는 믿음이 생겨서 감사했습니다. 제가 일을 진행하다 보면, 제가 이 일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 일의 주인이 되셔서 그 일들을 이루시는 것을 보니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가지고 살 때 결국 죄의 종이 되므로 그 자유를 가지고 산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준 아내와 자식과 살면서 일생 주님의 종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자기 귀를 문설주에 대고 송곳으로 뚫어서 평생 자기 몸에 종의 흔적을 가지고 살고 싶은 마음을 갖는 종처럼, 이런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싶어하는 형제자매들이 생겨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종이 가지는 행복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출애굽기 21장은 자유로울 때보다 종이 되었을 때 느끼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저도 정말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나는 종이 되는 것이 더 즐겁다. 아내와 자식과 함께 종이 되어 자비한 주인 밑에 있는 것이 감사하다. 주인이 나를 돌봐줘서 죄에 빠지지 않게 하시는 것이 감사하다’는 종처럼 이런 믿음의 마음를 갖는 형제자매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자유로운 몸을 얻었는데, 우리 교회의 형제자매 한 명 한 명이 자유를 반납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가는 것을 봅니다. 주님도 무척 기뻐하고 감격해 하실 줄 믿습니다.
출애굽기 21장을 통해서 하나님은 ‘너는 가서 자유해라. 그러나 네가 원하면 내가 너의 주인이 되어 주겠다. 내 종이 되어라’고 하십니다. 입으로만 ‘예수님!’을 부르지 말고 마음에서 주 예수님의 종이 됐을 때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면 말할 수 없이 많은 환난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수십년 전 김천에서 전셋집이 은행에 넘어 갔을 때도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지금 예배 드리고 있는 이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지만, 하나님이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저는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에 제게 닥치는 문제는 제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문제가 되어 예수님이 그 일을 아름답게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보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의 종이 되어

여러분, 구원받고 죄에서 자유롭게 살지만 삶이 힘들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종이 되어 보십시오. 자유인이지만 예수님 앞에 여러분의 몸을 드려 보십시오. 선교사나 목사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정의 주부든 가장이든 직장의 사장이든 마음으로 예수님의 종이 되어 예수님을 섬긴다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아름답게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자유롭지만 그 자유를 포기하고 예수님의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선 자유롭지만 욕망의 종, 죄의 종이 아닌 예수님의 종이 되어 주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셔서 주님과 함께 복된 나날의 인생을 보내다가 주님 앞에 서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2012. 7.1.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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